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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時評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02일(木)
혁신 생태계 출발점은 官治 혁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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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前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4차 산업혁명은 우리가 일하고 배우고 노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면서 국가 간에 극명하게 승자와 패자를 가를 것이다. 2016년 다보스 포럼은 한국이 그동안 이뤄낸 성공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경종을 울렸다. 지금까지 한국은 빠른 추격자의 나라였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추격자가 하던 일의 대부분을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무장된 기계로 대체시킬 것이며 모두가 선도자(first-mover)가 될 것을 요구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다른 사람이 준 문제를 풀게 할 것이 아니라, 동료와 협력해 새로운 질문을 찾아내고 이 질문에 기계가 답하게 만드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시장에서는 10명 이하의 종업원 규모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기업과 고객을 상대하는 ‘소규모 다국적기업’이 세계 곳곳에서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우리와 같이 높은 고용 안정성을 보장하는 정규직은 사라지고 있으며 정부 기관은 전혀 관료적이지 않은 혁신 기관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가 최근 겪는 많은 고통(학생의 입시 압박, 청년의 높은 실업, 여성의 낮은 경제 참여)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전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도 국가 대전환에 대한 위기의식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은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서로를 공격하는 데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고, 관료는 극심한 부처 이기주의로 국익을 훼손하고 있으며, 학자는 좁은 전공에 갇혀서 융합 연구의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업가도 선진국에서처럼 창업가나 중소기업에 멘토링을 하고 엔젤 투자나 벤처 투자에 열성을 보이지 않는다. 과연 한국이 어떻게 하면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대전환을 이뤄내어 4차 산업혁명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까?

우리 모두 힘을 모아서 ‘혁신 생태계(innovation ecosystem)’를 조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혁신 생태계는 기업가·연구자·투자가·공무원 등이 지속적으로 경쟁하고 협력하여 고위험·고가치의 연구·개발(R&D)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모델, 플랫폼, 상품, 산업을 끊임없이 창출하며 진화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혁신 생태계의 조성을 위해 무엇보다 관치(官治)부터 혁파해야 한다. 과거에는 정부가 정부출연연구원을 통해 선진국으로부터 기술 도입을 지원하는 동시에 기업의 기술 고도화와 산업 구조의 선진화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산업정책을 추진하면서 빠른 추격자를 지원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정부가 학계와 산업계를 통제하고 지시하던 관치를 과감히 철폐하고, 기업·대학·정부출연연구원 등이 훨씬 더 높은 자율성을 기반으로 선도자들 간의 협력과 경쟁을 통해 혁신을 이뤄내는 혁신 생태계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과 대학과 출연연구원에 대한 직접 통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선도자를 위해 두 가지에 주력해야 한다. 첫째는, 실패를 용인하는 것이다. 선도자가 추격자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엄청난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과거 추격자를 지원하던 타성으로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관료적인 규제와 엄격한 감사를 고집하면 선도자의 혁신을 죽이게 된다. 둘째는, 선도자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경우 주로 서로 다른 분야나 전공을 융합하면서 이뤄지는데, 관료 조직이 영역 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해도 혁신을 죽이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협력적인 팀워크가 가능한 조직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정부는 혁신 생태계의 기반이 되는 인재 양성, 노동시장, 국방 등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교육에서는 학습혁명이라고 할 만큼 근본적인 학습 방식의 변화를 통해 선도자를 길러내야 한다. 선도자가 마음껏 시행착오를 통해 도전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향으로 노사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 국방도 미국의 경우 국방 R&D가 국가 R&D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민간이 할 수 없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R&D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도 정부가 기업을 직접 지원하는 과거의 관행을 과감히 버리고, 교육·노동·국방 등의 분야에서의 근본적인 혁신을 통해 혁신 생태계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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