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벌레의 나라, 나비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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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맘충·한남충·틀딱충·급식충…
우리사회 타자 대한 혐오 편재
존중·배려보다는 무시와 경멸

나비의 화려한 변신 못 보고
영원히 ‘벌레’로 남아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고 암울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싫어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곤충이나 벌레를 뜻하는 ‘충’이라는 말을 사용하고들 있다. 주책없는 엄마를 ‘맘충’이라 하고, 무능력하고 한심한 한국 남자를 ‘한남충’, 그리고 틀니를 딱딱거리며 잔소리만 늘어놓는다고 해서 그런 노인들을 ‘틀딱충’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 외에도 학교에 급식 먹으러 가는 학생을 가리키는 급식충 등 벌레 관련 호칭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우리 모두가 벌레로 불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일부 엄마와 남자, 노인들이 한심해서 그런 용어가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맘충 아닌 참한 엄마도 있을 것이고, 한남충이 아닌 ‘쿨한’ 남자도 있을 것이며, 틀딱충이 아닌 멋진 노인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입은 닫고 지갑만 여는 노인, 그리고 품위 있고 완고하지 않은 노인은 틀딱충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누구나 다 싸잡아서 전형화하고 범주화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수구 꼴통에 틀딱충으로 분류된다. 사실은 나이 많은 진보주의자도 있을 수 있고, 젊은 보수주의자도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아무리 마일리지가 안 나간 새 차라도, 연식이 오래된 차는 고물차 취급을 받고 고철 값에 팔린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마일리지가 많이 안 나갔다면 제조 연도에 상관없이 값이 비싸며, 반대로 최근에 제조된 차라도 마일리지가 많이 나갔으면 고물차로 분류되어 값이 싸다. 마일리지가 높은 차는 그만큼 엔진이 마모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실용적이지 못하고 허례허식과 외형만 중시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상대방을 부를 때 ‘-충’을 붙이는 것은 우선 우리 사회에 타자에 대한 ‘혐오’가 편재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념이나 생각, 파벌이 다른 사람을 경원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자를 증오하며,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혐오한다. 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나와 다르면 즉시 경계심과 적개심을 표출한다. 그러다 보니, 남자와 여자도 서로 미워해서 ‘남혐’과 ‘여혐’이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생겨났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끌리고 좋아해야지, 이성끼리 혐오하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타인을 벌레로 호칭하는 것은 그 사람을 무시하고 경멸한다는 뜻이다. 우리 욕 중에 ‘이, 벌레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벌레가 최악의 경멸 대상임을 시사한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려고 하거나, 타자를 배려하고 존중하기보다는, 타자를 벌레로 보고 무시하고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저명인사의 강연을 들은 후에도, “뭐, 별거 아니구먼” 하며 자리를 뜨는 사람이 많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경멸하는 사람의 눈에 타인이 벌레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문제는 그러는 자기들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벌레라는 데 있다.

벌레 중에는 영원히 벌레로 살다가 죽는 종류도 있지만, 번데기를 거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들도 있다. 예컨대, 나비나 매미, 잠자리는 모두 징그러운 벌레가 어느 날 화려하게 변신한 것이다. 땅이나 물속을 기어 다니던 못생긴 벌레가 갑자기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존재로 변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는,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인고하며 비상의 순간을 기다리는 번데기 시기가 있다. 이윽고 성숙의 기간이 끝나고 변신할 때가 되면 벌레는 스스로 번데기의 껍질을 벗고 고치를 뚫고 밖으로 나와, 날개를 활짝 펴고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그런데 만일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나비가 되지 못하고 영원히 벌레로만 남아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고 암울할 것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의 모습이 이성적인 성인이라기보다는, 불안정한 사춘기 청소년과 비슷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우리는 누구나 쉽게 감동하고 격분하며,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쉽게 비이성적이 되는 것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춘기의 특징이다.

나비나 매미, 잠자리로 변신해 푸른 하늘을 날아보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땅을 기는 벌레로 남아 있어야 한다면, 그건 참으로 민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호랑나비 애벌레를 잡아서 탱자나무 잎을 먹여 키워본 사람은 안다. 징그러운 갈색의 애벌레가 어느 날 초록색 벌레로 변하고, 이윽고 번데기가 되더니 껍질을 찢고 나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그 놀라운 변신이 얼마나 화려하고 눈부신지를. 사실, 나비가 되지 못하는 벌레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영국의 1990년 맨부커상 수상작가 A S 바이엇은 장편소설 ‘천사와 곤충’(한국어 번역본은 ‘천사와 벌레’)에서 인간을 벌과 개미, 나비에 비유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박물학자인 주인공은 인간의 습성과 곤충의 습성이 얼마나 유사한지를 발견한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만을 좇는 곤충과는 달라야 한다. 우리가 교육을 받고 이성과 교양을 함양하는 이유도 벌레 같은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바이엇은 천사와 곤충은 둘 다 날개가 있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크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천사나 곤충은커녕, 아직 벌레에 머물러 있다.

영원히 벌레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되어 비상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타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 때문에 한국이 벌레의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타자에 대한 포용과 상호 존중을 통해 성숙한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사회, 그리고 천사들의 나라가 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