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나>“體典 교포선수 부족하다니… 아르헨서 사비 들여 왔어요”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학재 아르헨티나 한국종합병원 이사장이 지난달 19일 제주 블랙스톤 골프장에서 전국체전에 출전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학재 아르헨 한국종합병원 이사장

지난달 교포 골프선수로 출전
단체 14위·개인전 25위 올라

야구선수 출신 한창땐 장타자
베스트 이븐파… 홀인원 2차례
아내와 즐기는 최고의 운동
함께 해마다 고국 찾아 라운드

아르헨티나 교포 이학재(57) 한국종합병원 이사장이 특별한 고국 나들이를 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여느 때처럼 한국에서 아내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지난주 제주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충북 일대에서 열렸던 전국체전 교포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했다. 2명이 출전한 아르헨티나 교민 골프대표팀 일원으로 지난달 26일까지 사흘간 진천의 아트밸리 골프장에서 대회를 치렀다. 별다른 준비 없이 참가에 의미를 뒀기에 15개 교포 팀 가운데 단체전 14위, 개인전 25위를 차지했다. 휴식차 한국에 온 그가 체전에 출전한 사연은 이렇다. 요즘 현지 교민 체육회의 체전 출전 경비 보조가 없어지고 체전에 대한 열기가 식어 선수를 채우기도 힘든 형편인데 때마침 한국행을 앞둔 그에게 교민회에서 체전 출전을 부탁했던 것. 그는 이렇게 개인 경비를 대고 체전에 나갔다.

출전에 앞서 지난달 19일 제주 블랙스톤 골프장에서 이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1985년 결혼 후 사업이 안정되면서 27세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사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어느 날, 친구가 지인과 골프를 칠 때 골프장으로 갔던 게 골프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민 가기 전 중학생 야구선수를 했고, 이민 가서는 검도를 배웠다. 부산에서 초등학교 시절 양상문 LG 트윈스 단장과 서로 다른 팀에서 맞붙기도 했다. 야구 배트를 휘둘러 봤던 그는 골프채를 거침없이 휘두르며 장타를 날리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비거리 270∼280야드를 날리며 파 4홀에서 ‘원온’ 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80대 스코어가 대부분이지만 블루티에서 이븐파까지 쳐봤다. 그는 “거리 욕심을 버리니 남들만큼 보내는 대신, 정확도가 한결 높아졌다”고 말했다. 현재 공인 핸디캡은 7. 그는 아르헨티나 현지 교민 중 골프 고수들만 모이는 ‘화요모임’ 회원 13명 중 어느덧 최고 연장자가 됐다.

이 이사장은 현 아르헨티나 대통령 동생이 운영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컨트리클럽 회원이다. 이곳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50여 개 골프장 가운데 최고 명문클럽으로 최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찾을 정도.

그는 홀인원을 2차례 작성했다. 지난해 말 아르헨티나의 이투사인고 골프클럽에서 한인골프협회가 주관한 공식 대회 때 16강전에서 처음 기록했고, 이후 회원으로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컨트리클럽에서 지난 4월에 행운을 안았다. 골프 입문 30년 동안 없던 홀인원을 6개월 사이에 두 차례나 기록한 것.

그는 1975년 중3 때 가족과 함께 이민 간 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부친이 일궈온 의류기업 ‘라보라 패션’을 운영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한창 때 하루에 스웨터만 5000장을 만들었고, 2∼3시간 만에 ‘완판’하기도 했다. 한 시즌 몇 달 만에 순수익만 100만 달러 넘게 벌던 때도 있었다.

이 이사장은 의류사업으로 번 돈으로 교민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었다. 그는 이민 초기, 몸이 아파 현지인이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지만 증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불편했고 진료비도 비쌌다. 그는 이후 “돈을 벌면 교민을 위한 병원을 차리겠다”고 다짐했고, 20년 만에 꿈을 실현했다. 병원은 개원 이래 20년째 적자. 아르헨티나에는 전체 교민의 80% 이상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고 있지만 당장 수술이 필요한 중환자보다는 간단한 치료와 검진이 필요한 환자가 주 이용층이다. 소위 ‘돈 되는 환자’는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운영하는 병원에 대한 교민들의 만족도는 훨씬 높아졌다. 현지 의료진과 파트타임 계약을 맺어 요일별로 진료과목을 달리해 현재 진료과목만 70개나 된다. 몇 해 전부터 삼성서울병원과도 협력을 맺어 서비스가 좋기로 소문나면서 현지인들도 병원을 찾을 정도다.

이 이사장은 10여 년 전부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매년 2∼3차례 고국 나들이를 하고 있다. 8년 전 우연히 제주로 여행을 왔다가 블랙스톤 골프장을 돌아본 뒤 마음을 뺏겨 바로 회원이 됐다. 그는 지금도 회원이 된 것을 “참 잘한 일”이라면서 그 덕에 한국에도 자주 오고 제주를 꼭 들른다고 말했다. 한국에 오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정도 머물면서 아내와 옛 친구들과 함께 골프를 즐기고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는 골프를 젊을 때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운동으로 치는 경향이 짙어 못 친다고 창피해하지 않고 평일보다는 주말에 운동 삼아 즐기는 정도”라고 소개했다.

현지인과 클럽대항전을 나갔을 때 에피소드. 그곳 사람들은 우리 정서와 달라 남에게 대놓고 쓴소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 이사장이 드라이버를 쳤는데 볼이 해저드에 들어갔다고 하자, 10여 년 동안 알고 지내던 동반자가 “볼이 물에 들어간 걸 명확히 본 사람이 없으니, 분실구로 처리해 원래 지점에서 다시 쳐야 한다”고 냉정하게 지적했다. 경기 후 동반자가 다가오더니 “룰대로 잘 쳤다”고 격려하며 사심이 없었음을 표시했다.

이 이사장은 “아내와 20년 이상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골프처럼 재미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골프는 치고 나면 ‘다음에 더 잘 쳐야지’ 하는 간절함으로 늘 아쉬움을 남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골프가 없었다면 사업도 지금처럼 잘 꾸려 오지 못했을지 모르고, 3개월마다 여행을 다닐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내와 함께 1년에 최소 2차례 정도는 지구촌 곳곳을 다니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점차 한국에 대한 애착이 커지는 것 같다”며 “계속 건강하게 골프를 치면서 여건이 허락하면 해마다 고국에서 6개월 정도 머물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제주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