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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21일(火)
서소문 공원의 ‘기억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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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엽 문화부 선임기자

서소문(西小門)은 지어질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태조 5년(1396)에 경복궁을 중심으로 사방에 사대문이, 그 사이에 사소문이 함께 완공됐다. 이 중에 유별나게 서소문에 관한 왕조실록의 기록이 많다. 태조 3년 실록에 보면, 서소문 축조 중 옹성이 기울어져 석장(石匠)인 승려의 머리를 베어 그 위에 매달았고, 감역관(監役官)을 귀양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서소문 일대가 만물을 죽이는 가을의 기운인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있다는 풍수지리에 따라, 서소문 밖에 감옥과 처형장을 정했다는 태종 16년 기록도 있다. ‘서소문 밖’이라는 말은 조선 시대 내내 ‘처형장’ ‘효시터’라는 말을 대신했다. 그곳 처형의 역사는 조선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조의 측면에서 보면 소위 ‘대역죄인’들, 지금으로 보면 권력다툼에서 패한 무리나 개혁주의자들, 종교적 신념으로 저항한 교도들의 피와 한이 서려 있다.

조선의 신분제를 개혁하고자 했던 ‘홍길동전’의 허균과 그 동조자들이 여기서 처형됐다. 서북에 대한 차별대우와 세도정치에 저항해 민란을 일으킨 ‘홍경래 난’의 무리도 여기서 처형되거나 다른 곳에서 죽임을 당했어도 그 수급은 이곳에 내걸었다. 개항에 반대한 유림, 임오군란 주역들, 갑신정변 주동자, 독립협회 일부 간부도 줄줄이 이곳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무엇보다 천주교와 천도교(동학) 입장에서 서소문 밖은 ‘순교성지’다. 한국 천주교회사의 4차례 박해가 이뤄진 60여 년 동안 서소문 밖 형장에서만 신자 84명이 처형됐다. 한국교회의 성인 103위 중 44위, 복자 124위 중 27위가 이곳 서소문 밖에서 처형됐고, 그들 대부분이 교회의 지도자였다. 서소문 밖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지어진 서울 중구 중림동 약현성당은 이들을 기려 지어졌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도 서소문 밖을 방문했다. 동학농민전쟁과 관련해 동학의 2세 교주인 최시형이 서소문 감옥에 투옥됐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최시형을 비롯해 ‘녹두장군’ 전봉준을 위시한 5대 지도자들의 처형장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서소문 밖에서 적지 않은 동학교도들이 처형됐다.

서울 중구청이 국비와 시비의 지원으로 진행 중인 서소문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이 지난 15일 구의회가 해당 추경예산을 다시 부결하면서 중단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중구청은 국·시비 206억 원을 받았는데, 구예산 52억 원이 확보되지 못해 이미 공사에 들어간 예산만 160억 원, 공정률 28%의 공사가 위기를 맞았다. 서소문 밖을 둘러싸고 몇 년째 이어지는, 말하자면 ‘기억의 전쟁’이다. 천주교 측은 서울시·구의 사업이라며 관련 공청회 등을 피하고 있고, 천도교를 비롯한 타 종교와 역사학자들은 서소문 밖을 천주교가 자신들의 성지로 전유(專有)하려 한다며 반발해왔다. 나라 안팎이 ‘역사전쟁’인 와중에 종교의 성지를 둘러싼 논란이 가세한 셈이다. 역사의 현장에 특정한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기억들은 흩어지고 하나로 고정되기 마련이다. 다양한 역사와 성지가 공존한다면 스토리와 보존 가치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정부가 지원 예산의 국고 환수로 압박하는 마당에 종교계와 역사학계,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ejyeob@
e-mail 엄주엽 기자 / 문화부 / 부장 엄주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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