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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명작의 공간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03일(金)
인연을 연인으로 만들어준 극장앞 광장… 낭만에 접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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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은 영화 ‘접속’의 주인공들이 PC통신을 통해 알게 된 후 사랑을 키워가는 주요 공간이다. 1997년 이 영화 개봉 당시 단관이었던 이 극장은 2004년 8개 관을 갖춘 멀티플렉스가 됐고, 이름도 CGV피카디리1958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극장 앞은 여전히 ‘접속’에서처럼 누군가를 만나는 만남의 광장으로 애용되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98) 영화 ‘접속’의 배경 피카디리 극장

1960년 ‘서울키네마’로 개관
종로 극장시대 단성사와 쌍벽
런던 예술거리 명칭따서 개명
80~90년대 참신한 영화 개봉

PC통신 통한 러브스토리 히트
한국 영화 고전으로 자리매김
영화의 가장 주요 공간인 극장
서로의 인연임을 암시하는 곳

2004년 멀티플렉스로 재탄생
과거의 흔적 찾아볼수 없지만
각박한 서울 도심속 오아시스
낭만·휴식의 공간으로 건재해


서울 종로거리는 가을빛이 완연하다. 사람들은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며 코트 자락을 여민다.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가니 CGV피카디리1958이 보인다. 과거 단성사와 쌍벽을 이루면서 종로 극장가 전성기의 한 축을 담당했던 피카디리극장이다.

피카디리극장은 1958년 설치허가를 얻고, 1960년 서울키네마라는 이름으로 영화의 상징인 종로 한복판에 개관했다. 그러다 1962년 영국 런던의 대표적인 예술거리인 피카디리가(街)를 따서 피카디리극장으로 명칭을 바꾼 후 한국영화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 피카디리극장 바로 건너편에는 단성사가 있었다. 단성사 또한 한국영화사에 있어 상징적인 극장이다. 한국인에 의해 제작된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1919년 10월 27일 상영되며 한국영화 사상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역사적 장소다. 하지만 두 극장은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단성사가 올드한 느낌을 준다면 피카디리극장은 트렌디한 이미지다. 특히 피카디리극장에서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고래사냥’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결혼이야기’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 등 당시 한 획을 그은 참신한 한국영화들이 개봉됐다. 그뿐만 아니라 이 극장은 1997년 개봉한 영화 ‘접속’의 배경이기도 하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고 들었어요” 등 주옥같은 대사를 남긴 ‘접속’은 지금도 한국영화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며 여전히 영화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인터넷 인프라가 지금처럼 발달 되지 않았던 1990년대에는 PC통신이 활발했다. 그런 시대상을 감안하면 PC통신을 통해 사랑을 만들어간다는 설정은 당시로써는 가히 획기적일 만하다.

이 영화는 사랑의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이 PC통신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면서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렸다. 갑자기 떠난 옛사랑을 잊지 못하고 폐쇄적인 삶을 살고 있는 라디오 PD 동현(한석규)과 친구의 애인을 짝사랑해 가슴 아파하는 케이블TV 쇼핑가이드 수현(전도연)은 얼굴도 모른 채 PC통신으로 대화를 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어느 날 동현은 옛사랑으로부터 낡은 음반을 받게 되고, 수현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악에 매료돼 PC통신을 통해 신청한다. 음악을 신청받자 동현은 옛사랑 그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PC통신에 접속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실망한다. 그러나 수현이 자신처럼 외로운 사람이며 반응 없는 사랑에 대한 열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통신 속 만남이 빈번해지면서 그들은 어느덧 서로에게 빠져들고, 가상공간에서의 만남을 벗어나 얼굴을 맞대고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기로 약속한다.

피카디리극장은 이 영화의 주요 공간이다. 수현과 동현이 서로에게 인연임을 암시해주는 공간으로 사용됐고,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영화 초반, 그들은 피카디리극장에서 각자 홀로 영화를 본다. 영화가 끝나기 전 먼저 나온 수현과 영화가 끝난 뒤 인파 속에 섞여 있던 동현은 극장 앞에 서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지 못한 채, 그렇게 스쳐 지나간다. PC통신을 통해 가까워진 두 사람이 현실 세계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곳도 피카디리극장 앞 스타광장이다. 하지만 동현이 이날 옛사랑의 부고를 듣고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하면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게 엇갈린 만남 속에서 수현이 마지막으로 동현에게 LP판을 전해주기 위해 또다시 약속을 잡게 되는데 그 장소도 피카디리극장이다. 이 장면은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의미를 확인시킨다.

영화 개봉 후 20년이 지나 피카디리극장 앞 광장에 서니 마치 ‘접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마음이 설렜다. 수현이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가려고 할 때 뛰어오는 동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이 손에 잡힐 듯 가슴속에 흐른다.

지금은 대형 멀티플렉스가 곳곳에 있고, 다양한 영화들이 매주 쏟아져 나와 영화를 보는 것이 큰 행사가 아니지만 예전에는 극장에 가기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들떠있었다. 극장에 예매시스템이 없던 시절, 영화를 보기 위해 매표소 앞에 줄을 서야 했고, 특히 화제작이 나오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줄에 갇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때는 한 영화가 여러 개의 스크린에 걸리는 일은 드물었고, 대부분이 단관 개봉했다. 또 공공연히 암표를 팔기도 했다.

이렇게 잘 나가던 단관 극장들은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1998년 멀티플렉스가 생기며 급속한 추락을 거듭했다. 피카디리극장도 2004년 8개 관을 갖춘 멀티플렉스로 거듭났다.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현대적 감각을 갖춘 건물로 재탄생한 이곳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극장 이름도 프리머스 피카디리, 롯데시네마 피카디리를 거쳐 현재는 CGV피카디리1958로 바뀌었다. 지하 2층에는 1960년부터 최근까지 시대별로 뽑은 배우 20인의 사진과 메시지가 놓여있으며 지하 4층 갤러리에는 과거 극장 앞 스타 광장에 새겨졌던 영화인들의 핸드프린팅이 전시돼 있다. 단성사는 2010년 휴관에 이어 2015년 폐관했고, 그 자리에는 주얼리타운이 들어섰다. 단성사 앞에는 이곳이 과거에 명성을 떨쳤던 극장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듯 영사기 조형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마침 피카디리극장을 찾은 그날이 ‘한국영화의 날’이었고, 건너편 단성사 자리에서 원로 영화인들이 모여 옛날의 추억을 되살리려는 듯 조촐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접속’은 우리가 살아가는 서울의 도시 미학을 잘 담아낸 영화다. 이 영화가 아름답게 비칠 수 있는 것은 도시가 담고 있는 매력을 충분히 묘사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란 순수한 대자연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일부인 도시에서도 느낄 수 있다. 화려한 야경과 높게 치솟은 대형 빌딩,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로 대변되는 각박한 서울에서 살고 있는 도시인들에게 극장과 음악다방, 심야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등이 휴식을 제공했고, 즐거운 추억으로 삶을 윤택하게 해줬다. 이렇듯 ‘접속’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재조명했다. 서울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이 영화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 언젠가 만날 것 같은 사랑 등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 영화가 세련되게 다가오며, 이야기에 여전히 공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또 시간이 지나며 변하는 인간관계와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과거에는 편지와 유선전화로 관계를 만들고, 이어갔지만 1990년대부터는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통신수단이 보급되면서 문자와 무선전화로 감정을 교류하고 관계를 지속했다. 그렇게 시대와 사회적 여건이 변화하며 젊은이들의 사랑 방법도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젊은 관객들은 이 영화가 제시한 새로운 사랑법에 폭발적인 반응을 나타냈고, 150만 명을 동원한 이 영화는 그해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종로거리에는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을 저녁 바람이 눈가를 스치는 거리에 차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종로 극장가 전성기를 주도했고, 시대를 앞서가는 한국영화로 많은 관객을 불러 모은 피카디리극장. 과거의 명성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이 극장 앞은 영화 ‘접속’에서처럼 누군가를 만나는 만남의 광장으로 애용되고 있다.

양경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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