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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Her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10월 11일(水)
피우진 “軍생활 내내 쫓겨날듯 살아나… 별명도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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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육교사 근무 중 거리에서 본 여군장교 모집 공고 포스터를 보고 여군에 자원했다는 피우진 보훈처장은 남성 중심 조직인 군에서 벌여온 끊임없는 도전과 투쟁으로 ‘이 시대 마지막 아마조네스’ ‘불사조’란 닉네임으로 불린다. 피 처장이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 집무실에서 문재인 정부 보훈정책 핵심인 ‘따뜻한 보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군생활 내내 뭔가를 저지르고, 좌충우돌하다가 한직으로 밀려나고, 군에서 쫓겨날 듯하다가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지요. 헬기조종사는 ‘파파 줄리엣’‘위스키 줄리엣’ 이런 식으로 호출명을 붙이는데, 동료들은 제게 ‘오뚝이’란 별명과 함께 ‘피닉스’가 어울린다며 호출부호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추석 연휴에 들어가기 직전인 지난 9월 22일 서울 용산 서울지방보훈청 집무실에서 만난 피우진(61) 국가보훈처장은 가녀린 몸매 탓에 예비역 중령 이미지가 선뜻 와 닿지 않았다. 여군 최초의 헬기조종사, 특전사 중대장, 88사격단 여군중대장 등 피 처장의 이력서에 따라붙는 ‘여전사’ 이미지를 찾기란 더더구나 힘들었다. 그러나 그의 형형한 눈빛은, 여군 후배들이 왜 그에게 ‘이 시대 마지막 아마조네스’란 닉네임을 붙여줬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피 처장이 2002년 유방암 수술 때 암에 걸린 한쪽 유방과 함께 멀쩡한 다른 쪽까지 절제해달라고 요청해 의사들을 깜짝 놀라게 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건강에만 지장이 없으면, 군인의 직업상 전투 및 훈련에 ‘백해무익한’ 가슴을 없애 버리고 싶다”는 설명에 의사들은 정신 이상을 의심할 정도였다. 문병 온 후배 여군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차라리 시원하고 좋다”며 껄껄 웃어 보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아마조네스’였다.

‘아마조네스’란 호칭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더니 피 처장은 의외로 손사래를 쳤다. 피 처장은 그 대신 동료들이 붙여준, 헬기 조종사 호출명 ‘피닉스(불사조)’가 마음에 든다며 그 사연을 소개했다. 그가 국방부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벌일 당시 발간해 화제가 됐던 자서전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의 최초 제목도 ‘응답하라, 여기는 불사조’였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피 처장은 남자들이 지배하는 군대라는 정글에서 치열하게 맨몸으로 맞서 싸웠다. 상처투성이의 아마조네스는 결국 ‘여장군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불사조처럼 또다시 눈부시게 부활했다. 그의 보훈처장 임명은 문재인 정부 인사의 백미였다. 여군 대위 시절 여군 부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4성 장군(1군사령관)과 맞서 싸운 이야기는 한국 여군사회 전설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피 예비역 중령이 보훈처장에 내정되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인사를 넘어선 정의의 실현으로, 그 자체가 ‘보훈’”이라고 했을 정도다.

―보훈처 생활에 적응이 됐나.

“근무 100일이 좀 넘었는데 2㎏ 정도 살이 빠졌다. 242만 보훈 가족을 다 만날 순 없지만, 국가 행사가 많아 바쁘다. 보훈처장 첫 임무를, 임명장도 받기 전에 5·18행사로 시작했다.”

―여군 1호 헬기 조종사 출신으로 첫 여성 보훈처장에 임명돼 화제가 됐다. 장군 출신 또는 독립운동가 가문 출신이 주로 맡는 보훈처장에 파격적으로 발탁됐는데, 보훈처장이 되리라고 어느 정도 예상했나.

“여군 1호 헬기조종사라고 많이 보도됐는데,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나보다 7개월 정도 먼저 여군 헬기조종사가 되신 김복선 선배님이 1호이시고, 나는 그다음 기수로 헬기조종사가 됐다. 내가 소속된 ‘젊은 여군 포럼’이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지만 보훈처장이 되리라곤 전혀 예상 못했다.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도 없었다.”

―헬기 조종사 지원 동기는.

“헬기 조종사 지원은 당시 여군이 놓여 있던 환경과 관련이 있다. 당시 여군은 ‘여군 병과’로서, 즉 성별로 구분되는 병과로 존재했다. 그런데 그때 여군에게도 임무를 주고 병과별로 선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헬기조종사를 뽑기에 지원을 했다. 여군에게도 처음으로 임무가 주어지는 상황이었고, 새로운 임무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의 군 생활은 도전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닥치는 도전과 모험을 마다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기를 즐겼다. 부친이 군 장교 출신인 피 처장은 대를 이어 군인의 삶을 즐긴, 타고난 군인이었다. 피 처장은 군 복무 중 유방암에 걸려 절제 수술을 받으며 병마를 이겨냈지만, 군 신체검사에서 장애 판정을 받고 강제 퇴역당했다. 이후 국방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 군내 여성의 지위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렸다.

―군복무기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했는데 여군의 역할과 앞으로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한다고 보나.

“여군은 군인으로서 남군과 똑같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부당한 처우는 개선돼야 한다. 언론에서 수시로 보도되는 여군 성희롱 성추행 등 사건 사고를 보면 지금도 군에서 계속 이런 문제들이 완전히 근절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대다수 여성의 상관이 남성이고 이들 남성이 ‘부하 여군, 동료 여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사관학교나 교육기관에서 여자 생도와 함께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7% 미만의 소수이다. 한 조직의 10%도 안 되는 소수자로서 여군은 다수의 남군과 문화적 분리현상을 일으키게 되고, 이 분리현상이 도리어 성폭력 등의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그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여군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바뀌도록 군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여군이 소수자 문화를 벗어나서 일상적 주류 문화에 편입할 수 있도록 인력 규모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여군들이 제 자리를 찾아서, 능력껏 꿈을 펼칠 수가 있으며, 그때까지는 제도로 보직, 진급, 장기복무 등을 보호하고 지원해주어야 하며, 국방부가 이런 혁신을 단계적으로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 처장은 2008년에 진보신당 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출마했었고, 이후 더불어민주당 대선 캠프에도 몸을 담았다. 정치 입문 계기가 궁금했다. “과거에 진보신당 비례대표 3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여성 정치인으로서 꿈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당시 군에서 전역을 당하고 복직 소송을 하고 있을 때, 당시 진보신당 노회찬 의원이 제 문제를 해당 상임위에서 거론하면서 내 복직투쟁이 많이 알려지게 됐다. 그 과정에서 저에게 도움을 주려 했던 노 의원과 인연이 닿았고, 진보신당이 지향하는 방향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군, 그리고 사회 인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내가 받은 만큼 사회에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비례대표에 응했다. 정치인의 꿈을 꿨던 건 절대 아니다.”

피 처장은 “민주당 캠프에 가게 된 계기는 ‘젊은 여군 포럼’이 당시 문 후보 지지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포럼은 선배의 입장에서 여군 정책과 관련한 전반적인 사안에 대해 조언을 하기 위해 만든 모임으로, 모임을 결성하고 활동을 하는 중 대선이 시작됐고, 정책적 지향점이 맞는 문 후보를 지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피 처장이 임명된 뒤 보훈처의 업무는 크게 늘어났다.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독립 유공자와 참전용사, 국가 유공자 등에 대한 처우 개선 조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훈처장에 임명된 지 4개월이 지났는데 그동안 중점을 둬서 진행한 일이 있다면.

“‘보훈 가족’들에 대한 국민의 따뜻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다. 보훈이 정치나 이념적 논쟁의 중심에 섰던 시절에는 일부 이해관계 당사자들만 관심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8기념식이나 현충일 등 큰 국가적 행사에서 대통령과 국민이 다 함께 그날의 주인공들을 생각하며 가슴 뭉클했던 순간이 있었다. 국민 대통합의 기제로서 보훈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소외된 분들을 찾아서, 생존 애국지사 특별예우금과 참전유공자에 대한 참전명예수당을 대폭 인상하고, 국가유공자 보상금도 지난 8년간 최고 수준으로 인상된 금액으로 2018년도 정부예산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런 작업들은 현재도 계속 진행형이어서 앞으로 5년 동안 추진해야 할 핵심과제 중심으로 보훈실행 체계를 개편해 나가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없어지도록 보훈 유공자 3대에 걸쳐 보상하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역사적으로 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나.

“1962년 독립유공자를 위한 제도(국가유공자 및 월남 귀순자 특별원호법)가 도입된 후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에 대한 연금 지급 등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그러나 재정부담이 많은 보훈급여금과 대부, 임대주택 우선공급 등 일부 지원은 선순위 유족 한 분을 중심으로 지원하고 있어 그 밖의 유족은 상대적으로 생활 정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일제강점기에 국외로 망명해 해외에서 거주하다가 최근에 귀국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영주귀국 독립유공자 및 후손은 주택마련 등 국내정착에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주귀국 독립유공자 후손은 선순위 유족이 아니더라도 임대주택을 우선공급 받을 수 있도록 현재 입법 추진 중이며, 생활이 어려운 유족에 대한 지원방안을 검토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해 나갈 계획이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 생존 애국지사의 특별예우금을 대폭 인상하고, 보상 지원금 범위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새 보훈개선안 시행으로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독립유공자 자녀·손자녀 등에게 보상금이 제대로 지급되는 체제로 전환되기 위해 남은 과제는.

“내년부터 생계가 어려운 독립유공자의 자녀와 손자녀에게 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독립유공자 유족분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생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다른 국가유공자와의 형평성, 국가 재정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독립유공자의 공헌과 희생에 맞는 보상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

인터뷰 = 정충신 부장(정치부)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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