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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10월 31일(火)
구원-고난 상징 십자가… 詩的 상상력과 성찰의 원천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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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가 기독교와 여러모로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간 많은 윤동주 연구에서 누차 강조돼온 사실이다. 윤동주 작품 중 종교적 작품이 6편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무서운 시간’은 그중 한 편이다.

유성호의 윤동주 100주년, 문학과 역사
- (8) 윤동주와 기독교


◇윤동주와 기독교

마르틴 루터에 의한 근대 종교개혁이 올해로 500주년을 맞았다고 연일 매스컴에서 강조하고 있다. 종교개혁이란, 로마 가톨릭의 역사적 과오와 한계를 비판하면서 시작된 ‘저항 종교’로서의 프로테스탄트가 새로운 근대를 열면서 중세의 인적, 제도적 질서를 허문 사건이다. 우리가 윤동주를 생각할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발생론적 원천처럼 생각하는 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트를 둘러싸고 그가 수용한 지적, 정서적, 영적 경험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윤동주의 시가 북간도 기독교와 여러모로 연관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그간 윤동주 연구에서 누차 강조되어온 터였다. 특별히 복음주의적 전통이 깊이 착근된 서북 기독교와는 달리, 민족주의를 사상적으로 받아들인 채 전개된 북간도 기독교는 그의 사유와 경험 체계에 매우 중요한 개성과 전기를 부여했을 것이다. 따라서 북간도 기독교는 윤동주로 하여금 수난과 영광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영적 선지자들의 계보를 잇는 종교적 프리즘으로 세상을 바라보게끔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동주의 시를 기독교라는 원리나 역사의 선명한 번안 정도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의 복합적인 내면과 언어와 전망은 기독교라는 원근법으로만 해석하기에는 워낙 강한 원심력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검출되는 종교적 상상력이란 내적 성찰과 완성을 향하여 저류(底流)에서 흐르는 힘이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그러한 지향이 잘 담겨 있는데, 그 점에서 이 시집은 식민지 시대에 쓰인 가장 중요한 종교적 상상력의 보고이기도 하다.



◇윤동주의 종교적 작품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윤동주가 직접 자선하여 실은 종교적 작품은 모두 여섯 편이다. 이미 창작 노트에 훨씬 많은 작품을 써놓은 터에 그 가운데서 윤동주가 열여덟 편만을 뽑았다는 것은, 이 시집 원고가 1941년 11월 시점에서 윤동주 시의 정점이었음을 잘 알려준다. 그 점에서 이 시집 원고에 종교적 작품이 여섯 편이나 된다는 것은 매우 높은 비중이 아닐 수 없다. 시집에 실은 순서대로 보면 ‘태초의 아침’ ‘또 태초의 아침’ ‘새벽이 올 때까지’ ‘무서운 시간’ ‘십자가’ ‘바람이 불어’ 등이 그 목록을 차지한다. 먼저 ‘태초의 아침’에서 윤동주는 신의 창조 사역이 완전무결한 질서로 귀결된 것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모순으로 둘러싸인 세계로 나아갔다는 개성적 인식을 드러낸다. 가령 그는 ‘사랑’과 ‘뱀’, ‘독(毒)’과 ‘어린 꽃’이 갈등적으로 공존하는 세계를 노래한다. 이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조를 동반하면서 선명하게 모순과 갈등으로 점철되어갈 세계를 예견하게끔 해준다. 이어지는 작품 ‘또 태초의 아침’ 역시 창조의 과정에서 계시와 함께 낙원 상실이 함께 왔음을, 그리고 원죄와 부끄럼과 노동과 해산이라는 인간적 고통의 목록들이 연이어 역사 안으로 개입해왔음을 증언한다.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라는 마지막 행의 다짐은 신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함의하기도 하지만, 갈등의 시대에 자신을 숨기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희생적 이미지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새벽이 올 때까지’는 이러한 창조와 희생의 이미지가 종말론적으로 반추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종말론이란 지상에서의 마지막 일들에 관한 예언 혹은 묵시적 가르침을 함의한다. 이는 신의 뜻에 의한 역사의 완성을 전제로 하는데, 이를 통해 인간은 신의 뜻에 따라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동기를 부여받게 된다. 새벽이 되어 울려올 “나팔소리”는 죽음과 삶의 반영체인 ‘잠’과 ‘젖’을 하나로 묶어주면서, 결국 ‘죽어가다’와 ‘살아가다’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종말론이 운명적 비관론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종말론적 관심은 ‘무서운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연계되는데, 이 작품에서 윤동주는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와 그것을 일종의 윤리적 의지로 탈바꿈시키려는 사명감을 함께 보여준다. “일이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은 어쩌면 ‘사랑’과 ‘뱀’이 함께 창조된 그날 아침의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그다음에 실린 ‘십자가’는 윤동주 종교 시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윤동주는 희생과 속죄양 의식을 동시에 노래한다. 사실 ‘십자가’는 기독교 전통의 표상이자 고난의 상징이다. 시인은 첨탑 위의 십자가가 비록 구원에 이르는 길일지라도 그것이 너무 높고 다다르기 힘든 대상임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그래서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라면서 서성일 뿐이다. 그러나 윤동주는 여기서 ‘또 다른 십자가’를 상상함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얻어간다. 그것은 인류의 고통을 짊어지고 괴로워했던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높고 날카로운 천상의 십자가가 그리스도가 기꺼이 졌던 지상의 십자가로 몸을 바꾸는 순간이다. 이때 우리 시사의 한 절창이 이어진다. 그것은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는 구절이다. 이는 앞으로 시인 자신이 겪어야 할 수난과 희생의 장면을 뚜렷하게 암시하는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바람이 불어’는 그러한 종교적 갈등을 벗고 십자가를 내면화한 채 나아가는 출사표와 같이 다가온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라는 구절에서의 ‘반석’과 ‘언덕’은 단연 신약성서의 키워드이다. 그것은 가혹한 수난과 굳건한 기초라는 함의를 한꺼번에 띠면서 윤동주가 비록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고 고백할지라도 앞으로 시대와 신앙을 결속하면서 움직여갈 것임을 암시해준다. 이처럼 시집에 실린 여섯 편의 작품은 ‘창조-모순-갈등-희생-종말-십자가-반석’의 서사를 완성하면서 그가 원숙한 신앙적 단계를 경험하고 반추하고 또 귀납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여섯 편은 내용적으로도 하나같이 중요하지만, 실린 순서도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새로운 종교성을 향하여

그런가 하면 윤동주가 시집 원고를 마련한 후에 쓴 ‘간’이라는 작품은, 윤동주 시의 일반적 주제인 자아와 세계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라는 문제를 설화를 빌려 파고들어 간 결실이다. 작품 안에는 두 개의 설화 곧 프로메테우스와 귀토 설화가 뒤섞여 있다. 이 둘은 간이라는 공통 소재를 중심으로 결합되어 있다. 여기서 토끼의 설화는 현실의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 환상을 꿈꾸지만 자신이 바라던 이상 세계는 갈등의 현세이며 지상이 소중한 낙원임을 깨닫는 인간의 자각을 담은 이야기이다. 토끼는 바닷가 바위 위에 간을 말리고 있으며 그 둘레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킨다. 이때 시인은 코카서스의 큰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묵묵히 감내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로 상상을 이어간다. 여기서 간은 인간의 실존적 본질로서 매일 쪼아 먹히면서도 새로 돋아나는 인간적 고통의 핵심이 된다. 토끼와 독수리는 인간의 양면 혹은 두 개의 자아를 표상한다. 곧 독수리는 화자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을 쪼아내며 자신에게 아픔을 주는 내부의 예리한 의식이다. 곧 이것은 현실적 자아를 반성하는 도덕적 결백성의 반성적 자아이다. 화자는 이 고통을 통해 반성적 의식이 살질 것을 기대하며, 용궁의 유혹을 벗어나 보겠다는 덧없는 환상에 빠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는 어떤 초월적 희망에 대한 환상도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고, 고통스러운 자기 응시의 긴장을 항구적으로 택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결연한 의지로 맞서는 비극적 인간 곧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으로서, ‘십자가’의 속죄양 의식과도 적극적으로 상통한다. 결국 이 작품은 윤동주 시에서 가장 의지적이고 적극적인 자아상이 등장하는 시편이다. 설화를 상상적으로 변용하여 시인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존엄성을 잃지 않는 이상적 자아의 모습을 설화 주인공과 동일시하여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종교적 상상력은 설화적 차용의 모티브뿐만 아니라, 견인과 의지라는 표상을 역설적으로 제시해주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이처럼 윤동주에게 새로운 종교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단초가 되어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호 융합적인 활달한 상상력은 그의 생애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 후 그는 일본으로 떠났고, 다섯 편의 도쿄(東京) 시편을 남겼을 뿐이다.


▲  윤동주가 1942년 유학했던 일본 도쿄의 릿쿄대.

◇가혹한 현실을 견디게끔 해준 견인의 바탕

윤동주는 생애 내내 학생이었고 학교도 여럿 다녔다. 그 가운데 명동소학교, 은진중학, 숭실중학, 연희전문은 물론, 일본의 릿쿄(立敎)대학과 도시샤(同志社)대학도 모두 개신교 계열의 미션스쿨이었다. 윤동주가 근대적 의미의 종교개혁이나 이스라엘 수난사로서의 성경 내러티브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또 그것을 자신의 의식 전면에 장착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윤동주에게 종교란 자신을 성찰하고 완성해가는 중요한 원천이자 통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슬픔과 연민, 죽음과 부활의 연쇄적 서사는 어떤 의미로든 그에게 “나한테 주어진 길”을 상상하게끔 했을 것이며, 성경 안에 자욱하게 펼쳐진 어둑한 묵시록이나 종말론은 모두 가혹한 현실을 견디게끔 해준 견인의 바탕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윤동주는 제재 차원의 배경적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은총과 갈등을 함께 가능하게 한 광장이자 감옥으로서의 종교를 경험하고 상상했다. 그래서 그의 시에 나타나는 종교란, 경험적 구체성과 함께 한국 기독교 시의 역사에서 가장 개성적인 갈등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장관으로 다가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과는 그를 척박한 근대 종교사에서 가장 우뚝한 시인으로 서게끔 해주는 핵심적 질료가 되었던 것이다. 이 점은 김현승, 박목월, 박두진 등의 종교 시편들과 함께 궁구되어야 할, 우리 근대시 역사 전체에서의 윤동주 득의의 성취일 것이다. (문화일보 10월 10일자 25면 7회 참조)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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