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취업 블루오션 ‘강소기업’을 찾아라>인재·자본 내쫓는 규제…‘日 잃어버린 20년’ 한국도 온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낙연(오른쪽 네 번째) 국무총리가 지난 9월 28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화’에서 규제 개혁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부, 대기업도 동반자… 남은 과제들 - ② 기업 규제 완화

지나친 규제·높은 비용 부담
국내 시장 매력 많이 떨어져

2000년대 이후 역동성 하락
창조적 파괴·혁신 추구해야

산업 공동화 따른 고용 악화
국내 복귀한 기업 41개 불과

한시적인 계획은 도움 안돼
세심한 배려·정책 변화 필요

16세기 스페인은 명실상부한 유럽의 최강대국이었다. ‘바다의 끝은 절벽’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던 중세시대, 스페인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을 후원하며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신대륙 개발에 박차를 가해 남아메리카 볼리비아 포토시에서 은(銀) 광산을 발견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스페인은 강대국으로 도약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창설할 수 있었다. 스페인은 남북 아메리카 요지와 아프리카 해안 일부, 인도 일부, 필리핀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영광을 구현하기도 했다.

스페인의 번영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왕 펠리페 2세(1527∼1598)가 가톨릭 외의 종교를 탄압하면서 스페인 자본을 움켜쥐고 있던 유대인과 신교도들이 스페인에 등을 돌렸다. 인재와 자본이 빠져나간 스페인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결국, 약소국이었던 영국과의 해전에서 무적함대를 잃고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막대한 전쟁자금을 감당하지 못한 펠리페 2세 역시 결국 파산을 선언했다. 스페인을 탈출한 유대인과 신교도들은 네덜란드 등 신흥국들의 번영을 이끌었고, 스페인 ‘아르마다의 영광’은 그것으로 종말을 고했다.

◇지나친 규제, 국가 경제에는 ‘독(毒)’= 역사는 그 어떤 초강대국이라도 인재와 자본을 지키지 못하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진리로 보여준다. 규제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규제는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우리 경제의 역동성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이후 한국경제의 역동성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보고서는 경제성장률, 소비·투자, 생산성, 인구구조, 기업진입·퇴출, 기술혁신, 수출집중도, 산업 간 생산격차 등 모두 13개 항목으로 ‘경제 역동성 지수’를 산출했다. 그 결과, 2002년 4.48을 기록했던 우리나라 역동성 지수는 지난해에는 1.57까지 추락했다. 2015년 기준, 신생기업의 고용 비중은 2007년에 비해 2.9%포인트, 일자리 창출 기여율은 9.0%포인트 떨어졌다.

보고서는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려면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체질을 개선하고, 기업가정신에 기반을 둔 창조적 파괴와 혁신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며 “한계기업이 적기에 퇴출당할 수 있도록 기업구조조정 시스템을 정비하고, 혁신적 기업가의 창업을 저해하는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규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 옥죄기’가 탈한국 부추겨 = 정부의 기업 옥죄기는 국내외 기업의 ‘탈(脫) 한국 현상’을 가속화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윤한홍(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10년간(2006∼2016년) 우리나라의 해외직접투자 순유출액(국내기업 해외직접투자액에서 외국인 직접투자액을 뺀 액수)이 3.4배나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기업 규제와 높은 비용 부담으로 인해 국내 시장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해외로 떠나는 기업은 2.4배 증가한 반면, 그 빈자리를 메워줄 외국인 직접투자는 소폭 증가(1.9배)에 그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국내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크게 늘어 2003년 대비 2015년의 국내 제조업 해외생산 비중이 4.1배 증가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던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윤 의원은 25일 “국내 산업 공동화 위기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에도, 투자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규제 완화와 각종 지원제도를 쏟아내는 선진국과는 반대로 우리 정부는 ‘친 노동·기업 옥죄기 정책’만 양산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국내외 기업의 탈한국 행보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기업 배려해야 일자리 확대도 가능 = 최근 10년간(2005∼2015년) 제조업 기준 한국기업의 해외일자리는 3배 증가했지만, 외국인 투자기업의 국내 일자리는 1.4배 증가에 불과해 산업 공동화에 따른 국내 고용 악화도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2013년 ‘해외진출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법)’이 만들어졌지만, 국내로 복귀한 기업은 41개에 불과하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9월까지 3개 기업뿐이다.

성태윤(경제학) 연세대 교수는 “대외 여건 호조와 특정 산업의 호황으로 인해 경제 여건 개선이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각종 규제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조건 악화로 기업이 일자리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정부가 비용조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기업들에 줄 수 있어야 투자 여건이 개선되고 일자리 확대도 이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문식 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도 “일자리를 확보하려면 현장에서 일자리 인프라 구축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정책과 현장 사이에 괴리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한시적인 계획으로는 부족하고 각종 세제 지원 등 고용유지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기업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