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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14일(火)
움직이는 尺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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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평 논설위원

인간의 하루 생활은 ‘재는 것’으로 이어져 있다. 아침에 일어나 시계를 보고, 방의 밝기를 느끼고, 욕실 물의 온도를 조절한다. 휴대전화의 충전 상태를 확인하고, 출근길 내비게이션을 통해 남은 거리도 파악한다. 의식하든 안 하든 도량형을 통해 세상을 읽고 효율적으로 대응한다. “우리는 단위라는 창을 통해 자연을 이해할 수 있으며, 타인과의 소통에서 최소한의 객관성을 얻는다.”(김일선, ‘단위로 읽는 세상’)

계량의 첫 기준은 신체였다. 뼘, 줌 같은 직관적인 단위로 사물 측정과 물물교환을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지을 때 사용했던 큐빗은 통치자 파라오의 팔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까지 길이였다. 지금도 영미권에서 쓰는 피트는 발 길이에서 유래했다. 주먹구구식 도량형은 공정한 상거래와 세금 징수를 방해한다. 진시황이 그랬듯 강력한 통치자들이 예외 없이 도량형 통일에 나선 이유다. 조선 시대 암행어사는 지방 수령의 눈금 장난질을 가려내는 놋쇠 자 유척(鍮尺)을 마패와 함께 지녔다.

오늘날 국제 표준인 미터법은 18세기 후반 객관·보편을 추구한 프랑스혁명 세력이 주도했다. 북극점에서 적도까지 거리의 1000만 분의 1을 1m로, 한 변이 10분의 1m인 정육면체에 담긴 증류수 질량을 1㎏으로 삼았다. 프랑스인 쿠베르탱이 이끈 올림픽은 미터법 확산에 크게 이바지했다. 현재 국제표준단위(SI)는 길이·시간·질량·전류·밝기·온도·물질량 등 7개 기본단위를 축으로 운용된다. 이들을 조합하면 에너지·전압 등 새로운 단위가 나온다.

영원할 것 같던 1m나 1㎏도 세월 앞에선 움직인다. 1m는 이제 ‘빛이 진공 중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거리’로 정의가 수정됐다. 1㎏ 또한 내년이면 바뀐다고 한다. 1889년 백금·이리듐 합금으로 높이·지름이 각각 39㎜인 원통형 원기(原器)를 만들어 1㎏ 기준으로 삼아 왔는데, 128년 시간의 마모로 100㎍ 가까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1㎏ 정의가 달라지면 산업계 표준의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가치의 척도(尺度)도 시류를 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결사반대하던 세력이 집권한 뒤엔 폐기 위협에 전전긍긍한다. 같은 사안을 두고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이 갈린다. 가치판단 기준도 시대정신을 반영하지만 5년, 10년마다 자의적으로 바뀌면 ‘척도’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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