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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09일(木)
‘그러나’로 만나는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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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문화부장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가 미당 서정주에 대해 쓴 글의 한 대목. ‘미당은 명백하게 친일시를 썼고 광복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친 정치적 과오를 저질렀다. 그러나 이 ‘그러나’ 이후의 말은 복잡하고 섬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시 명백한 것은 한국어를 아름답게 일으켜 세운 그의 공로를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는 14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이 ‘그러나’로 만나야 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는 분명 독재를 위해 인권을 탄압했고 지역주의 씨앗을 뿌리는 과오를 저질렀다. 그러나 역시 명백한 것은 5000년 역사에서 지긋지긋하게 이어졌던 가난을 추방한 공로를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대한민국도 세계사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 국회 연설에서 한국인의 저력을 상찬한 것은 외교적 수사임에도 세계 속의 한국을 실감케 했다. 그 기반을 박정희 집권기에 닦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가 1962년도에 저술한 책 ‘우리 민족의 나갈 길’을 최근에 읽었다. 그의 탄생 100돌을 맞아 한 출판사에서 새로 펴낸 것이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였던 당시 45세의 야심가는 “부정부패의 사회상을 바로잡고 복지민주국가를 세우는 길은 없을지 고민하며 잠 못 이루는 밤에 메모해 둔 것을 책으로 묶었다”고 했다.

박정희를 혐오하는 이들은 그가 복지민주국가를 꿈꿨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빠른 시일 내에 여러 가지 사회보험제도를 마련하고 노인들을 위한 양로연금제도와 최저임금제도를 실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의 저술이 쿠데타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우국(憂國)을 꼭 그렇게만 폄훼할 수 있을까. 복지국가를 위해 빈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충정(衷情)이 생애를 관통하는 것이었다는 증거는 많다. 그중 하나가 대구사범 재학 때 금강산을 여행하며 쓴 글이다. 친필로 남아 있는 글의 일부. ‘삼천리강산에 사는 우리들은/이같이 헐벗었으니 과연 너에 대하여 머리를 들 수가 없다./금강산아, 우리도 분투하여 너와 함께 천하에 찬란하게!’

물론 그의 우국과 충정만을 강조해서 신격화하는 것은 시대정신에 반한다. 박근혜 정부가 지금껏 유지되고 있었으면 박정희 영웅화 시도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을 것이다. 그건 박정희의 삶을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현대사를 일그러트리는 행위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 시대는 박정희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역설적인 기회의 시간이다. 그의 공과(功過)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 그러나 100주년 우표 발행 번복에서 보듯 지금까지는 그의 생애에 침을 뱉는 쪽에 치우쳤다. 이는 문 대통령이 “박정희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것에 기인한다. 존경하지 않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게 옳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장면 정권 때도 있었다는 논리로 그 공적을 낮추는 것은 옹색하다. 우리 모두의 현대사를 정파적 시각으로 훼손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지나온 지금이 적기다. 박정희를 ‘그러나’로 만나는 것!

jeij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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