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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10월 25일(水)
국가 아닌 ‘기술’에 의해 통제… 취약한 保安·화폐정체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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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에 문을 연 가상화폐 오프라인 거래소 코인원블록스 대형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대형 전광판을 통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코인원블록스에서 거래되는 가상화폐 6종의 시세를 제공하고 상담도 한다. 연합뉴스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⑨ 가상화폐의 현재와 미래

#1. 대학 때 경제원론을 수강한 독자는 교환의 매개수단, 계산의 단위, 가치의 저장수단으로서 화폐의 기능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나아가 화폐는 물물교환에 따르는 거래비용-욕망의 이중적 일치의 문제-을 극복함으로써 경제적 효율성을 높인다는 내용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화폐가 어떻게 인류 문명에 도입되었는지는 대부분 경제학 연구자들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널리 알려진 학술자료를 읽고 가늠할 뿐이다.

인류학자 N 안젤이 소개한 폴리네시아 야프(Yap)섬의 거석(巨石)통화, 같은 영국 출신의 경제학자 R 래드퍼드가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2차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사용된 담배통화가 그것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미국 교도소의 고등어팩통화도 같은 범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찍이 비경제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화폐 기원에 대한 애덤 스미스의 욕망의 이중적 일치를 부정하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들은 화폐의 본질이 오늘날 신용, 채권과 유사한 일종의 청구권이라고 인식한다. 인도유럽어족을 포함한 많은 언어에서 채무, 죄, 화폐에 해당하는 단어들이 같은 의미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사회학자 G 잉햄에 따르면 국가가 이 청구권을 양도가능한 채무로 인정할 때 비로소 화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청구권을 국가에 세금으로 ‘바칠 때’ 곧 양도가능한 채무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국가권력에 의해 독점된 주조화폐시대가 신용화폐시대로 진화한 것은 다양한 화폐가 경쟁, 거래비용을 줄여 효율성을 추구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화폐권력을 둘러싼 이익집단 사이에 갈등과 타협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화폐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은 중요하다. 인류 문명사상 수많은 화폐의 출현과 퇴장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가상화폐도 예외가 아니다.


#2. 그림은 사과를 가진 영희가 감을 원하나 감을 가진 바둑이는 철수의 배를, 배를 가진 철수는 영희의 사과를 원해 욕망의 이중적 일치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를 보여준다. 이때 영희가 먼저 철수와 사과와 배를 교환한 다음 다시 바둑이의 감과 교환할 수 있겠으나 만약 손을 탈 때 과일의 신선도가 떨어진다면 좋은 방법이 아니다.

대안은 영희가 돈을 주고 바둑이의 감을 사고 바둑이는 감을 판 돈으로 철수의 배를, 다시 철수는 영희의 사과를 사는 것이다. 결국 돈이 세 거래에 사용됨으로써 신선도가 떨어지는 물물교환의 거래비용은 사라진다.

한편 영희가 쓴 돈은 다시 영희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교환의 매개적 수단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못한다. 여기에 스미스의 화폐의 기원을 비판하는 논점이 있다. 영희가 무엇으로 돈을 발행하든 구성원이 돈이라고 인정하고 거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거래의 효율성을 따른다면 운반하기조차 어려운 거석통화 파이(fei)보다 파이의 소유권이 명기된 증서가 훨씬 낫다.

화폐의 대안으로서 영희에게 신용을 제공해 철수에게 사과를 팔기 전 바둑이의 감을 사 거래가 일어나는 신용시스템이 있다. 신용시스템은 영희의 신용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단지 감을 살 돈만 있으면 충분한 화폐시스템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거래 상대방이 지리적으로 멀리 있다면 화폐시스템은 신용시스템보다 불리하다. 한편 신용시스템은 영희가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신용을 공급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희가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영희의 신용을 다른 사람이 가로챌 때 신용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가상화폐는 영희가 멀리 떨어진 바둑이의 감 값을 직접 결제하는 것이 가능한 이상적인 화폐시스템이다.


#3. 비트코인의 등장으로 이제는 구분이 의미가 없게 된 암호화폐, 디지털화폐 또는 가상화폐는 돈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실물화폐와 같지만 사용자가 어디 있든 24시간 하루도 쉼 없이 사용 가능하다는 데 차이가 있다.

가상화폐는 사용자 간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금융이 가지는 비대칭적 정보의 문제, 즉 역선택과 모럴해저드를 타인이나 제3자에 대한 신뢰 없이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한편 기존의 금융시스템은 결제와 예탁과 같은 중앙집중시스템과 법적구속력으로 제어한다. 따라서 금융시스템의 신뢰는 금융회사의 공신력과 국가권력에서 나오나 가상화폐의 신뢰는 시스템을 작동하는 기술에 기반을 둔다.

가상화폐 거래를 비트코인의 거래메커니즘을 예로 들어 알아보자. 인터넷상에서 영희가 1XBT를 바둑이에게 양도한 거래내역을 암호로 서명해 사용자들에게 전달한다. 이 돈은 영희의 계좌에서 이체되었고 두 번 사용된 것이 아님이 검증되면 소유권 이전을 기록한 블록체인(block chain)이라고 하는 업데이트된 원장(元帳)이 생성되고 모든 사용자에게 배포된다.

여기서 보고된 거래가 참거래인지 증명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거래를 검증하는 과정, 즉 작업검증(proof of work)의 난이도는 네트워크 크기에 의존하도록 설계되었는데 사용자가 늘어나고 거래가 쌓일 때 검증에 필요한 시행착오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작업검증에 성공하면 거래수수료와 신규 화폐를 보상으로 받는다. 그런 이유로 작업검증을 채굴(mining)이라고도 하며 채굴자에 대한 보상이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비용이다.

한편 거래량이 증가할 때 더 많은 채굴이 이루어지고 따라서 통화량이 증가하나 통화공급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더 이상 신규통화의 보상이 중지되도록 설계되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가상화폐시스템이 반드시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것은 아니다. 블록체인 방식이 아닌 아이오타(Iota)는 채굴자가 없는 가상화폐다.



#4. 2009년 최초의 범용성을 가진 가상화폐로서 비트코인이 등장한 후 1000개 이상의 가상화폐가 쏟아졌다. BitMEX와 같은 가상화폐 파생거래소도 생겼다. 가장 큰 네트워크를 가진 비트코인은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2013년쯤부터 사용자가 크게 증가하였고 페이팔과 같은 대기업들도 결제수단으로 인정하였다. 2016년 연방준비제도(Fed)의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1% 이하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사용한 적이 있다.

한편 최근 가상화폐가 매우 높은 가격변동성을 보이자 가상화폐가 돈인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일어났다. 가상화폐가 돈이 아닌 투자자산이라면 그 내재가치를 따져봐야 하나 채권이나 주식과 달리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않아 쉽지 않다.

사용자 네트워크의 크기가 가상화폐의 내재가치로 본다면 네트워크의 가치가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하는 멧커프의 법칙(Metcalfe’s law)이 유용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사용자가 1만 명에서 100만 명으로 증가할 때 네트워크 가치, 즉 가상화폐의 내재가치는 1만 배 증가한다. 그러나 만약 네트워크 사용자들이 거래의 편이성 때문이 아니라 투자목적으로 가상화폐를 거래한다면 내재가치가 아닌 거품이 1만 배 증가한 것에 다름없다.

한편 가상화폐를 단순히 교환의 매개수단이 아닌 청구권으로 본다면 이 청구권의 소재를 생각할 때 국가권력과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많은 나라에서 가상화폐에 어떤 법적지위를 부여할지 주저하는 이유가 있다.

가상화폐의 열풍은 가상화폐를 이용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크라우드펀딩인 ICO(Initial Coin Offering) 붐을 가져왔다. 신생기업이 발행하는 토큰을 법정화폐나 기존의 가상화폐로 매입하는 ICO는 매입한 토큰의 가치가 오를 것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IPO(Initial Public Offering)와 유사하나 규제영역 밖에 있다는 데 중요한 차이가 있다.

기존 블록체인 플랫폼을 이용하는 ICO를 통한 토큰 세일은 가상화폐 붐을 재생산하였고 더불어 피싱, 폰지와 같은 사기행위도 일어났다. 가상화폐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기존의 금융시스템을 끼고 일어난다면 어떤 형태로든 국가권력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중국 정부가 모든 ICO를 금지하고 거래소를 폐쇄한 것은 가상화폐가 금융질서를 왜곡하고 해외자본 도피수단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5. 기술은 가상화폐에 대한 신뢰의 원천이다. 그러나 기술이 정체되지 않고 발전이 지속되는 한 그 신뢰는 지속되기 어렵다. 금과 달리 가상화폐는 완벽하지 않은 것이다. 네트워크상에서 컴퓨터 코드로 운영되는 실험기업 DAO는 제2위 암호화폐 이더리움(Ethereum) 플랫폼을 통한 ICO로 1억2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DAO 펀드에서 총발행된 이더(Ether)의 10%가 해킹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용자들은 투표를 통해 기존의 이더리움 블록체인, 즉 원장을 새로 교체했으나 며칠 후 폐기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기존 블록체인이 상장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블록체인은 변경될 수 없다는 불역성(不易性)의 원칙을 고수한 사용자들이 기존 원장을 그대로 사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은행시스템에서는 불가능했을 사건이 가상공간에서 일어난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2014년 일본 도쿄(東京)에 소재한 당시 세계 1위 비트코인 거래소가 파산했다. 가상화폐가 보안에 취약한 것은 돈이 든 소유자의 지갑(Wallet)이 원장과 분리될 수 없는 속성 때문이다. 지갑 안에 든 개인키가 해킹을 당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기술발전이 계속되는 한 현재의 가상화폐시스템은 흠이 없을 수 없고 앞으로도 보안에 노출될 위험이 상존한다. 그러므로 가상화폐가 확고한 틈새를 찾아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나아가 기존의 금융과 경쟁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흠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반면에 기존 금융은 블록체인 기술을 금융에 접목하고자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새로운 데이터 관리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한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컨소시엄인 R3는 작은 예에 불과하다.

가상화폐가 당면한 또 다른 딜레마는 화폐로서의 정체성이다. 높은 가격변동성은 가상화폐가 안전자산이기보다는 위험자산의 속성을 가지게 한다. 가상화폐가 위험자산의 속성을 가질 때 교환의 매개수단과 계산단위와 같은 화폐의 기능이 훼손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결과적으로 화폐의 범용성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가상화폐가 저금리 하에서 과잉유동성에 따른 거품일 뿐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있다. (문화일보 9월 20일자 25면 8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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