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골프에세이>쌀쌀해진 바람… 연탄·쌀 메고 결식 노인들께 다녀와야겠습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스카이72의 가을 멀리 보이는 노을 진 하늘은 시인의 마음을 흔들고 아름다운 페어웨이는 골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2017년 작. 김영화 화백

얼마 전 단풍이 절정인 경기 가평의 한 골프장을 찾았습니다. 조석으로 일교차가 심해 어느덧 옷깃을 여며야 하는 겨울로 치닫고 있습니다.

함께한 친구가 “날씨가 추워지니까 그 사람이 생각나네”라고 했습니다. 이 늦가을 어떤 로맨스가 있나 한껏 기대하고 귀를 쫑긋했습니다.

“왜 12월이 되면 우리가 찾아가던 곳 있잖아. 쌀하고 연탄 들고….”

잊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힘들어서 슬쩍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해에는 못 했으니 올해는 배로 준비해서 찾아가 노래도 불러드리고 밥도 해드리자고 합니다. 이제 친구들 대부분이 부모님이 돌아가셔서인지 어르신들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날 라운드 내내 더블보기 이상, 벙커, 해저드, OB, 스리 퍼트를 하면 1만 원씩을 거뒀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이 23만 원이 됐습니다. 이걸 종잣돈으로 11월 말까지 모아 ‘쌀 한 포대의 기적’을 다시 만들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86아시안게임 체조 국가대표 선수로 훈련 중에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된 김소영 씨와 ‘휠체어보내기운동본부’를 만들어 실천한 것이 어느덧 25년이 넘었습니다. 국내 장애우는 물론 북한, 네팔 등지까지 1000여 대의 휠체어를 보냈습니다.

지난해에는 근이영양증 장애가 있는 배재국 군이 서원밸리 그린콘서트 자선기금으로 기증한 전동휠체어로 뉴욕마라톤대회에서 완주하기도 했습니다. 허석호 프로와 함께 시작한 ‘사랑의 버디’ 행진, 결식 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사랑채’에 쌀과 연탄을 전달해 온 것이 벌써 30년 가까이 됩니다. 이스트밸리, 동촌골프장 등과도 자선활동을 해왔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이행하려는 골퍼와 골프장 덕분입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주려 하기보다 얻으려고만 합니다. 또한 남에 대한 배려와 사랑은 나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과 선을 베푸는 데 있어 나중은 없습니다. 남을 도와주는 사람은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마음이 먼저 행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따스한 밥 지어 행복하게 드실 수 있도록, 가슴이 따듯한 연탄과 쌀 한 자루 메고 결식 어른들께 다녀와야겠습니다. 골프장의 늦가을 단풍과 쌀쌀해진 바람이 사랑을 알려 줍니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