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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07일(火)
생성-소멸 ‘自然의 숭고’ 앞에서 본래 혼자인 ‘나’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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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 지방 솔즈베리에 있는 고대 주거지를 그린 ‘올드 새럼’. 광활한 지평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불가피한 소멸과 몰락의 운명을 드러내며 비감과 함께 숭고미를 드러낸다.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9) 자기 자신과 만나는 용기
- 컨스터블의 풍경화 두 점

광활한 지평·피어오르는 구름
그 사이에 터만 남아있는 성채

컨스터블 그림의 풍경 요소는
모든 사라지는 것에 대한 비유

그림을 보며 느끼는 悲感은
운명적 삶을 자각하는 체험

숭고는 자신을 직면하는 용기
문명의 결합이 만든 美와 달라

죽음·사랑 등 중요한 순간에
인간은 본래부터 홀로 있어

대자연 앞에서 발견한 자아
숭고의 체험은 실존과 대면


우리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현실에서든 자연에서든 아니면 예술작품에서든, 특이한 것들이다. 이 특이한 느낌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아주 거대한 것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숭고(sublime/das Erhabene)의 미는 크기의 거대함, 그 압도성에서 온다는 점에서 여느 다른 미와 다르다. 하지만 숭고의 체험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이를테면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풍경이 너무도 거대하고 엄청나서 사람을 압도하는 경우도 있고, 상상 속의 마귀굴(伏魔殿)이나 해 저물녘의 호숫가 풍경처럼 기이하고 무서운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으며, 드넓게 펼쳐진 황량한 대지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그 가운데 나는 탁 트인 들녘이나 해안가 혹은 넓디넓은 폐허의 풍경을 좋아한다. 그런 풍경화를 그린 화가 가운데 영국 사람으로는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1776~1837)이 대표적이다. 그의 두 작품만 감상해보자.

# 컨스터블의 풍경화

컨스터블의 그림은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나는 그의 여러 그림 가운데 ‘웨이머스 만’(Weymouth Bay·1816)이나 ‘올드 새럼’(Old Sarum·1834) 같은 것을 좋아한다.

먼저 ‘웨이머스 만’(53×75㎝)을 살펴보자. 이 그림의 제목은 ‘웨이머스 만’으로 돼 있지만, 여기에 묘사된 실제 풍경은 오스밍턴 만(Osmington Bay)으로 알려져 있다. 구글 어스로 검색해보면 그곳은 웨이머스 만 옆에 자리한, 좀 더 작은 만이다. 컨스터블은 1816년 10월 2일에 마리아 빅널과 결혼해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왔다. 1809년 그는 자신보다 12세나 어린 그녀와 사랑에 빠졌고, 그 후 7년이 지나 결혼했다.

‘웨이머스 만’ 풍경화는 왼편으로 바다 물결이 출렁이고, 화면 중앙에는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경사진 암벽이 서 있다. 모래사장 저 멀리로는 거대한 산 구릉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이 구릉의 경사는 급하지 않고 완만해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구릉 위로 가을 구름이 하얗거나 푸르게, 혹은 갈색과 청색 그리고 회색으로 뒤섞인 채 피어나고 있다.

흔히 낭만주의 회화는 ‘자연에 신적 생기를 부여하는 것’으로 정의되지만, 이것은 개인적 상상이나 환상이 자연적·우주적 관계 속으로 스며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웨이머스 만’에서 묘사된 자연의 풍경도 낭만적 자아의 표현이겠지만, 그것은 낭만주의 이론에서 강조되듯이, 절대화된 주관성의 표출이라기보다는 객체에 대한 충실한 사실 묘사에 더 가깝지 않나 여겨진다. 말하자면 그것은 바다 물결이나 구름 모양에서 드러나듯이 매 순간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상(物像)의 풍광을 빛과 공기의 색채적 어울림 속에서 잘 포착하고 있다. 23세 무렵 컨스터블은 그 이전의 풍경화 대가들, 카라치(A. Carracci)나 로랭(C. Lorrain) 혹은 루이스달(J. Ruisdael) 같은 사람들의 작품을 열심히 모사했고, 이들 그림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또 다른 풍경화 ‘올드 새럼’은 유화인 ‘웨이머스 만’과는 달리 수채화로 그려져 있고 크기도 그보다 좀 더 작다(30×48㎝). 이 그림은 오른쪽에 접힌 듯한 자국에서 드러나듯이 나중에 잇댄 것이다. ‘올드 새럼’은 잉글랜드 지방 솔즈베리에 있는 고대 주거지다. BC 3000년쯤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BC 500년쯤 철기시대에는 방어를 위해 성채 모양으로 언덕을 쌓은 곳이다. 그러다가 AD 43~400년에 로마인이 살면서 성채 외에 성당도 있는 도시로 건설됐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는 영국의 중요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다. 저 유명한 정복자 윌리엄이 지배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고, 그 뒤 많은 군주와 교회 영주가 이곳을 거쳐 갔다.

‘올드 새럼’은 크기는 작지만 드넓은 황무지를 그리고 있다. 그림의 중앙에는 거대한 성벽의 둘레가 마치 원형경기장의 외벽처럼 휑뎅그렁하게 자리하고, 그 왼편 아래 펼쳐진 들녘에는 무성한 초목이 서 있다. 이 풀과 나무들 사이로 양들이 곳곳에 흩어져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그림 왼편 앞쪽으로는 한 목동이 개와 함께 마치 화면 밖으로 나오려는 듯, 한 떼의 양을 몰며 걷고 있다. 저 멀리 올드 새럼의 성채 너머로는 뭉게구름이 진한 회색빛 속에 펼쳐져 있다. 어쩌면 곧 비가 올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모든 풍경의 요소들은 가고 오는 것들-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구름이든 대기든, 풀이든 나무든, 개든 양이든, 이것들은 모두 잠시 있다가 이내 사라지고 마는 사물들을 생각하게 한다. 불가피한 소멸의 이 필연적 경로에서 거대한 성채는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성채 둘레에 있었던 성당과 도시는, 그리고 이 도시를 지배하던 권력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이 그림에서 만약 숭고를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 광활한 지평이 자아내는 어떤 비감(悲感)-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불가피한 소멸과 몰락의 운명 때문일 것이다. 컨스터블의 풍경화는 1820년대 파리에서 전시됐고, 그 후 이른바 바르비종 화파를 비롯한 프랑스 풍경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존 컨스터블의 1816년 작품인 ‘웨이머스 만’은 물결이나 구름 같은 매 순간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상의 풍광을 빛과 공기의 색채적 어울림 속에서 잘 포착하고 있다.

컨스터블은 쉼 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현상을 포착하고자 애썼고, 이렇게 사라져 가는 사물의 희미한 윤곽을 아른거리는 빛과 색채 속에서 정확하게 표현하길 열망했다. 삶의 그 어떤 것도 자연의 열기와 냉기, 바람과 빛과 비의 내습(來襲)을 피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이 냉엄한 풍화작용 속에서 결국 사멸하고 만다. 자연의 풍경이 그렇고,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아마도 이런 인식 때문이었을까. 컨스터블은 자기 삶에 엄격했던 것 같다. 아내가 일곱째 아이를 낳고 41세의 나이로 죽자, 53세이던 그는 이후 검은 옷만을 입고 지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오직 남겨진 일곱 아이를 돌보며 살았다고 한다. 숭고한 그림풍경은 자연풍경에서 이 숭고함을 읽어내는 화가의 윤리적 숭고함과 무관하지 않다. 자연의 물리적 숭고는 화가의 윤리적 숭고를 거쳐 예술의 숭고미로 고양되는 것이다.



# 자기를 향한 용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숭고미의 작용이다. 이것을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즐거운 공포(delightful horror)’라는 이율배반적 개념으로 불렀다. 숭고에 대한 이런 버크의 생각을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는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정리했다.

“버크는 인간에게 두 가지의 기본 충동이 있음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하나의 충동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충동은 공동체의 삶을 살려는 것이다. 숭고의 감정은 앞의 것에 놓여 있고, 아름다움의 감정은 뒤의 것에 놓여 있다. 아름다운 것은 결합하고, 숭고한 것은 분리시킨다. 미는 사교와 친교의 적절한 형식을 만들어내고 예의범절을 세련되게 함으로써 사람을 문명화시킨다. 그에 반해 숭고는 자아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이 깊은 자아를 온전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다. 숭고의 느낌만큼 인간에게 자기 자신을 향한 용기를, 근원성과 본래성으로의 용기를 주는 심미적 체험도 없다.”(Ernst Cassirer, Die Philosophie der Aufklarung, Tubingen 1932, S. 442f.)

카시러 논평에서 요지는 세 가지다. 첫째,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충동-자기보존의 충동과 사회적 삶의 충동이 있다. 둘째, 아름다운 것은 결합하고, 숭고한 것은 분리시킨다. 셋째, 미는 사교와 친교의 적절한 형식을 만들어냄으로써 예(禮)와 관련되는 반면에, 숭고는 자아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이 깊은 자아를 온전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숭고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무엇일까. 카시러의 논평에서 핵심은, 나의 생각으로는 바로 이 점-숭고는 “자아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이 깊은 자아를 온전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용기를, 근원성과 본래성으로의 용기”를 준다. 이런 점에서 숭고는 미보다 훨씬 역동적인 범주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윤리적인 범주다. 숭고에는 벌거벗은 자아와 직면하게 하는 자기성찰적·자기초극적 계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자아란 온갖 관습이나 사회화 과정에서 주어지는 것들-돈이나 명예, 권력이나 지위가 덧씌워지기 이전에 ‘단독자’로 자리할 때 자아가 갖는 본래적 모습이다. 우리는 숭고의 체험 속에서 자아의 원형상(原形相/Ur-bild)과 만나고 그 고양 가능성을 탐색한다. 숭고미의 독특한 점은 바로 이 단독자로서의 자아와의 만남에 있다.



#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다

앞에서 나는 숭고와 관련해 여러 특징을 언급했고 그 특징으로 전율과 공포, 파악 불가능성과 기형성 등을 들었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란 ‘자기와의 대면’이다. 숭고의 체험에서 인간은 밖에서 주어진 특성이나 위치가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의 단독적 모습과 만난다.

사실 인간은 처음부터 홀로 있다. 그러나 이 홀로 있음은 사회화 과정에서, 또 사회생활에서 주어지는 온갖 규범과 관습의 울타리 안에서 이런저런 외피를 입는다. 그리하여 한 개인의 정체성도 그 자신이 가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사회가 만들어준 것이기 쉽다. 인간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본래 모습을 점점 잊는다. 숭고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잊어진 자신의 본래 모습이다. 이때의 나는 여러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 않다. 그저 ‘홀로’, 저만치 떨어진 채 있다.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인간은 예외 없이 혼자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진지한 일에 있어서 인간은 이름 없이 혼자다”라고 시인 릴케는 쓰지 않았던가.

이를테면 죽음이나 사랑 혹은 외로움에서 인간은 결코 집단적으로 자리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인 채로 느끼고, 홀로 쓸쓸하게 감당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외로이 죽어갈 뿐이다. 물론 태어나 죽기 전 사이에 사는 동안 개인과 개인은 서로 어울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회적 관계는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같은 사회적 교류를 앞뒤로 규정하거나 그 토대를 지탱하는 더욱 근본적인 사실은 ‘단독자로서의 홀로 있음’이다.

숭고는 바로 이 홀로 있는 자기-단독자로서의 자기 자신과 해후하게 한다. 그것은 자아가 자기의 경계를 넘어 자아 밖의 다른 현실-다른 자아와 다른 세계와 만나고 이 거대한 세계와의 만남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다시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보게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자아의 탈경계화’고 ‘주체의 탈주체화’다. 자아의 해방은 이런 한계 체험 속에서 일어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숭고의 경험은 윤리적 경험이다. 숭고의 진실은 사회적이기보다는 실존적이다. 그래서 미보다 숭고가 더 심미적인지도 모른다.

숭고는 저 무한한 것으로의 낭만적 그리움 속에서 지금 여기를 넘어 꿈꾸게 한다. 그래서 그 호소력은 사회정치적으로 제한되기보다는 근원적으로 열리는 종류의 것이다. 숭고 속에서 우리는 실존적으로 필연적인 것들-실존적 한계 형식과 만난다. 카시러가 말한 바-“자기 자신을 향한 용기”-근원적 본래성으로의 용기는 숭고체험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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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0월 17일자 25면 8 회 참조)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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