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과 마지막 춤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 청남대로 들어가는 길가의 튤립나무 가로수가 단풍으로 노랗게 물들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튤립나무는 목련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노랗게 물드는 단풍이 일품이다. 이 길은 시민단체 생명의숲이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선정하기도 했다.

드라이브 하기도 걷기도 좋은 숨은 코스 6곳

때 이른 추위로 단풍의 물결이 빠르게 남하하고 있다. 단풍을 만나려면 숲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때로는 뒤로 물러서 길 위에서 즐기는 단풍이 더 화려하고 감동적인 때도 있다. 숲속에 들어 두 발로 걷는 것보다, 차창을 열고 도로를 달리며 단풍을 감상하는 게 더 나은 곳도 있다는 얘기다. 딱 이즈음에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면서 단풍을 볼 수 있는 잘 안 알려진 명소와 코스를 골라봤다.

# 은행나무 노란색 속으로…충남 보령 장밭마을

충남 보령에는 곱게 물드는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이 있다. 청라면 장현리의 장밭마을이다. ‘은행마을’로 더 잘 알려진 장밭마을에는 마을에서 자라는 은행나무만 3000그루를 헤아린다. 이곳의 은행나무는 가로수로 세워둔 은행나무처럼 경관이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열매 수확을 위해 마을 주민들이 심어 기른 것들이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한 그루 한 그루 임자가 다 있다. 한꺼번에 조밀하게 심은 것이 아니라서 숫자에 비해 압도적인 경관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넓은 들판과 마을 이곳저곳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은행나무 풍경이 오히려 더 푸근하다. 은행나무가 가장 아름다운 곳은 신경섭 전통마을. 여기서 청둥오리가 푸드덕 날아오르는 청천저수지를 지나서 화암서원과 보령 아산병원,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36번 국도를 지나서 아궁이 속 숯불처럼 붉게 달궈진 오서산 휴양림의 단풍 숲을 만나는 게 순서다.

# 가을볕 속으로 달리다…경북 성주 독용산성

경북 성주의 독용산성은 영남지방의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이다. 산 아래서 독용산(995m) 정상 부근의 산성까지는 터널을 방불케 하는 숲길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 임도가 6㎞ 남짓 이어진다. 이 숲길이 온통 단풍이다. 굽이를 돌 때마다 빼어난 조망과 함께 현란한 단풍이 펼쳐진다. 첩첩이 겹쳐진 가야산의 산봉우리도 보이고, 멀미가 날 정도로 현란한 색감의 단풍도 만날 수 있다. 산성으로 오르는 임도는 폭이 좁은 데다 대부분 구간은 가드레일이 없는 아찔한 벼랑길이지만 포장이 잘돼 있고 길의 높이와 굽이도 부드럽다.

가을 성주에서는 옥계천변에 들어선 작은 정자 만귀정을 빼놓을 수 없다. 뒤로는 가야산의 칼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맑은 계류는 단풍의 붉은빛으로 물드는 곳이다.

# 단풍이 비단을 펼친 듯…충북 제천 금수산

금수산은 발치에 충주호의 푸른 물을 두르고 있어 다른 계절에 찾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지만, 유독 가을 단풍색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산이다. 단양군수로 부임했던 퇴계 이황이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감탄해 기존의 백암산이란 이름 대신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수산으로 바꿔 불렀다고 전해진다. 금수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천 시내에서 82번 지방도를 이용한다. 병풍처럼 펼쳐진 산봉우리와 충주호를 바라보며 달리는 이 길은 가을 단풍과 호수를 즐기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충주호의 담수로 수몰 위기에 있던 문화재를 모아 조성한 청풍문화재 단지에는 단풍나무와 활엽수가 조경수로 심어져 있어 오후의 가을 햇살에 오색등처럼 빛난다. 제천에는 굵은 소나무가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의림지와 박달재, 월악산, 배론성지 등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관광지들이 곳곳에 있다.

# 튤립나무 단풍 가로수길…충북 청주 청남대

대청호반에 들어선 청남대는 20여 년 동안 대통령 별장으로 이용되다가 충북도로 반환돼 청주시 청원구의 대표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개방 초기 반짝인기를 누리다가 신비감이 떨어진 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지만, 몇 년 전부터 빼어난 자연경관이 빛을 발하면서 여행자들이 늘고 있다. 가을 단풍 드라이브 코스는 경찰초소가 있던 13문에서 22문 사이에 조성된 튤립나무 가로수길이 단연 최고다. 전나무처럼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목련과의 튤립나무는 가을이면 붉고 노랗게 물들어 환상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가로수길은 총연장 2.3㎞로 짧긴 하지만, 정취가 그만이어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청남대에서는 12일까지 국화축제도 열려 짙어가는 가을 단풍과 함께 그윽한 국화향도 즐길 수 있다.

# 단풍도, 감도 붉다…전북 완주 동상저수지

위봉산에 둘러싸인 완주의 동상저수지는 여행지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사실 동상저수지는 다른 계절에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지만, 가을이면 저수지를 둘러싼 숲에 단풍이 불붙으면서 최고의 풍경을 빚어낸다. 특히 대아저수지에서 동상저수지를 따라 이어지는 호반도로인 732번 지방도는 호수를 끼고 불붙는 단풍 길을 따라 드라이브의 운치를 만끽할 수 있는 코스다. 대아저수지는 운암산과 동성산에 둘러싸인 호수의 물이 남쪽의 동상저수지와 이어져 있다. 저수지를 따라가다 만나는 마을에는 감나무들이 유독 많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집집마다 곱게 깎아 처마 밑에 내건 곶감의 주황빛도 가을의 맛을 더해준다. 단풍으로 물든 위봉산 자락에서 위봉 폭포가 그림처럼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감상할 수 있다.

# 마지막 단풍을 만나다…강원 정선 만항재

강원 정선은 가을 단풍이 이르게 물든다. 해발고도가 높은 산자락의 활엽수 단풍잎은 일찌감치 다 떨어졌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단풍이 있다. 낙엽송 단풍이다. 찬바람 부는 늦가을이면 낙엽송 잎마다 샛노랗게 단풍이 물들어 반짝인다. 정선 땅 곳곳에 낙엽송 군락지들이 흔하지만 그중에서 추천할 만한 곳이 남한 땅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함백산의 지맥이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자락을 타고 넘는 고개, 만항재다. 만항재 정상 부근에는 우람하게 솟은 낙엽송들이 촘촘하게 서 있다. 일교차가 큰 가을 이른 아침이면 자주 운무로 휩싸여 운치가 더해진다. 고한읍 쪽에서 만항재로 길을 잡아 오르다 보면 적멸보궁으로 이름난 정암사가 있다. 정갈한 맛이 풍기는 정암사의 가을 풍경도 나무랄 데 없다. 만항재에서 함백산까지 포장도로가 놓여 있으나 아쉽게도 차단기가 내려져 있다. 길 끝이 함백산 정상인데 걸어 올라간대도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는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