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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김회평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13일(月)
민노총에 빚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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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청와대 만찬도 걷어찬 민노총
‘한국에서 가장 센 조직’ 과시
부채심리로 끌려가는 文정부

촛불이 고립된 민노총 구한 것
혁신성장 위해 노동개혁 필수
민노총式 프레임 부숴야 전진


“노조는 자기들 이익은 다 챙기고 아무 노력도 희생도 보이지 않으면서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문제 들고나와 정부를 공격합니다. 연대의식도 없이 노동운동 한다고들 합니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무력하게 가서는….” 노무현 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난 2003년 9월 3일 노 대통령이 김금수 노사정위원장, 문재인 민정수석 등과 내부 토론에서 한 말이다. ‘노조’는 물론 민노총이다. 친노(親勞) 정부에서도 투쟁 일변도로만 가는 과거 동지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가 섞였다.

14년이 지나 문 정부 출범 반년을 맞은 지금 상황은 거의 판박이다. 민노총은 오히려 ‘촛불’ 훈장을 달고 더 위세를 얻었다. 얼마 전엔 청와대 만찬 자리도 걷어찼다. 한편에 섰던 대통령이 부르는데 사소한 ‘의전’을 문제 삼아 불참했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선 공개적인 비판 목소리 한마디 없었다. “한국에서 민노총보다 힘센 조직이 없다”는 세간의 얘기는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청와대뿐 아니라 평소 정치·사회 현안에 독한 얘기를 서슴지 않는 정치인도, 진보 진영 인사도 민노총에 관한 한 입을 굳게 다문다. 비판은 금기였다. 한데 근래 민노총을 향한 쓴소리가 조금씩 나온다. 7월 15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결정된 직후 민노총은 ‘최저임금 1만 원’을 당장 쟁취하지 못한 것은 문제라는 기조의 성명을 냈다. 그러자 협상 참여자를 포함해 현장에선 반발했다. ‘역대급 인상’을 자축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건 대중과 괴리된 민노총의 인식수준을 재확인한 사례라는 것이다. 청와대 만찬 불참을 두고는 진보 정치인·언론까지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민노총은 대중조직이다. 그렇다면 상식 수준에서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야 옳다. 그러나 1999년 2월 노사정위를 탈퇴한 뒤 사회적 대화를 극력 거부해왔다. 김대중 정부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를 수용했다가 심각한 내홍을 겪었고, 아직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청와대 만찬 소동도 노사정위원장 배석이 한 원인이 됐을 정도다. 스스로 외부는 물론, 내부 조합원과도 소통을 기피하는 동안 활동가 주도의 근본주의, 정파 간 권력싸움으로 고립은 더 깊어졌다.

문 정부는 출범 후 최저임금 고율 인상, 비정규직 제로(0), 성과연봉제 폐지, 양대 지침 폐기, 특수고용 근로자 노동3권 부여, 제빵사 직접고용 등 노동계에 하루가 멀다 하고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그런데도 민노총은 정부에 이른바 ‘5대 요구’를 앞세워 직접 담판하자고 압박 수위를 더 높이고 있다. ‘촛불 빚’을 받아야겠다는 독촉으로 들린다. 그러나 문 정부도, 국민도 민노총에는 빚이 없다. 민노총이 촛불 시위에 인력·장비 등 하드웨어 지원으로 기여한 측면은 있지만, 당시 시민들은 민노총이 ‘한상균 석방’ 등 노동 이슈를 제기할 때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고립화 길을 걷던 민노총이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촛불이 민노총을 구했다’는 일각의 평가가 더 설득력이 있다.

일련의 친노 정책은 이미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십자포화를 맞은 기업으로선 폐업·감원·해외 탈출 중 택일할 수밖에 없다. 종국에는 근로자의 고용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당장 최저임금 인상분은 국고를 터는 변칙으로 1년 치를 막는다 해도, 향후 한꺼번에 닥쳐올 역풍(逆風)은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문 정부도 혁신성장을 말하기 시작했지만, 성과를 내려면 경제 선진국처럼 노동·규제 개혁을 않고는 불가능하다.

지금의 소득 양극화는 민노총의 주축인 대기업 노조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민노총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한다는 선의(善意)로 포장하지만, 비정규직이 대기업 노조 묵인하에 확대돼온 건 불편한 진실이다. 매년 전투적 쟁의로 쌓은 억대 연봉은 하청 근로자의 몫까지 가져다 채운 것이다. 기아자동차 노조가 비정규직을 축출한 것이나,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한 것은 차라리 솔직하다.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한 것이 꼭 47년 전 오늘이다. 앞길이 보장된 정규직 재단사였던 그는 참담한 시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이다. 민노총이 과연 ‘전태일 정신’을 떠받들 자격은 있는가. 문 대통령이 혁신을 이야기하려면 민노총, 나아가 민노총으로 상징되는 대립적·전투적·이념적인 구시대 프레임을 깨뜨리는 데 승부를 걸어야 한다. ‘촛불 채무자’ 코스프레로는 한 발도 전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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