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호주車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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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지난 3일 호주 멜버른 인근의 토요타 공장에선 마지막 캠리 자동차가 생산 라인을 빠져나왔다. 토요타가 1963년 첫 해외 생산기지로 삼았던 곳에서 54년 만에 철수하는 순간이다. 공장이 있던 빅토리아주의 웨이드 누난 산업장관은 “굉장히 슬픈 날”이라고 했다. 20일에는 애들레이드 북부의 GM홀덴 공장에서 코모도어 세단이 같은 운명을 맞는다. 호주인에게 홀덴은 유난히 각별한 존재다. 1856년 마구류(馬具類) 제작업체로 출발한 홀덴은 GM의 자회사로 편입돼 1948년 호주 최초의 완성차를 만든 업체다. GM의 옷을 입었지만 호주 자동차, 나아가 호주 제조업을 대표하는 ‘토종 브랜드’로 오래 사랑을 받아왔다. 지난해 10월엔 포드가 호주 진출 91년 만에 문을 닫았다. 홀덴을 영결하는 20일은 ‘메이드 인 호주’ 자동차가 종언을 고하는 날이다.

호주가 ‘자동차의 무덤’으로 전락한 것은 고비용·저효율 구조 탓이다. 호주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광업 붐이 일면서 제조업 전반의 임금이 급등했다. 최저임금만 해도 세계 1위다. 인구는 2300만 명으로 내수시장이 좁은데, 60개도 넘는 브랜드의 외국 차까지 수입돼 혼전을 벌인다. 급격한 호주 달러화 절상과 잇단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수입 차 가격 경쟁력은 더 커졌다. 태국에서 만든 값싼 GM·토요타·포드까지 호주산을 위협할 지경이었다. 호주 정부는 구조조정 대신 파격적인 보조금으로 봉합했다. 강성 노조는 인건비를 낮추긴커녕 대폭 올리는 임금 안을 관철했다. 견디다 못한 진출 업체들은 결국 2013년을 전후해 잇달아 철수를 발표한다.

한국GM은 지난 17일 창립 15주년을 맞았지만, 뒤숭숭한 분위기다. 한국GM은 최근 3년간 누적적자가 2조 원에 달하고, 올 들어서도 큰 폭의 적자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GM 입장에선 더 이상 한국이 매력적인 생산기지가 아니다. GM 본사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고임금·저효율 구조와 강성 노조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다. 지난달 취임한 카허 카젬 사장은 직전 임지인 인도에서 내수시장 철수를 단행한 인물이다. 유일한 철수 방어 수단인 산업은행의 ‘거부권’ 15년 시한도 15일 종료됐다. 철수할 빌미는 쌓여가는데 문재인 정부는 고비용을 더 키울 노동정책으로, 노조는 임금 인상 파업으로 위협하고 있으니 무슨 배짱일까. 호주차(車)의 비극은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