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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World & Idea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15일(水)
美·中 대결의 主戰場 되는 아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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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 논설위원

인도·태평양 對 일대일로 충돌
‘차이나 머니’로 민주주의 후퇴
新남방정책, 大전략 전제돼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지역이 국제정치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 지역이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구상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가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과거 미·소 냉전 대립의 중심지가 유럽이었다면, 현재 미·중 대결 구도의 주전장(主戰場)은 아세안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14일 아세안 정상회담과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린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한 것도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 순방 계획을 수립할 초기에만 해도 필리핀 방문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참모들이 적극 권유하는 바람에 생각을 바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세안은 50년 전인 1967년 8월 설립됐다. 창설 회원국은 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태국 등 5개국이었으나, 1984년 브루나이, 1995년 베트남, 1997년 라오스·미얀마, 1999년 캄보디아가 각각 가입해 10개국으로 늘어났고, 이에 ‘아세안 10(ASEAN 10)’이라고도 불린다. 사무국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데, 직원은 60여 명에 불과하다. 6억3000만 인구를 대표하는 기구라 하기엔 너무 초라하다. 유럽연합(EU)이사회 사무국의 상근 직원은 3200여 명에 달한다.

최근까지 아세안의 위상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이 지역을 하나로 묶을 ‘아시아성(Asianess)’과 같은 동일 정체성을 갖기엔 인종·언어·종교·문화 구성이 지나치게 다양했던 관계로, 내부 통합성이 약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이 유럽에선 집단안보체제인 나토(NATO)를 구축한 반면, 아시아에선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 전략’에 따라 양자동맹 방식을 선호했던 것도 아세안이 제대로 된 지역 정치 통합체로 발전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냉전 시기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안보 협력은 상호 협조라기보다는 미국의 일방적 지원이라고 여겼으며, 따라서 국가 수에 의해 미국의 이익과 반하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집단안보체제나 다자협상 틀을 아시아에서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비동맹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반미 친소였던 것도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 경제가 발전하고 중국의 남중국해로의 팽창 움직임이 나타남에 따라 지역 안보 협력의 필요성이 대두하면서 아세안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이 남중국해 대부분을 포괄하는 ‘구단선(九段線)’을 자국의 해양 경계선이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아세안 국가들의 공동 대응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아세안 국가들 가운데 대(對)중국 전선을 주도할 힘과 의지를 지닌 국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라오스 등과 같은 국가들은 노골적으로 친중 노선을 취해 힘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2010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평화로운 해결을 주장하면서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이 본격 개입하면서, 중국 대 아세안 혹은 중국 대 아세안 개별 국가 구도가 아닌 미·중 대립이 된 것이다.

이런 국제정세는 아세안 국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 퇴조’가 일어나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지금까지 약 4000명의 마약 용의자를 사살하는 등, 초법적 행동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내년 총선 후에도 향후 5년간 군이 정치에 관여하는 헌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제1야당인 캄보디아구국당(CNRP) 대표를 국가반역 혐의로 구속하고, CNRP 해산을 종용하고 있다. 심지어 ‘미얀마 민주주의 영웅’으로 불리며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자문역도 로힝야족을 유혈 탄압하는 등, 독재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중국이 ‘차이나 머니’로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도 중국 쪽으로 기우는 것을 우려해 인권 압박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 중심’의 신(新)남방정책을 제시하고, 아세안을 4강 지위로 끌어올리겠다고 천명했다.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이 중요함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아세안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문제는 아세안 지역이 이제 ‘인도-태평양’ 구상과 일대일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곳이란 점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그에 따른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 없이 신남방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레토릭에 불과할 공산이 크다. 더 무서운 사실은 과거 냉전 시절이 그러했던 것처럼, 정작 전쟁이나 무력 충돌은 주전선(主前線)이 아닌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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