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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7년 10월 30일(月)
‘루터의 망치’500년과 懺悔(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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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엽 문화부 선임기자

10월 31일은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회 출입문에 ‘95개 조의 논제’를 못으로 박아 게시해 종교개혁의 불씨를 댕긴 지 5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루터의 망치’는 종교개혁의 의미뿐 아니라 이른바 암흑시대로 불리는 중세의 조종을 울렸고 서양의 근대(modernity)를 연 상징처럼 돼 있다. 그런데 팩트를 우선하는 역사학자들은 루터가 정말로 교회에 95개 조를 직접 게시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 근래 50년간 논쟁을 벌여왔다. 독일의 종교개혁 500주년 공식 사이트에도 ‘그 사실’을 증명해줄 결정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고 한다. 아마 이런 논란은 역사와 종교 모두에서 루터에 대한 양가적인 평가가 이어져 왔던 것과 무관하진 않은 듯하다.

루터는 교회 내부의 변화를 바랐을 뿐 새로운 종파를 만들거나 사회를 개혁할 뜻은 없었다. 대개의 거대한 변화가 그랬듯, 종교개혁은 시대 상황과 맞물리며 루터의 애초 의도를 훨씬 벗어나며 전개됐다. 당시 루터의 사상을 대중에게 전달할 인쇄술의 발달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의 95개 조에 먼저 반응한 건 종교 쪽보다 질곡에 허덕이던 독일 농민들이었다. 농민전쟁에서 농민들은 루터가 당연히 자신들의 뜻을 지지할 거라 기대했지만, 루터는 “제후와 관헌들의 죽음보다 농민들 모두의 죽음이 더 낫다”고 밝히며 자신의 일관성을 지켰다.

그렇다고 루터가 촉발한 종교개혁의 의미가 퇴색하진 않는다. 루터가 종교적으로 강조한 ‘구원’은 제국에서의 ‘해방’으로, 사상을 버리라는 요구에 답변한 ‘양심의 자유’는 모든 외적 구속에서의 자유라는 의미로 유럽에 퍼져나갔다. 르네상스에 이어 유럽의 정신적·지적 체계를 바꾸는 힘이 됐을 뿐 아니라, 훗날 칼뱅에 의해 더 정교해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는 근대 자본주의 형성의 정신적 기반이 됐다.

종교개혁의 성과를 부각하기 위해 이전의 가톨릭 교회를 악질적 기관으로 과장한 측면이 없지 않다. 당시 교회도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고 변화를 추진한 교황들도 나왔다. 그러나 잃어버린 도덕적 위신과 권위를 되찾기 위해 더욱 세속적인 권력과 물질에 집착했고, 비판자를 이단으로 박대하면서 교조주의에 갇혀 버렸다. 교회 스스로 예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이단이 되면서 개혁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중세를 암흑시대로 규정한 것은 이처럼 맹목적인 신앙과 도그마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올 한 해 다양한 행사를 벌여왔다. 역사적인 기념일을 앞둔 분위기가 좋지만은 않다. 지난 며칠 사이 국내에서 손꼽는 교단의 한 대형 교회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회 세습을 강행하는가 하면,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와 명설교로 이름이 난 목사가 여성 신자들과 성(性) 문제가 불거지며 물러나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와 다를 게 없다는 말들이 나온 지 오래다. 둘러보면, 개신교뿐 아니고 지금 한국의 주류 종교들이 하나같이 개혁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종교가 권력과 물질에 집착하고 신자들이 맹목적 신앙과 도그마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을 때가 암흑시대라는 게 종교개혁 500주년에 다시 새길 교훈이다.

ejyeob@
e-mail 엄주엽 기자 / 문화부 / 부장 엄주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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