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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용식 논설주간 게재 일자 : 2017년 10월 11일(水)
大局을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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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금처럼 희망이 사라진 시기는 없었다. 건국과 전쟁 때에도, 피땀 흘려 한강의 기적을 이루면서도,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면서도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런데 달라졌다. 정치·안보·경제 모두 앞이 캄캄하다. 특히 청년 세대의 절망은 ‘하면 된다’는 도전 정신을 꺾어놓고 있다. 이런 인식에 여야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좁은 소견과 작은 이해에 몰입해 무한 투쟁을 반복하고 있다. 유능한 축구 선수는 운동장을 넓게 쓰면서 다른 선수의 움직임을 더 많이 보고 정확하게 예측한다. 위대한 정치가일수록 전체 판세를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국내 정치의 퇴행은 심각한 지경이다. 집권 세력은 박근혜·이명박 정권을 뒤지고, 보수 야권은 문재인·노무현·김대중 정권을 물고 늘어진다. 역대 정권 모두 취약한 지점이 있으니 이전투구가 불가피하다. 곧 촛불 1년과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가 겹치게 된다. 적폐는 시정돼야 하고, 합당한 처벌도 당연하다. 그러나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현 정권의 시도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내로남불’로는 성공할 수 없다. 야권도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식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야당의 비전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국민 신뢰가 돌아오고, 보수 통합이든 지방선거 연대든 저절로 된다.

북핵 문제는 정권 아닌 국가 존립이 걸린 만큼 대국적 접근이 더 절실하다. 안보를 확고히 다지면서 5년 뒤, 10년 뒤 통일의 문이 열릴 때까지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땐 어느 쪽이 집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독일 통일 노력은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와 헬무트 슈미트 총리 시절 본격화했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 때였다. 러시아는 물론 영국과 프랑스까지 통독에 반대했다. 인근에 강대국이 등장하는 것을 좋아할 나라는 없다. 4개 전승국 중 찬성한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한반도도 다르지 않다. 중국은 물론 일본도 인구 8000만 명의 강력한 국가 형성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북한 주민의 마음속에 자유 대한민국을 심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진보 정권이 북한 인권 문제에 소극적인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사회·경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저성장과 양극화,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각한 도전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세력은 없다. 여야를 초월한 개혁도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독일 ‘어젠다 2010’을 주도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에게서 배워야 한다. 문재인 정권과 같은 진보 정권(사민당·녹색당 연정)이었고, 주도 세력도 우리의 386세대에 해당하는 68세대였다. 지지층 반발과 선거 패배를 무릅쓰고 노동개혁은 물론 연금개혁, 의료개혁, 농업개혁까지 이뤄냈다.

탈원전 문제도 멀리 보고 접근해야 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로 인해 독일에서는 모래의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 놀이터가 폐쇄되는 등 대혼란이 일었다. 연방 정부 차원의 탈원전은 1998년 슈뢰더 집권 뒤에야 채택됐고, 2000년엔 원전 산업계가 점진적 폐기에 동의했다. 합의에만 14년이 걸린 것이다. 이런 문제를 대선 공약이라며 몇 달 만에 결판 내려 해선 안 된다.

최근의 비생산적 정치 상황들은 주로 여야의 근시안적 대결 구도에서 비롯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아이디어는 정치공학 차원에선 황당했지만 현 여권의 적폐 청산 드라이브보다 진정성이 있다. 독일 하르츠 개혁 성공의 비결도 대연정에 있다. 물론 한국과 독일의 정치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달라 그대로 대입하긴 어렵지만 그 취지는 일맥상통한다. 새 정권 출범 때마다 전 정권 청산이 이뤄지면서 ‘국정의 축적’이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다. 개헌 논의에서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추석 휴가에서 복귀한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정 상설 국정협의체를 제안했다. 그러나 협치든 협의체든 대연정에 버금가는 의지가 없으면 공염불이다.

사상 최장이었던 이번 추석 연휴는 고된 일상에서 벗어나 ‘나무 대신 숲’을 관조할 좋은 기회였다.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 생각한다. 포퓰리즘 정책은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세대 착취’다. 자식 세대까지 배려하는 정치가 절실하다. 그런데 거꾸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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