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檢 ‘죽은 권력’ 수사도 正道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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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욱 변호사 前 영남대 로스쿨 교수

군 사이버사령부의 인터넷 댓글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관진 전 장관이 22일 구속 적부심으로 풀려났다. 재판부가 ‘범죄 성립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권력과 여론을 떠나 오로지 법과 원칙에 비춰보면 타당한 판결이다. 판례는 적부심의 청구 사유로 구속 후 중대한 사정 변경이 있을 것을 요하지 않는다.

먼저, 범죄 혐의의 상당성에 대해 살펴보자. 판례는 ‘무죄의 추정을 깨뜨릴 정도로 유죄 판결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이 있을 때 범죄의 상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검찰은 댓글 공작 보고서에 대한 김 전 장관의 ‘V’자 표시와, 채용 과정에서 호남 사람을 배제하라는 지시 등을 중요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범죄 혐의가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긴 어렵다.

장관들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보고서를 본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성 댓글인지 여부도 불명확하고, 설사 정치성 댓글이라 하더라도 전체의 0.45% 정도로 하루 몇 건에 불과한데, 장관이 일일이 읽어 본다는 것은 경험칙에 반하다. 사이버사 인원 확충을 지시하며 특정 지역·성향의 인물을 채용하라고 했다는 것도 “내가 호남 출신인데 호남을 배제했겠느냐”는 김 전 장관의 주장이 더 일리 있어 보인다.

도주나 증거인멸의 경우 김 전 장관이 그동안 성실하게 수사에 임해 왔고, 관련 수사가 2013년에 시작돼 증거가 모두 확보됐다는 점에서 이 또한 구속 사유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이번 사건의 경우 구속에 의한 수사의 효율성보다는 무죄 추정에 의한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국가정보원 소속 정 모 변호사에 이어 지난 6일에 변창훈 검사가 투신자살한 사건을 결코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 실체 진실의 발견과 피의자의 인권 보장은 형사법의 두 축이다. 수사의 효율성을 위해 피의자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결코 안 된다. 수사의 생명은 검찰이 언제, 누구를 수사하든 ‘동일한 잘못’에 대해서는 ‘동일한 처벌’에 이를 수 있다는 국민의 신뢰다.

검찰의 존재 이유며, 지켜야 할 절대가치는 객관성과 공정성이다. 죽은 권력과 산 권력의 처벌에 차이가 있다면 절대 공정한 수사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검찰은 권력과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법과 원칙, 팩트와 증거에 따라 지공무사(至公無私)의 자세로 수사해야 한다. 정의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저울처럼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대공지정(大公至正)의 자세로 수사해야 한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 있다. 공익의 대변자요, 사정의 중추기관인 검찰이 제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는 의미다. 검찰은 이번에야말로 ‘권력의 충견(忠犬)’이 아니라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야 한다.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기개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죽은 권력 앞에서는 원칙은 지키되 절제된 포용이 필요하다. 검찰이 과거의 잘못을 통절히 반성하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할 때 비로소 국민의 신뢰도 회복된다. 자율적 개혁이 실패할 때 타율적 개혁이 필연적임은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고위공직자비위수사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산적한 개혁 현안에서 지금과 같은 검찰의 모습으로는 절대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불공정하고 무리한 수사가 계속된다면 검찰 스스로 적폐 청산 1호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