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맛집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자주 가는 단골 떡볶이집이 있습니다. 어린이대공원 후문 맞은편에 ‘신○○○’이라는 상호로 자리하고 있지만, 아차산역 앞에 위치해 제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차산 떡볶이’라 불리죠. 고교 시절부터 다녔으니 벌써 발길을 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맛있는 떡볶이집이 있다면 찾아가서 먹는 애호가인 저도 누군가 추천해 달라고 하면 어김없이 이곳을 가장 먼저 꼽죠.

그런데 요즘은 가기 꺼려집니다. 얼마 전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소개된 후에는 북새통을 이루기 때문이죠. 테이블도 몇 개 없는 가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고, 포장해 가려는 이들이 서는 줄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의 건물 1층으로 입주하기 전 포장마차 시절부터 다녔던 제게는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동시에 참 아쉬운데요. 나만 알던 걸 모두가 알게 된 허탈함이랄까요?

근데 이 떡볶이집은 원래 유명했습니다. 특히 근처 선화예중·고나 리틀엔젤스예술단 출신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죠. 그래도 ‘나 혼자 산다’ 방송 전에는 줄 서서 먹지는 않았습니다. 이 집에서는 튀김은 팔지 않기에, 포장된 떡볶이를 들고 옆 튀김집으로 갔더니 담아주시던 아주머니가 툴툴댑니다. “저 집만 맛(집)인가?”

그러고 보면 요즘은 맛집의 천국입니다. ‘먹방’(먹는 방송)이 대세로 자리 잡으며 제작진은 전국 곳곳에 위치한 맛집들을 탐방하기 시작했죠. JTBC ‘밤도깨비’와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인 KBS 2TV ‘줄을 서시오’는 아예 출연진이 맛집을 찾아가서 함께 줄을 섭니다. tvN ‘알쓸신잡’에 소개됐던 강릉 두부집은 ‘밤도깨비’에 또다시 나왔죠. 그 결과는 어찌 됐을까요? 최근 그 두부집에 다녀온 지인은 말했습니다. “두부 맛을 보기보다는 사람 구경만 하다 왔어. 얼마 전만 해도 편하게 가서 먹고 왔는데, 이제는 못 가겠더라.”

먹방은 결국 음식업계에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겼습니다. 예능 제작진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맛집을 찾아가는데요. 그렇게 전파를 탄 맛집에는 또다시 손님이 몰리죠. 물론 맛집 주인은 잘못이 없습니다. 손님이 지불하는 음식값 이상의 맛으로 보답했을 뿐이죠.

하지만 곁에서 이를 바라보는 인근 음식점 주인들은 쓴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습니다. 맛집을 중심으로 주변 상권이 발달하길 기대할 수도 있지만,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 손님들은 다른 음식점으로 쉽게 발길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죠. 과거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를 외쳤던 개그맨 박성광은 공교롭게도 ‘밤도깨비’의 출연진입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즘은 그야말로 맛집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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