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이후 여성의 자화상 통해 본 ‘女性 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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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 프랜시스 보르젤로 지음, 주은정 옮김 / 아트북스

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성 자화상의 역사를 풀어낸 이 책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의 초판이 출간된 것은 1998년. 거의 20년 전이다. 1970년대 이후 서구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여성주의 미술사 연구라는 흐름 속에 나온 책이다. 이번 번역본은 2016년에 나온 개정증보판을 옮긴 것이지만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된 것 역시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여성주의·페미니즘 흐름이라는 배경 속에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미술의 사회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여성의 자화상을 매우 상징적인 장르로 봤다. 여성의 자화상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남성의 자화상과 달리 시대적 특징과 제약이라는 한계 속에서 여성 예술가들이 대중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편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자화상이 언제나 진실만을 담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에 바탕을 두고 일종의 소설가처럼 믿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구성해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 자화상은 남성 중심의 서양 미술사에서 여성이 자신의 모습을 재구성해낸 매우 의미 있는 장르라는 것이다.

책은 수년간 여성의 자화상 복제본을 수집해온 저자가 어느 날 100점이 넘는 자화상 이미지를 정리하다 시대별 특징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책은 16세기에서 현재에 이르는 18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대상으로 그 속에 담긴 여성 예술가의 다양한 삶을 찾아내고, 보다 넓은 시선으로 시대별 여성 자화상의 특징을 분석해낸다. 저자에 따르면 현존하는 최초의 여성 자화상은 13세기 조반니 보카치오의 ‘유명한 여성에 대하여’ 속 삽화들이다. 하지만 여성미술가의 이름을 간간이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은 16세기에 이르러서이다. 16세기 여성 화가들은 품위 있는 여성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화상을 그렸다. 17세기에 여성자화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19세기 교양 문화가 확산되고 여성에게 미술교육의 기회가 열리면서 20세기에 들어 여성 예술가들은 남성과 같은 지위를 얻기 위해 투쟁했다. 이 모든 역사가 자화상 속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로메인 브룩스는 여성에게 금기시됐던 성적 취향을 드러냈고, 프리다 칼로는 고통의 개념을 반영하기도 했다. 한편 2016년 개정증보판에는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 속 변화를 반영해 오늘날 셀카 시대의 여성 자화상까지 범위를 확대해 보여준다.

여성의 자화상이 미술역사에서 독립된 장르로 인정돼야 한다는 저자는 여성 자화상의 역사를 통해 남성 중심의 서구 미술사에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창조적 에너지를 지닌 여성 예술가가 항상 존재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 작업을 통해 책은 백인 남성이 만든 서양 미술사에서 누락되고 정당한 자리를 박탈당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의 이름을 소환해, 남성 중심의 반쪽짜리 미술사를 복원한다. 386쪽, 2만5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