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수사의 ‘그림자’>‘정답’ 정해진 下命수사… “정권 바뀌면 나도 적폐대상 불안”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굳은 표정으로 7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근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7일 오전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에 관여한 의혹과 관련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돼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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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내부 우려 확산

중앙지검 64명 16건 투입
靑 끌려가는 수뇌부에 불만
‘답정너式 수사’에 자괴감도

때 되면 내쫓기고 수사받고
되풀이되는‘정치적 희생양’
정작 민생수사는 뒷전으로

서울중앙지검 검사 4분의 1이 투입된 검찰의 대규모 ‘적폐 청산’ 수사에 대한 부작용이 잇따르면서 안팎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7일 검찰 내부에서는 되풀이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하기만 하면 된다) 식 수사’에 대한 자괴감이 나오고, 밖에서는 “무리한 하명수사 아니냐”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변창훈(48) 서울고검 검사가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와 재판을 방해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 전날 투신한 사건은 청와대·정부 부처의 의뢰를 받아 ‘검사 총동원령’을 내려 사실상 ‘하명수사’를 벌이는 검찰 행태에 대한 비판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30일 같은 건으로 수사를 받던 변호사 출신 국가정보원 직원의 극단적 선택에 이어 일주일새 같은 사건이 두 건이나 발생한 사실을 놓고 검찰 내부에서는 “수뇌부가 수사의 무리한 측면은 없는지 차분히 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폐수사에 허덕이는 검찰 =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현재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폐수사를 위해 서울중앙지검 검사 247명 중 64명을 투입했다. 특수부와 공안부는 물론, 첨단범죄수사부·외사부 등 8개에 이르는 핵심 부서가 총동원됐다. 이들은 지난 8월부터 16건에 이르는 과거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을 ‘정치검찰’로 만드는 문재인 정부와 이에 선을 긋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검찰 수뇌부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한 차장급 검사는 “청와대가 캐비닛에서 꺼낸 문건을 던져주고, 검찰은 받아 수사에 나서고 있다”며 “검찰이 청와대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이로 인해 정치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적폐수사 피로감’도 퍼지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부부장 검사는 “향후 정권이 바뀌면, 직무상 일로 나도 적폐청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검사들 사이에 있다”고 털어놨다.

◇檢에 충격 준 변창훈 검사의 자살 =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의 변 검사 추모 공지에는 댓글이 250개가 넘게 달렸다. 이 같은 이례적인 댓글 수는 검찰 내부에서도 큰 충격을 안겨줬다는 방증이다. 변 검사는 국정원에 파견 근무 중이던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을 은폐한 혐의로 구속영장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한 중견급 검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인 검사들까지 무슨 범죄의 수괴처럼 다루니 검사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며 “지금 수사팀 수뇌부나 검사들은 나중에 동료들을 어떻게 보려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개인 비리가 아니라 전 정권에서 부여받은 ‘업무’의 불법성을 따져 묻기 시작하면 적폐 수사가 정권마다 끝도 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 부부장급 검사는 “보통 검찰 수사는 윗선만 치지 아래 급은 치지 않는데 일선 검사들은 지금 수사팀이 잡아넣는 ‘급’까지 청와대의 하명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런 식이면 5년 뒤엔 문재인 정부가 똑같은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뒷전으로 밀린 민생 수사 = 서울중앙지검이 적폐수사에 ‘올인’하며 민생 수사는 뒤로 밀리고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중앙지검 형사부 등 비인지 부서는 거의 올스톱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의 경우 몇 년 전부터 장기 미제 사건이 많아졌는데 요즘 들어 더 부쩍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초동의 변호사는 “민생 수사는 뒤로하고 전 정권 때려잡기에만 올인하고 있으니 결국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미명하에 적폐를 더욱 확대·양산해 가는 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적폐 수사로 오히려 중앙지검이 더 커지고 정치검사가 더 많아져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민병기·정철순·김리안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