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멘털 노트>‘이 홀에서 OB 났었는데…’생각에 말려들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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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걱정하는 대로 간다

하이 핸디캐퍼들 쓰라린 경험
라운드중 떠오르면 경기 망쳐
생각 억제하려 하면 더 생각나

동반자의 걱정·염려하는 말
위해주는것 같지만 되레 ‘독’
자신만의 굳건한 전략 필요

라운드 도중 동반자의 한마디에 영향을 받아 샷이 망가지는 경우가 있다. 동반자의 한마디는 로 핸디캐퍼가 하이 핸디캐퍼를 골탕 먹일 때나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동반자가 교묘하게 쓰는 술수 중 하나. “와! 왼팔이 꺾이는 백스윙의 각도가 예술이네요” “자네 이 홀에서 해저드에 빠졌었지? 방향을 잘 보고 들어가게!” 등과 같은 상대방을 칭찬하거나 염려·걱정하는 말이기 때문에 하이 핸디캐퍼들은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를 때가 많다.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서 동반자가 한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리지만, 번번이 말려드는 자신을 보면 참 바보 같고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경험 많은 로 핸디캐퍼들의 술수는 매우 정교하고 교묘해서 라운드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다. 허탈감에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렇다고 잘 아는 사이라 라운드를 거절할 수도 없고….

이처럼 라운드 중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여기는 항상 바람이 있으니 한 클럽 길게 잡아야겠지”라며 낮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려 상대방의 클럽 선택에 혼란을 주기도 한다. “와! 허리 돌아가는 것이 일품이네요”라고 말해 스윙 때 자세에 신경을 쓰게 만든다. 또는 “자네가 A보다 거리가 더 나지?”라며 경쟁심을 발동시켜 힘이 들어가게 하거나 “자네, 지난번에 이 홀에서 슬라이스가 났었나?(그래서 해저드에 빠졌었다)” “내가 이 홀에서 OB를 냈었는데…”라며 해저드나 OB를 의식하게 한다.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주말 골퍼들은 동반자가 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린다. ‘이번에야말로…’라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신중하게 집중해서 샷을 해보지만, 결과는 꽝이다. 이번에도 말려든 셈이다. 자존심이 살짝 상하고 기분도 우울해진다. 동반자의 술수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지만, 효과가 없다. 쉽지 않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나 오히려 더 의식된다.

어떤 경험이나 생각이 계속 떠오를 때 우리는 이러한 경험이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 사고억제(thought suppression)라 한다. 염려되거나 걱정되는 생각은 계속 떠오른다. 사고억제를 통해 평온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생각을 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각이 난다. 아이러니다. 억제하려고 하는데 더 생각이 나니 말이다. “백스윙의 각도가 완벽하다” “허리 돌아가는 것이 예술이다”라는 칭찬을 듣거나 동반자가 OB를 냈다거나 해저드에 빠뜨렸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백스윙, 허리 돌림, OB, 해저드가 의식된다. 이를 의식하지 않으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이것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마찬가지로 ‘오늘은 욕심내지 않고 편안하게 쳐 봐야지’ ‘긴장하지 않아야지’라고 마음먹는 순간 이미 잘 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지고 긴장한다.

동반자의 술수는 주말 골퍼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프로 선수들도 사용한다. 월터 하겐(사진)은 골프의 사회적 지위를 크게 올려놓았고, 늘 상대방에게 친절한 선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신사적인 술수의 대가로 알려졌다. 상대방이 먼 거리에서 먼저 버디를 하고 나면 “어떻게 생각하시나. 내가 넣을 거 같은가?”라고 묻는다. 상대방이 볼을 페어웨이에 잘 안착시키면 일부러 훅이나 슬라이스로 자신의 볼을 러프에 빠뜨린다. 그 후 “허~ 이런! 큰일 났네. 이번 홀에서 지겠는데”라며 웃으며 여성 갤러리를 향해 윙크한다. “와! 그런 샷으로 버디를 하다니. 연습을 많이 한 모양이군”이라며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린다. 바이런 넬슨은 하겐에 대해 “그는 수많은 비신사적인 술수를 부렸다. 그는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대했으나 늘 우리의 관심을 끄는 짓을 했다”고 했다.

일상생활에서도 술수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당하는 경우가 있다. 때론 쓰라린 경험이 되기도 한다. 이런 쓰라린 경험을 잊어버리려 할 때 사고억제의 함정에 빠져 버린다.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잘못되는 것은 상대방이 술수를 부려서라기보다는 그 술수에 대처하지 못하고 그 술수의 올가미에 스스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우린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수많은 술수에도 자신만의 전략이 필요하다.

심리학 박사·연우심리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