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장 인사, 아무도 모르게 하는 이유는…

정부, 투명성 높이겠다 했지만
결정 하면 뒤늦게 의사 표현
인선과정 숨긴 뒤 코드 맞추기

한국거래소 내정설에도 비공개
수협행장 후보도 ‘밀실 추천’

문재인 정부 들어 금융기관장 인선 작업이 줄줄이 비공개로 진행되면서 인사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관피아’ 등 낙하산 논란을 피하고자 인선 과정을 공개했던 최근의 금융권 분위기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인선 초기부터 ‘시그널(신호)’을 줬던 과거와 달리 자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최종 결정을 앞두고 암암리에 의견을 전달하는 특유의 ‘관치(官治) 스타일’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협은행 행장 추천위원회(행추위)는 18일 이동빈 전 우리은행 부행장을 단독 행장 후보로 추천했다. 이는 지난 14일 공모 마감 이후 나흘 만에 결정된 것으로, 지난 6개월간 두 차례 공모 파행을 겪으며 행장 선임이 쉽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란 평가다.

이 후보자는 35년간 은행에 근무한 여신관리 및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밀실 검증’이 이뤄지면서 일각에선 낙하산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최근 기관장 인선을 진행 중인 다른 금융기관들도 다르지 않다. 한국거래소는 석연치 않은 후보 재공모 절차를 거치며 특정 인사 내정설이 나오는데도 인선 절차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오는 26일 차기 회장을 내정할 예정인 손해보험협회와 조만간 인선작업을 시작할 생명보험협회 등도 인선 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해당 기관들은 “인선 과정을 공개해야 할 의무는 없다”면서 “자칫 최종 탈락한 후보자의 경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현직에 있는 후보자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비공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2014년 KB금융지주를 시작으로 우리은행, 신한금융지주 등 금융사들이 관치논란에서 벗어나 인사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인선 과정과 후보자 신상 등을 공개해왔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인사는 “과거 정부가 처음부터 특정 인사를 찍어 내렸다면 이번 정부는 자율적으로 뽑으라고 하다가 최종 후보를 결정하고 나면 그제야 의사 표현을 한다”면서 “괜히 인선 과정을 공개했다가 정부가 틀어버리면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내정자는 이날 이사회와 24일 주주총회를 거쳐 공식 선임된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