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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7년 10월 13일(金)
눈부신 푸른 바다가 어루만지고 품고 보살펴 詩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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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삼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4세 이후 성년이 되기까지 고향인 삼천포에서 살았다. 삼천포는 옛 지명이다. 이제는 경남 사천으로 바뀌었다.

(96) 박재삼 시인의 고향 삼천포

박재삼(朴在森)은 1933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났으나, 자라기는 삼천포에서였다. 어머니의 고향이며, 네 살 때부터 성년이 되어 그곳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이제는 ‘사천’이라 불리는, 삼천포가 시인의 고향이다. 고향의 자연, 특히 햇살 눈 부신 푸른 바다는 시인의 근원적인 정서와 심상(心象)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자연은 위압적인 것이 아니며, 어머니의 품처럼 늘 친근하고 포근한 것이다. 고향의 자연은 박재삼의 서러운 삶을 어루만져 주고 인생의 깊은 뜻을 가르쳐 주며, 그를 보살펴 시인으로 키웠다. “나는 어린 시절을 삼천포 바닷가에서 살았다. 또 거기서 중요한 사춘기 시절을 맞고 보냈었다. 우리 집은 가난한 가운데 특히 윗자리라 할 만큼 가난하였다. 고등학교까지 거기서 다녔다.”(‘숨 가쁜 나무여, 사랑이여’)

시인은 고향에서의 유년 시절을 온통 가난을 통해 기억한다. 그의 초기작에 유독 많이 나오는 ‘눈물’과 ‘슬픔’ 같은 단어는 바로 이 삶의 고달픔과 가난의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방된 다음 해/ 노산(魯山) 언덕에 가서/ 눈 아래 무역회사 자리/ 홀로 삼천포중학교 입학식을 보았다./ 기부금 삼천 원이 없어서/ 그 학교에 못 간 나는/ 여기에 쫓겨오듯 와서/ 빛나는 모표와 모자와 새 교복을/ 눈물 속에서 보았다.”(‘추억에서 31’) 후일담이지만, 결국 진학을 포기한 박재삼은 삼천포여중에 사환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스승 김상옥 시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정해진 운명처럼, 시(詩)가 그에게 다가온다.

박재삼 문학관이 있는 노산공원을 가는 길에 우선 시인의 고향 집터를 찾아본다. 현재는 김밥집으로 변한 자리가 예전 집터 자리(서금동 72번지)이다. ‘방이 두 칸밖에 없는 흙과 나무로 지은 허름한 일자 집’의 흔적은 언감생심이고, 그나마도 샛길(팔포 2길)이 생기면서 번지가 갈라졌고 집터도 일부분만 남아있다. 그저, 그 앞을 지나는 길에 ‘박재삼 거리(박재삼 길)’라고 시인의 이름이 붙어 있고, 그 길 끄트머리, 노산공원 입구에 작은 안내판이라도 하나 있으니 다행이다. 번지만 남은 시인의 고향 집을 애써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 문학관을 향해 가는 노산 언덕길에도 두어 개의 작은 시비는 있지만, 그저 석물에 금속판을 붙여놓은 꼴이다. 가을 햇살에 유별나게 번쩍거리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다.

박재삼 문학관 마당 한가운데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고, 좌측에는 시인의 등신대 동상이 긴 의자에 앉아있으며, 우측으로는 복원한 호연재(浩然齋) 건물이 보인다. 2008년 개관한 문학관은 3층짜리 현대식 건물이지만 주변 풍광과도 서로 잘 어울린다. 입구로 들어서면 먼저 박재삼의 흉상과 흑백 초상 사진들이 보인다. 그리고 삼천포 바다 배경 위에 써내려간 시인의 친필, “진실로 진실로/ 세상을 몰라 묻노니/ 별을 무슨 모양이라 하겠는가/ 또한 사랑을 무슨 형체라 하겠는가/ 93년 봄 박재삼”(‘세상을 몰라 묻노니’의 마지막 연). 유물들과 전시물은 소박하지만, 시인의 삶과 문학에 관한 정보는 아주 상세하고 고증도 잘 되어 있다. 특히 ‘박재삼과 사람’이란 표제가 붙은 게시물, 주변 사람들의 추억담 속에 절로 드러나는 시인의 모습, 소탈하고 참으로 속정 깊었다던 그 성품을 다시금 느끼며, 그 내용을 절로 곱씹어 읽게 된다.

바둑계 인사들과의 친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박재삼은 한때 바둑 잡지에 편집장으로 일했던 적도 있었고, 와병 중에는 신문에 바둑 관전기를 쓰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시인이 쓴 것이라 그 내용과 문장이 남달랐다고 한다. 지금은 지면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기보(棋譜) 해설’,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 아쉽다.

문학관은 삼천포 바닷가 노산 구릉의 가장 위쪽에 있어, 그 덕분에 멋진 전망대 역할까지 한다. 특히 3층의 난간에 서면, 푸른 바다와 섬들, 그리고 항구와 선착장, 저 멀리 창선·삼천포대교 등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니 한동안 숨이 막혀 그만 감탄마저 잊는다. “소시적 꾸중을 들은 날은/ 이 바다에 빠져드는 노산(魯山)에 와서/ 갈매기 끼룩대는 소리와/ 물비늘 반짝이는 것/ 돛단배 눈부신 것에/ 혼을 던지고 있었거든요.”(‘노산에 와서’) 여기에 문학관 뒤편으로 보이는 사천시의 풍경과 와룡산의 수려한 산세(山勢)까지 덤으로 한몫 든든히 얻으니, 그 눈 호강에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시인의 대표작인 ‘천년(千年)의 바람’ 시비는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팔각정 있는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 왼편에 서 있다. 1988년에 조성된 이 시비에 관해서는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시인 생전에 그의 시비를 세우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반대가 있었고 산청에서 구한 빗돌을 이곳까지 옮기는 공사상의 난점도 있었다지만, 무엇보다 박재삼 시인이 직접 장소를 물색하고 시비에 새길 시를 골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벌써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풍상을 견딘 돌은 여전히 굳건하다. 이동기가 힘차게 써내려간 큼직한 글씨도 바래지 않고 뚜렷하다. 2연 10행의 길지 않은 시임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첫 번째 연만을 새겼다. 다만, 주춧돌과 시가 새겨진 빗돌을 대리석으로 연결한 탓에 안정감은 덜해 보인다. 하지만 이 시비를 둘러싸고 있는 듬직한 소나무들 덕분에 이런 소소한 아쉬움은 금방 떨쳐내게 된다.

▲  박재삼의 옛 집터 앞 ‘박재삼 거리’에 있는 시비.

시집 ‘삼천포 육자배기’의 시인 최송량의 증언에 따르면,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창작한 곳이 바로 이곳 노산 언덕인데, 왜 그 시를 새기지 않고 ‘천년의 바람’을 선택하냐는 힐책 어린 따짐에 그저 박재삼 시인은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사람들이 즐겨 애송하는 ‘울음이 타는 가을 강’보다는 좀 더 관조적으로 무소유를 읊조리는 ‘천년의 바람’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고 짐작해본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시비는 박재삼 시인의 모교인 삼천포고등학교 교정에 있다. 교사 중앙 현관 앞 운동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세워져 있다. 한편에 국기 게양대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반원형의 큼직한 시비이지만 워낙 우리네 학생들의 젊음이 넘쳐나는 장소이니만큼 별다른 위압감은 없다. 진주 출신 서예가 윤효석의 힘찬 글씨도 볼 만하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고, 시험에도 곧잘 출제되는 박재삼의 대표작이니만큼 어쩌면 이곳이 가장 적합한 장소인 듯도 하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 질 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것네.”

박재삼의 또 다른 시비 ‘아득하면 되리라’는 삼천포대교 기념광장에 있다. 거북선 모형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넓은 광장에 바다와 삼천포대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참으로 위용을 자랑한다. 2004년 3월 29일 삼천포 라이온스 클럽이 세웠다는 표지가 붙은 이 커다란 ‘석물(石物)’은 어쩐지 박재삼의 소박한 시, 그것도 사랑의 애잔함을 노래하고 있는 그 시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비음(碑陰)은 무슨 광고판도 아니고, 차라리 애써 찾아보지 말 것을 하는 후회마저 든다. 여하튼 그 덩칫값은 영 못하는 듯하다.

시인 자신이 여러 차례 밝혔듯이, 박재삼의 시는 ‘가장 슬픈 것을 노래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노래한 것이다’라는 평생의 화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시집 ‘천년의 바람’ 이후에는 시들이 다소 변한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에서 느끼는 기쁨과 고마움, 그리고 이런 것들이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아쉬움과 애틋함을 표현한 시들이 차츰 많아진다. ‘허무’ 혹은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짙은 그림자 어린 단어들과 그저 ‘무제(無題)’라고 붙인 시제(詩題)가 많아지는 것도 눈에 띈다. 이는 무엇보다 30대 중반, 너무 이른 나이에 발병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회복과 재발을 거듭하면서,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던 고혈압과 위궤양 같은 고질병 때문이리라.

어린 시절 시인이 경험했던 ‘가난’의 고통은 이제 ‘질병’의 아픔에 그 자리를 내어준다. 초기 시에서 참으로 마음껏 능숙하게 다루던 고전적이고 설화적인 주제(춘향과 심청이, 흥부 부부 그리고 ‘남평 문씨 부인’)가 사라져 버린 것이 유독 아쉽지만, 그 대신에 시인은 기꺼이 삶의 즐거움, 죽음에의 공포와 생명에의 경외 등을 관조적으로 노래하며 이 ‘허무’를 극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이런 시들도 어김없이 자연적인 소재와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스무 살 무렵 고향을 떠난 시인이 40여 년 넘게 살았던 서울에서는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신접살림을 차렸던 종로구 누상동의 ‘하숙집’은 물론이거니와 ‘답십리 꼭대기의 축대가 높은 집(동대문구 답십리동 11의 83)’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박재삼이 처음으로 마련했던 ‘답십리 축대 집’은 그가 고혈압으로 다시금 쓰러진 뒤, 투병의 고통과 회복의 기쁨이 깊게 배여 있는 여러 시편을 집필한 곳이지만(‘어느 집배원을 생각하며’), 도로와 건물들이 새로 들어서 그저 번지만 남아있다. 집 앞에 ‘먹골배’ 밭이 있어 봄이면 하얗게 배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어서, 또한 ‘흙을 밟고, 흙을 볼 수 있어’ 좋았다던, 시인의 마지막 서울 집(중랑구 묵동 177-3)도 이제는 ‘집 앞뒤고 골목이고 모두 시멘트로 잔뜩 깔린’ 건조한 모습으로 변했으니, ‘세월의 물결에 밀리어 시와 눈물 그리고 물기가 있던 정서(情緖)’도 모두 잃었다. 어느 곳에도 그 흔한 안내판 하나 없어 안타까움이 더하다.

그러하기에 뜻밖의 장소에서 박재삼 시인의 시를 만나면 기쁨부터 앞선다. 경북 김천의 ‘직지 문화공원’에 있는 투박한 ‘내 사랑은’ 시비와 수원 광교산 정상쯤에서 우연히 만났던 소박한 ‘산에서’ 시(詩) 패널 같은 것들 말이다, 무엇보다 그 시들이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란 점에서 반가움은 더욱 크다.

이미 갖고 있던 몇 권의 시집들과 시선집에 없는 박재삼의 시들을 확인할 셈으로 도서관을 찾는다. ‘박재삼 시 전집’(2007)은 이미 오래전에 절판되어 좀처럼 구하기 어렵다. 복사실에 가는 것도 귀찮아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다가 문득 시인의 일화가 떠올랐다. 박재삼은 시의 세계에 입문하던 소년 시절, 스승인 김상옥 시인의 시조집 ‘초적(草笛)’을 살 돈이 없어 그것을 모조리 공책에 베껴 애송하였다고 한다. 무심코 카메라를 들이댄 손끝이 부끄럽다. 글·사진 = 박광수

불문학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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