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시대, 책을 귀하게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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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계 ‘한정판 책’ 잇따라

임꺽정, 2000질 한정으로 내놔
박스에 작가 낙관·넘버링 넣어

모모, 표지 공모한뒤 소량 출간
노먼 베쑨 화보집도 2000부뿐

‘오리지널리티의 아우라’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책’ ‘남과 다른 소장본’. 서점에 나온 한정판 책에 대한 출판 편집자들의 이야기다. 관심은 사람마다 다분화하는 동시에 관심 있는 것은 깊게 파고드는 취향의 시대, 남과 다른 자기만의 작은 행복을 위해 돈을 쓰는 새로운 시대 풍경과 맞물려 일정 수량만 찍어 판매하는 한정판 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소수의 한정된 독자를 대상으로 소장 가치를 자극하는 마케팅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읽을 것이 넘쳐 나고 끝도 없이 복제되는 시대에 원본의 느낌에 소구하는 ‘귀한 책’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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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이두호의 고전 명작 ‘임꺽정’(20권·바다·위 사진)은 최근 2000질 한정으로 나왔다. ‘만화 임꺽정’은 1991년부터 5년 3개월 동안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그 후 지금까지 두 차례 단행본으로 선보였다. 1996년 프레스빌에서 21권으로, 2002년 자음과모음에서 32권으로 재출간 됐다. 하지만 프레스빌 판은 청소년 독자를 겨냥해 신문 연재분에서 500쪽 이상 삭제했고, 자음과모음 판은 이를 살려냈지만 이미 절판됐다. 이때문에 책을 구할 수 없어 마니아들 사이에서 몇십만 원을 호가하던 상태였다.

이번 한정판은 이두호 만화에 대한 특별한 애정에서 이뤄졌다. 앞서 바다출판사는 2015년 역시 절판상태였던 이두호의 만화 ‘객주’(전 10권)를 한정판으로 내놔 4000질가량을 팔았다. 당초 바다출판사는 ‘임꺽정’을 1000질 한정으로 내놓으려했으나 샘플판이 너무 예뻐서 2000질로 늘렸다고 한다. 각 권의 표지는 재출간을 기념해 작가가 새로 그렸고, 전질 박스엔 작가의 낙관과 함께 2000번째까지 넘버링을 넣었다.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는 “한정판은 일정 수량이 다 팔리고 나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귀한 책”이라며 “결과적으로 책을 구입한 독자에 대한 서비스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비룡소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국내 150만 부 판매 돌파를 기념해 이번주‘모모·블랙 에디션’(아래 왼쪽)을 한정판으로 내놨다. 독일의 모모 출판 4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열린 공모전의 수상작을 표지로 한 특별판이다. 기존의 ‘모모’보다 4000원 더 비싼 1만5000원으로 출간됐다. 출판사는 아직 출간 부수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로, 소량 한정이라는 원칙만 세워놓았다.

‘모모’는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사람들에게 찾아 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로 1973년 독일에서 처음 출간된 뒤 47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서 1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박지은 비룡소 편집장은 “이번 한정판은 의미 있는 표지로 내놓은 리커버 특별판”이라며 “이를 통해 기존의 고전, 기존의 책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그림씨출판사가 최근 내놓은 ‘닥터 노먼 베쑨 공식 화보집’(아래 오른쪽)도 2000부 한정판으로 출간됐다. 책은 세계를 감동시킨 휴머니스트이자 의사 노먼 베쑨(1890∼1939)의 다채로운 삶이 담긴 사진 230여 점을 수록한 화보집으로 중국의 베쑨 정신연구회가 엮은 것이다.

그림, 이미지, 사진 등에 관련된 책을 지향하는 그림씨는 노먼 베쑨에게 이끌려 책을 냈지만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끌 대상은 아니라고 판단해 2000부 한정으로 출간했다. 베쑨의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 그리고 후대에 기억되는 모습까지 사진을 중심으로 담고 있다. 특히 우리가 이전엔 많이 접하지 못했던 사진들도 수록되어 있어 더욱 의미있다. 박세경 그림씨 주간은 “베쑨에 관한 사진집으로는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꼭 내고 싶었다”면서 “고급스러운 장정의 한정판으로 만들어, 책을 사는 독자들에게 오리지널리티의 아우라를 주려 했다”고 말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