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사랑·미니멀리즘… 작은 혁명이 삶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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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 / 신승철 지음 ／삼인

프랑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에 관한 국내의 손에 꼽히는 연구자면서 생태철학자인 신승철이 아내 및 주변인들과의 잔잔한 일상을 들려주듯 하는 책이지만, 스피노자부터 질 들뢰즈와 가타리로 이어지는 철학적 사유들이 곳곳에 깔려 있어 간단치는 않다. 일상의 삶 속에서 그것들이 설명돼 구체적으로 이해되는 덤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서울 문래동 예술촌에서 ‘철학공방 별난’이라는 연구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가정주부나 학생 등 공간을 찾는 이들과 함께 일상과 생각을 교감하고 인문학을 공부한다. 그런 가운데 ‘저성장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내놓고 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한다. 저자에 따르면, 성장·개발·토건·성공·승리 등 거시적인 변화가 사회를 이끌던 시대는 지나갔다. 어디서나 ‘열정’을 강조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살아남는 것조차 힘든 시대, 기회나 일자리를 만들기가 좀체 힘든 시대가 바로 저성장 시대의 풍경이다.

책은 “앞으로 올 혁명은 단언컨대 분자혁명(Molecular Revolution)밖에 없다”라는 가타리의 말로 시작된다. 이 책을 관통하는 화두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혁명은 혁명가가 중심에 서고, 강철 같은 규율과 낫 등 남성적·폭력적 이미지가 지배했다. 분자혁명은 그것과 판이하다. 이웃이나 공동체 사이에서 부드러운 사랑과 욕망의 움직임과 흐름을 통해 혁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혁명가나 혁명운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미시적인 영역의 혁명, 각자가 체제에 예속된 존재에서 벗어나는 특이성을 만드는 것이다. 특이성을 만든다는 건 스피노자가 말하는, 서로를 고양하는 정동(affect)을 만드는 것이며, 자연의 생명력을 살리고, 욕망과 차이를 긍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이성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공동체 그물망에 영향을 주어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현재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며 기존 시스템을 고장 내거나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사실 우리 대개가 상정하고 있는 행복은 큰 집, 큰 차, 첨단 전자제품, 고가 브랜드 옷, 해외여행 등의 상품 소비로 범주화돼 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 개개의 다양하고 변덕스러운 욕망을 소비로 집중하도록 포획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를 ‘욕망의 분자적(molecular) 움직임을 몰(mole)적인 것으로 수렴시킨다’고 말한다. 그런 소비에서 우리의 다양한 욕망은 충만해지지 않는다. 사람 사이의 공감, 자연과의 관계는 무시되고 파괴된다. 예컨대 소비를 통해 우리는 분자혁명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소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도주선에 주목하는 것, 분자적인 욕망에 주목하는 것이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미니멀리즘처럼, 소비 없는 욕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도 분자혁명의 주요한 요소다.

책은 행복이라는 주제를 정동과 공동체, 가난한 시대의 선택, 생명과 기쁨, 아이와 문명, 생태의 지혜라는 다섯 개의 소재로 다룬다. 고마움과 사랑, 돌봄의 정동을 회복하는 건 서로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며 행복의 주요한 요소다. ‘지금-여기-가까이’에서, 자신의 욕망이 타인의 욕망과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신의 욕망이 생명의 욕망과 합일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336쪽, 1만45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