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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03일(金)
“평생 詩로 사랑을 노래했는데… 거기서 인간의 보편성 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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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조 시인이 지난달 30일 서울 효창원로 ‘예술의 기쁨’에서 손글씨로 준비한 인터뷰 답변 내용을 보며 “이 시대의 시인으로서 무언가 깊고 넓은 사색의 언어를 동시대인에게 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숙제처럼 적어왔다”며 웃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김남조 시인·예술원 회원

중학생 때 타고르에 감동
그때부터 내 문학 기둥돼

90 되니 안보이던 게 보여
마음은 시간따라 늙지않아
되레 삶 깊이 들어가는 것

젊은 시인들 절실함 없어
이상함을 참신함으로 착각
비애·고뇌의 시간을 겪어야


김남조(90)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충만한 사랑’엔 저자 약력이 없다. 얼굴 사진도 없다. 시인이 그걸 다 빼자고 했고 출판사 열화당이 그에 응한 것이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세계시인대회(1990) 계관시인이었던 그가 이름 뒤에 이런저런 사족을 붙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략’은 오만보다는 담백에 가깝다. 오직 시의 아취(雅趣)로 독자를 만나고 싶은 게 노시인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에 그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만 83세의 시인은 빙판에 미끄러졌다며 지팡이를 짚고 걸었으나 무척 건강해 보였다. 조쌀한 얼굴에서 시인 특유의 결곡한 기품이 묻어났다. 7년 후 다시 만난 시인은 외모로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동할 때는 역시 지팡이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으나, 심신에서 풍기는 기운은 여전히 짱짱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에 있는 ‘예술의 기쁨(김세중 미술관)’ 2층.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온 그가 의자에 앉아 손님을 반겼다. 파마를 한 특유의 헤어스타일이 낯익었다. 그는 이날 다채로운 빛이 조화를 이룬 블라우스에 검은색 카디건을 입고 쥐색 코트 위에 초록빛의 긴 머플러를 살짝 둘렀다. 애써 치장한 느낌을 주지는 않으면서도 세련된 멋을 풍기는 차림이었다.

인터뷰에 동참한 문학 담당 김인구 기자는 “피부가 어쩌면 그렇게 고우세요”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김 시인은 “모습이 좀 그래서 몇 년 전부터 텔레비전 등의 출연을 사양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초 “늙은 몸으로 가능하면 긴장은 피하고 싶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 했으나, 이 시대를 고뇌하는 문학인으로서 언론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도 뜻 있겠다 싶어서 응한다”고 했었다.

그에게 예상 질문을 몇 개 미리 보냈다. 그의 장남 김녕 교수(서강대 교육대학원)의 이메일을 통해서였다. 노시인을 예우하고 싶어서였기도 했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사색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질문을 받아들였으나 어떤 것은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것은 대개 자신의 지난 일이 자랑처럼 드러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었다.

시인은 예상 답변의 내용을 손글씨로 종이에 자세히 적어서 갖고 왔다. 그게 여러 쪽에 달했다. 그러나 인터뷰의 묘미는 역시 서로 예정한 것이 아닌 즉흥 대사, 즉 애드리브에 있다. 그는 자신이 겪어온 일들에 대해 표현을 지극히 절제하면서도 진솔하게 전달했다. 또 이 시대의 정치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면서도 할 말은 하는 어른의 태도를 보여줬다.

인터뷰에 앞서 인사를 나눴던 김녕 교수는 “혹시 정치에 관해서 대화한다면, 편이 갈리는 이야기말고 보편적으로 통 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노시인이 정치에 대해 언급한 것이 오해를 사서 구설을 낳는 것을 막고자 하는 아들의 원려(遠慮)였다. 시인은 “정치학을 공부한 적이 있는 아들이 어머니를 염려해 조언했고, 그 마음이 참 고맙다. 그러나 나는 문학인으로서 내 나름대로 말할 방법이 있다”며 웃었다. 그 방법으로 그가 사용한 언어들은 풍성하고 여유로웠다. 그 광휘는 듣는 이를 깊고 넓은 성찰의 마당으로 이끌어 가기에 충분했다.



―이번 시집 ‘충만한 사랑’을 낸 후 언론이 관심을 갖고 보도했습니다.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책이 나온 9월 26일이 주민등록에 기재된 제 생일입니다. 출판사인 열화당에서 그날에 맞춰 책을 만들어 보여줬습니다. 참 품격 있게 만들었더군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날 한 신문사의 기자가 우연히 출판사에 들렀다가 그걸 보고 다음 날 기사를 썼습니다. 다른 언론에 책이 배달된 것은 열흘간의 추석 연휴가 지나서였습니다. 기자들로서는 신선감이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였는지 책 나온 후의 언론 반응이 예전에 비해 적막했습니다만, 좋은 기사로 다뤄 준 곳이 꽤 있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책 모양에서 격조가 느껴지더군요. 열화당에서 특별히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혹시 내 마지막 책이라면 전통이 있는 열화당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최선을 다해 준 것 같습니다. 편집장이 제작 중간에 책 표지도 보내주면서 제 의견을 물었습니다. 역시 결과가 좋더군요. ”

―책머리에 ‘만년의 으스름 저문 날을 살면서도 보고 느끼고 깨닫고 감동하는 바에서는 변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현재의 연세에 젊었을 때보다 더 좋은 것이 있습니까.

“많이 있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그동안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사람의 가슴이 그냥 시간에 따라 늙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저 스스로 삶의 깊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는 잎이 한 번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 굉장히 숙연하고 가슴에 와 닿습니다. 시 ‘순교’에 적은 것처럼, 예수그리스도가 한 번만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순교 때마다 똑같이 한 번 더 돌아가신다는 깨달음도 이 나이에 왔습니다.”

―이번 시집에 대해 ‘서정시가 가지는 영원성이나 근원에 대한 탐구 의지에 지속적으로 접근해간다’(유성호 문학평론가)는 평이 있더군요. 동의하십니까.

“평론가는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잠재의식까지를 탐색하고 거기서 뭔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예술가보다는 학자라고 할 수 있죠. 오늘의 시인들은 과학자적인 탐색을 합니다. 시인의 의식이 복잡해지고 상징도 다양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현실은 답답합니다. 작은 존재를 가지고 그 안에서 뭔가를 찾아야 합니다. 겨자씨만 한 촉매가 오래오래 조금씩 자라나기도 하고 갑자기 화약이 터지듯이 불붙기도 하고…. 그 작은 것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 모든 직업 중에 시인이 가장 참담합니다. 언젠가 박목월 선생의 부인을 만났는데, 목월 선생이 ‘이마로 바위를 가는 사람’이었다고 하더군요. 심장을 꿰뚫고 끊임없이 생각이 끓어오르는 것을 다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 작품집에서 ‘상사병’이라는 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상사병이 불치병이라고 하셨는데.

(‘불치의 내 상사병/백 년 세월에도 못 고치는/ 만성질환이/죽을죄로 부끄럽습니다… 원수 같은 상사병은/ 나 죽은 후에도/ 심장이 살아남아 두근두근/ 맥박 치면 어이할까요.’)

“시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생 사랑을 갈구합니다. 작품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갈구를 품어서 부풀리고 강하게 만들고 그 안에 어떤 질서 있는 보편성을 배합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자서전적인 요소를 기본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누는 보편성 속에 내 마음도 이렇다는 것을 내놓는 것이니 거리낌이 없는 것이지요. ‘당신이 그 나이에?’라고 할 수 있겠으나, 누군가의 그 마음을 찾아본다면 제 안에도 그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다른 사람과 자기의 마음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서 실오라기를 철사로, 철사를 강철로, 통틀어 인간적인 말로 감정에서 솟아나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그는 한국 서정시의 산맥에서 사랑시, 즉 연시(戀詩)의 한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남녀 간의 간절함뿐만 아니라 절대 존재에 대한 종교적인 그리움을 담고 있다. 그런데도 미모의 여성 시인이 사랑시를 많이 발표해서 대중의 인기를 얻자, 한때 구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사련(邪戀)에 빠졌다는 게 구설의 졸가리였다. 그는 속상했으나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 에세이집에서 토로한 바 있다.

노시인은 이번 인터뷰에서 과거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떤 특정한 남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워낙 바쁘고 유명하니까 남성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어요. 설혹 서로 호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멀어졌습니다. 그러면 그게 시로 나오기도 했고, 또 그걸로 상을 받기도 했고….(웃음)”

―이번 시집에 가톨릭 신도로서의 신심(信心)이 많이 배어 있습니다. 구원을 추구하는 신심과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봐야 하는 시심(詩心) 사이의 간극은 어떻게 메우십니까.

“어디까지가 신앙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적인 사랑인지 구별이 안 되게 같은 색채로 풀어지는 것입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 인도의 시성 타고르를 읽었습니다. 일본어로 된 시집이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놀랍고 아름답고 매혹적이고 그리고 아프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그때부터 (사랑을) 제 삶과 문학의 큰 기둥으로 삼았습니다. 남의 보물을 빌려서 그것을 기본으로 그 세계를 꽃피워 평생 사랑 타령을 하게 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 타령이 다행히 다른 사람들의 것과 같았고 인간의 보편성이 솟아났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의 세계로 갔습니다. 이 두 분이 내 문학의 영원한 수원지(水源地)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따르면, 불행한 여성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는 절망을 사랑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랑과 헌신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그는 연작시를 통해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를 따라가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다는 절망을 느끼곤 했다고 고백했다.

―이번에 또 다른 시집 ‘시로 쓴 김대건 신부’(고요아침)도 나왔습니다. 신도가 아닌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느꼈으면 하십니까.

“신도가 아닌 사람도 이 책을 읽고 김대건 신부를 알게 되면 깊이 공감할 것입니다. 이분은 정말 한국 교회를 이끌기 위해 할아버지 때부터 하느님이 정하신 듯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할아버지는 옥사했고, 아버지는 참수됐으니 피보라 속에서 그 뜻이 더 굳어진 것이지요. 김대건 신부는 (만 25년만 살았으나) 외국어도 여러 개 하고 세계지도도 번역할 정도로 능력 있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이렇게 (순교를 할 정도로) 하느님을 사랑했다면 얼마나 사람을 사랑했을까요. ‘신 안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 안에 신이 계신다’는 진리! 비록 신도가 아닌 사람일지라도 이 책을 읽으면 놀라면서 숙연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일부 원로 시인께선 젊은 시인들의 요설이 독자와 시를 멀어지게 한다고 걱정하시더군요. 젊은 시인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현대사회의 문인이 가진 약점은 절실함의 희박성이라고 보입니다. 지금 젊은 시인들은 고통의 심층이라는 게 없어 보입니다. 너무 위로가 쉬워요. 실연한 심정을 피로 쓴 김유정의 절박성 같은 게 없는 거지요. 그러면 그들은 무엇으로 이를 채울 것인가. 강렬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바꾸면서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양한 시가 나옵니다. 그 안에는 모방적이거나 허술한데도 좀 이상하게 쓰는 것을 새로운 것으로 착각하는 게 있어서 (원로) 시인들이 걱정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시대에도 선천적인 비애와 고뇌 같은 게 있어서 밤을 지새워 무언가를 뒤적거리며 글을 쓰는 젊은 시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대견합니다. 이런 세상에 그대들이 없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더 삭막할 것인가. 허전할 겁니다. 좋은 시 쓰는 젊은이들은 이 시대의 등불입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시인으로도 유명합니다. 시인 장관에게 거는 기대가 있다면.

“도 장관은 인간성이 매우 좋은 분이죠. 소박하고 따뜻합니다. 작품도 훌륭합니다. 예술과 문화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반면, 정치는 규율과 통솔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도 장관의 고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사람(도 장관)은 현 대통령과 절친해서 정치적 무장이 강할 겁니다. 강해서 정치 쪽이 더 셀지도 모르죠. 그러나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역시 인간적인 것, 개체의 비극성을 품어야 합니다. 시를 쓸 때처럼 고뇌와 추위와 캄캄함을 이겨내며 겸허히 애쓴다면 양쪽을 다 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열정과 노력을 기대합니다. 이 시대의 좋은 문화 창달에 기여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90년을 사시면서 한국의 정치를 두루 겪으셨습니다. 이른바 적폐 청산이 화두가 돼 있는 현재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제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면 잘못될까 봐 김 교수(아들 김녕 교수)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시인으로서 제 나름대로 이야기하는 화법이 있습니다. 정치는 예측불허의 세계로 낯설고 삭막하고 허전합니다. 그러나 나라의 존폐와 영욕의 열쇠를 정치가 쥐고 있기에 무관심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정치가 해야 하는 일은 잘 보는 것입니다. 잘 본다는 것은, 단색으로 질주하며 하나만 깊이 집중해 보는 게 아니고 큰 윤곽의 전체를 본다는 것입니다. 적폐 청산이란 게 전혀 무용하지 않겠으나 미래에 쓸 힘과 지혜와 열정을 과거에 들이붓는 것은 손실입니다. 그것도 개인 손실이 아닌 국력 손실입니다. 국가 대계의 시간은 미래를 위해 써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과거 적폐, 적폐 하는 동안 다른 나라는 더 많이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바꾸기 위해 너무 빠르게 서두르는 것도 우려합니다. 우리 정치에 ‘농부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농부가 어제 씨를 뿌리고 오늘 ‘왜 싹이 안 나나 ’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는 과거 정권이 잘못한 일만 파헤치고 잘한 일에 대해서 말 못 하는 분위기가 돼 있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우파 정권에서도 좌파 정부에서 잘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좌파 정권에서도 우파 정부에서 잘한 일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정부라도 잘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책머리에 ‘이 시대 우리의 현실은 평화와 위안이 격심한 궁핍에 처해 있다’고 쓰셨더군요. 평화와 위안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입니까.

“저는 우리나라가 아직 너무 어리다고 생각합니다. 저더러 식민지에서 태어났다고 하셨는데, 저는 우리나라가 주권을 확립한 지 겨우 70년이 넘었다는 점을 자주 생각합니다. 정치와 국민에게 성숙을 요구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정치는 더 너그럽고 더 넓게 봐야 합니다. 작은 구멍을 보고 네가 몇 년 전에 나를 어떻게 했는데 하며 따지는 것은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데서 오는 미성숙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들은 기분이 안 좋겠지만 사실입니다. 저를 포함한 국민은 기다리고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미래를 아끼고, 미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서 희망을 찾자면 역시 교육입니다.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은 뒷세대들 교육을 많이 했고, 세계인적인 식견에 다다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어떤 침착성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때의 정치인과 국민은 앉아서 사색도 하고….”

그는 이 대목에서 우리 시대 남성의 위상이 회복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어렸을 때는 남존여비가 문제였는데, 이제는 오히려 거꾸로라는 것이 그의 인식이었다. 집안에서의 경제력·발언권이 여성에게 있다 보니 남성은 위축되고 고독해진다는 것이다.

‘강하고 외로운 아버지/시인이자 철학자이며/무한 사랑인 우리의 아버지들을/오늘의 세상에선/문안이 아닌/문밖에 세워두고 있다.’(시 ‘아버지의 초상’ 중)

그는 “남성의 위상이 복구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정말 어려울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시인이라는 이름 앞에 평생 ‘여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았던 그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뜻밖이었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남자의 외로움을 알겠습니다. 엄마보다는 아빠가 소외돼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다녀와서 부르는 이름은 엄마지 아빠가 아닙니다. 남성은 고독할 수밖에 없지요.”

그의 이야기를 듣던 김인구 기자가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초등·중학생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40대 남성인 김 기자로서는 크게 공감이 갔던 모양이다.

―1960∼1980년대 신문·방송·잡지를 통해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대담하는 여성 시인으로 유명했는데

“당시 남성은 많았는데 여성으로는 나설 사람이 없어서 제가 유일한 여성 주자였던 셈입니다. 구상·피천득·송지영·김형석·이어령·김동길 같은 분들과 박범신 소설가도 있었습니다. 그때 이야기는 한마디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다양한 각도로 보는 인간의 행복과 아름다운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남성 중에 정말로 큰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이가 있습니까.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그 창업주를 언급해서 그렇긴 하지만,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을 꼽고 싶습니다. 영토가 넓은 땅의 지주와 같은 품을 지닌 분이셨지요. 그분과 한 여성지에서 대담을 했습니다. 정 회장은 경제, 저는 사랑을 이야기했는데 참 잘 통했습니다. 그분은 문학을 좋아해서 시 낭송회 등 문단 행사에도 많이 나왔습니다. 해변 시인학교에 가서 집을 지어주기도 했지요. 국익을 도모했던 경제 거인의 면모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분의 낭만성과 인간적 외로움도 있습니다. 정 회장이 어렸을 때 에피소드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아이가 있었대요. 애들끼리 신발 벗고 노는데 그 아이의 신발을 자기의 신발 속에 집어넣었더니 꼭 맞더라는 거예요. 그랬는데 며칠 동안 (여자아이 생각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소박하고 낭만적인 데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요즘 건강검진을 위해 석 달에 한 번 서울아산병원에 가는데, 거기 있는 정 회장 흉상을 지날 때마다 한 번씩 멈춰서 바라봅니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는 마음으로.”

인터뷰=장재선 문화부장 jeijei@munhwa.com
e-mail 장재선 기자 / 문화부 / 부장 장재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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