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평지풍파로 끝난 ‘신고리 공론화’…脫원전 공약도 접어야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사 지속 여부를 논의해온 공론화위원회의 최종 결론은 ‘건설 재개’였다. 59.5% 대 40.5%라는 19%포인트 차는 최근 일련의 여론조사에서 찬반이 박빙이었음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 기치를 높이 든 후 정부 차원에서 중단 쪽으로 분위기를 몰았지만, 평지풍파만 일으키고 끝낸 셈이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도 명분을 잃었다. 공론화위가 신고리 5·6호기 문제와는 별개로 원전 축소·유지·확대를 조사해 각각 53.2%, 35.5%, 9.7%라고 발표했지만, 이것은 원론적 입장일 뿐 탈원전의 정당화 근거가 될 수 없다. 에너지 백년대계는 전문가들이 심사숙고하고, 국회 등 국민적 동의를 받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참여단을 통해 거대 국책사업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발상부터 무리였다. 신고리 5·6호기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38개월 간 심의 끝에 지난해 확정해 29.5%가 진척된 사업이다. 대표성은 물론 법적 지위도 없는 공론화위가 좌지우지한다는 건 대의민주주의를 거스르는 반(反)법치다. 원전은 고도의 과학기술과 숱한 변수가 얽힌 복잡다단한 사업이다. 관련 분야 전문가를 총동원해도 부족할 일을 문외한 471명에게 떠맡겼으니 이런 난센스가 없다. 공론화위 뒤에 숨은 정부는 무책임하다. 그 과정이 공정하지도 못했다. 공론화 방식을 채택한 6월 27일 국무회의에 이어 작전하듯 밀어붙인 5·6호기 공사 중단은 법적 하자 논란을 자초했다. 의견을 수렴한다면서 공사부터 중단한 것은 정부 의중을 공개리에 알린 ‘하향식 공론화’일 뿐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탈원전 정서를 대변하는 동영상이 올라왔고, 관련 부처의 기존 원전 홍보 자료는 사라졌다. 2030년 전력수요 예측은 대폭 낮춰 수정돼 원전 감축 논리를 뒷받침했다.

문 정부의 탈원전 공약은 에너지 전문가가 아닌 소수의 환경론자가 주도했다. 전문가를 배제한 채 졸속으로 이뤄진 공약이 국가 대계를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저명한 외국 환경·기후·에너지 전문가들은 탈원전 정책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해왔다. 태양광·풍력은 한국 지형에 맞지 않고, LNG로 대체해도 추가 비용과 함께 에너지 안보에 역행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늘릴 탈원전은 친환경과도 거리 멀다. 미국·유럽의 까다로운 품질 관문도 통과한 한국형 원전은 반도체 부럽지 않은 경제 자산이다. 기술력을 사장(死藏)시키고, 수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건 국익 자해(自害)다. 전기료 인상 등 국민 부담도 커진다.

원전은 가동 기간의 전후까지 생각하면 100년에 걸친 국책사업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논란은 있었지만 원전 중시 정책을 폈다. 설득력 있는 대안도 없이 집착하는 저의를 알기 어렵다. 정부는 졸속 탈원전 정책을 한시바삐 바로잡기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