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국정원 개혁 矯角殺牛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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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 동국대 법대학장

국가정보원개혁발전위원회가 국정원의 명칭 변경과 수사권 이관 등의 내용을 담는 국가정보원법으로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오직 국가안보에 전념하는 순수 정보기관으로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의 활동 위축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기관이든 끊임없이 개혁해야 하지만, 대공수사권 폐지 등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위험성도 보인다.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열차의 목적지가 국가 정보기관의 강화인지 해체인지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로 민간단체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특정 정권의 국가정보를 들춰본 다음 형사처벌하는 절차를 밟는다. 1600건이 넘는 청와대 문건을 누출했고, 국정원 핵심 서버의 특수정보비까지 뒤져, 전직 국정원장은 물론 전직 대통령까지 수사할 기세다. 그 와중에 현직 검사 등의 자살도 있었다.

현 상황은 세계 정보 역사에 유례가 없이 국가기밀 체계를 정부 스스로 붕괴시킨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 국가기밀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을 보안이라고 한다. 보안은 국가 경영의 자물쇠다. 보안은 어떤 장소에 함부로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음으로, 자격과 필요성을 제한한다. 1단계는 비밀취급 인가권자라는 자격 제한이다. 2단계는 알 필요성(need to know) 제한이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모든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은 법으로 국가정보국장(DNI)에게만 무제한 접근을 허용한다. 이때의 알 필요성은 기밀 본래의 목적과 취지에 맞는 필요성이다.

감찰이나 수사 목적으로 국가기밀에 접근하거나 정보를 뒤질 수는 없다. 법이 아닌 규칙으로, 사후적으로 창설된 과거사위원회는 헌법기관이나 법률기관의 기밀에 접근할 자격 자체가 없다. 결국, 불법 수집 자료에 의한 검찰 수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안 체계의 그 법적 근거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답한다. 주권 수호를 위해 헌법과 법률이 창설한 해당 기관의 내재적인 권한이다.

국가정보는 어느 정권이 사후에 정당성과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미묘한 상황윤리의 산물이다. 악명 높은 인권유린 정보활동이었던 미 중앙정보국(CIA)의 카오스 공작활동이나 FBI의 코인텔프로(COINTELPRO)도 형사처벌로 단죄되지 않았다.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무차별 감시, 위장 침입과 불법 수색, 혐의 조작, 거짓 통신, 심지어 준(準)군사작전은 혀를 내두를 만했다. 그러나 진상을 조사한 의회 처치위원회(Church Committee)는 그 상황에서의 목적의 정당성과 애국심을 보았고, 제도 개선으로 마무리했다.

국가기밀의 무차별적 누설 부작용은 엄청나다. 먼저, 조직의 기능 마비는 필연적이다. 정권이 바뀌면 또 뒤질 텐데 어느 정보요원이 의욕적으로 일하겠는가? 다음으로, 수사와 재판에 동원될 공권력의 정치화도 필연적이다. 또한, 외국 정보 기구와 정보 공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단적으로, CIA가 국정원에 고급 정보를 줄 리가 없다. 가장 치명적인 역작용은 맞수인 북한 노동당 정찰총국의 숙원을 우리 공권력이 알아서 풀어준다는 오해를 받을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적법절차를 위배한 수사는 불법이다. 특수활동비가 잘못 사용된 부분이 있다면 시정돼야 하는 것도 정의이다. 하지만 정보활동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국회에서의 진상조사를 통해 제도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정의이다. 진실에는 이념이 없다. 진실함이 진정한 적폐 청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