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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28일(火)
‘지금 여기’를 넘어서려는 부정적 지향… 崇高의 비극이자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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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화가 요제프 안톤 코흐의 풍경화 ‘슈마드리바흐 폭포’. 스위스 휴양지 인터라켄에서 남쪽으로 21.9㎞ 떨어진 산악 지형의 폭포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 ⑩ ‘숭고’란 무엇인가

칸트가 언급했던 ‘숭고의 감정’
“압도적인 화산·태풍·천둥구름
두려울수록 우리를 매혹시켜”
무한성·神的인 것을 만나게 돼
그러기에 ‘부정적 쾌감’에 친숙

숭고, 자연 아닌 마음서 일어나
파악 불가능한 전율과 충격은
무질서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저항력·용기라는 ‘형식’가져
세상의 다른 가능성 탐색하게 해


산꼭대기에서든 절벽에서든 아니면 거대한 폭포나 평원에서든, 우리는 거대한 자연 풍경 앞에서 그것이 ‘장엄’하고 ‘숭고’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숭고(sublime·erhaben)는 미학적 차원에서 보면 미보다 훨씬 중요해 보인다. 숭고에서 느끼는 감정은 훨씬 중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요제프 안톤 코흐(1768-1839)의 그림 ‘슈마드리바흐 폭포(Schmadribachfall·1821∼1822)’를 살펴보자.


# 코흐의 풍경화 하나

코흐의 풍경화는 가로 110㎝, 세로 131㎝인 낭만주의 풍경화의 대표작이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면 슈마드리바흐 폭포는 스위스의 유명 휴양지 인터라켄에서 남쪽으로 21.9㎞ 떨어져 있고, 자동차로는 40분 정도 걸리는 산악 지형의 폭포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낭만적 환상이나 몽상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풍경이다. 그림이 얼마나 사실에 충실하게 묘사됐는가는 슈마드리바흐 풍경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난다.

그림에서는 알프스 정상에서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화면 위의 중앙에서부터 아래까지 수직적으로 그려져 있다. 물은 거대한 암벽 사이로 엄청난 폭포를 이루며 거대한 암벽과 울창한 나무를 지나 구불구불 흘러내린다. 흘러내린 물은 평지에서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며 큰 시내를 이룬다. 화면 왼편에 공터가 있고, 공터에서는 목동 한 명이 긴 막대기를 둘러멘 채 서너 마리의 염소를 돌보고 있다. 염소 주변에는 윗부분이 잘려나가거나 뿌리가 뽑혀 쓰러진 나무둥치가 어지럽게 놓여 있다.

자연의 풍경은, 오늘날의 사진이 보여주듯이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변한다고 하더라도 물의 양이나 방향 정도일 뿐 흐름은 대체로 같다고 할 것이다. 변하는 것은 자연 속에 사는 인간의 모습, 사람의 세상살이일 것이다. 우리를 압도하는 자연의 풍경, 산, 강과 바위, 숲과 대지와 시간의 변이 속에서 사람은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숭고미와 관련해 본격적으로 사고한 대표적인 철학자가 칸트다.



# 숭고, ‘부정적’ 즐거움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숭고의 감정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대담하게 솟구친 채로 위협하는 암석, 꽝 하고 번개 치며 몰려오는 하늘 위로 솟구친 천둥 구름, 모든 것을 파괴하는 힘을 가진 화산, 폐허를 남기고 지나가는 태풍, 격노한 듯한 끝없는 대양, 힘차게 흘러내리는 드높은 폭포와 같은 것들은 우리의 저항 능력을, 그것들이 지닌 위력과 비교해 볼 때, 보잘것없이 작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가 안전한 곳에 있기만 한다면 그러한 광경은, 그것이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우리를 매혹한다. 우리가 이러한 대상들을 숭고하다고 부른다면, 그 이유는 그 대상이 우리 영혼의 힘을 보통 이상으로 높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전혀 다른 종류의 저항력을 우리 안에서 발견케 하며 이 저항력을 통해 자연의 그럴듯한 전능한 힘을 가늠할 용기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칸트의 숭고 분석에는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은 장황하게 반복되기도 한다. 그러니 그 핵심만 추려보자.

첫째, 숭고는 크기와 규모에서 압도적이다. 그래서 모든 감각의 척도를 넘어선다. 아름다움이 대상의 ‘질’과 관련하여 ‘마음에 드는(wohlgefallen)’ 것이고, 그래서 정적 관조 속에서 삶의 활기를 불러일으킨다면, 숭고는 대상의 ‘양’과 ‘크기’에 관련된다. 그래서 숭고는 “순전히 큰” 것이고, 이 크기는 “모든 비교를 넘어선다”.

둘째, 숭고는 무엇보다도 ‘부정적 쾌감(negative Lust)’이다. 단순히 매혹이라기보다는 ‘뒤흔듦(Ruhrung)’이고, 그래서 이런 뒤흔듦 속에서 그저 ‘놀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함’을 불러일으킨다. 감동은 마음과 몸이 뒤흔들리는 데서 생겨난다. 숭고의 느낌에 부정적 뉘앙스가 들어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부정성은 한정되지 않음 - ‘무한정성(Unbegrenztheit)’의 지평으로 열려 있다. 그리하여 숭고미에는 놀라움이나 경탄도 들어 있지만, 그보다 그것은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전율에 더 가깝다. 그만큼 숭고는 부정적 감정에 친숙한 것이다. 이 충격이 다름 아닌 ‘상충’ 혹은 ‘상쟁(Widerstreit)’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이유로 미의 경험에서 상상력과 지성이 잘 어울리는 반면에, 숭고에서는 서로 부딪친다. 이 부정적·상쟁적 계기 때문에 상상력과 지성은 서로 충돌하면서 전율과 충격 같은 부정적 감정을 야기한다. 그러므로 숭고는 무제한적 부정성이고 탈경계적 한계경험이다.

셋째, 숭고에는 ‘이성의 이념’이 들어있다. 이 이념은 감각적 차원이 아니라 초감각적 차원 속에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숭고미를 통해 한계경험의 여러 형식 - 무한성이나 형이상학 혹은 신적인 것을 만난다. 이때 이념은 대상 자체의 것이라기보다는 대상에 대하여 우리가 느끼는 총체적 표상에 가깝다. 그러므로 “숭고성은 자연의 사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자연이 ‘압도적’이라고 느끼는 한 바로 “우리의 심성 안에 포함돼 있다.” 결국 숭고는 자연 자체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자연을 숭고하게 느끼는 우리 마음의 숭고이고, 우리 마음이 품은 이념의 표시인 것이다. 그렇다면 숭고의 경험에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  요제프 안톤 코흐의 풍경화 ‘슈마드리바흐 폭포’가 묘사한 실제 전경. 문광훈 제공

# 숭고, 탈경계화

낭만주의는 흔히 규범적이고 일상적인 것을 넘어 낯설고 기이하며 이국적인 것을 추구한 사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낭만주의의 그런 충동은 단순히 주관적 몽상의 결과는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1800년을 전후로 한 거대한 산업혁명에 대한 의식의 반작용이기도 하였다. 그러니만큼 그것은 인간 소외를 야기하는 근대적 물질주의·산업주의 경향에 대한 그 나름의 저항적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저항은, 1800년대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일어난 여러 사회변혁운동의 실패에서 보듯이,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그때 이후 낭만주의자들은 내면적 세계로 더욱 깊게 침잠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 낭만주의의 현실적·정치적 함의를 잊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아무리 몽상적인 것이라도 거기에는 사실적 토대와 경험적 맥락이 들어 있다. 낭만주의의 꿈은 단순히 낭만적 몽상에 대한 찬미가 아니라 기존과는 다른 현실에 대한 절실한 염원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의 낭만화나 풍경의 시화(詩化)는, 적어도 그것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더 깊은 의미에서 더 조화로운 미래에의 갈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숭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거대한 바위나 암벽 위에서, 혹은 광활한 바다, 황무지나 폐허에서 우리는 우리를 넘어서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자리하고, 자아가 타자와 만나며, 세상 곳곳에서 영적인 기미를 느끼고, 만물에 생기가 깃드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러한 느낌을 우리는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판단력, 자연과 자유의 매개

숭고미는 규모나 강렬성에서 기존의 기준을 압도한다. 그래서 충격과 전율을 일으킨다. 그것은 그 형태나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고, 그래서 파악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유한한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무한성을 찬양한다. 그러나 이런 충격은 비규칙적이고 일탈적이며 해체적이고 무질서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이념의 형식’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에서 칸트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저항력’, 혹은 ‘자연의 그럴듯한 전능한 힘을 가늠할 용기’라고 불렀다.

우리는 자연의 압도하는 힘 앞에서 스스로 보잘것없이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힘을 가늠하고 넘어설 용기를 갖는다. 이 점에서 숭고의 체험은 미의 체험과 구분된다. 아름다움이 우리의 마음에 질적 성격으로 호소하면서 조용한 관조를 허용한다면, 숭고는 압도적 규모와 크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러면서 어떤 다른 상태로 나아가게 한다. 숭고의 이러한 부정적 즐거움에는 기존 현실에 대한 ‘저항력’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숭고의 ‘심미적 저항력’이라면, 이 저항력을 끌고 가는 힘은, 칸트 식으로 말하면, ‘판단력(Urteilskraft)’에서 온다.

칸트의 판단력 개념 역시, 그의 많은 개념이 그러하듯이 매우 복잡하고 여러 다른 개념과 얽혀 있다. 그러나 간단히 말해 두 개의 대립항 - 감성과 이성, 구체와 보편, 자연과 자유를 매개한다. 즉 자연이 감성적 구체의 영역이라면, 자유는 초감성적 보편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판단력은 특수한 것에 골몰하는 가운데 보편을 만들어간다. 그리하여 반성적 판단력 속에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은 반성되고 판단되면서 개별을 넘어선 보편적 가능성이 탐색된다. 이렇게 하여 반성적 판단력은 특수와 일반, 구체와 보편을 하나로 잇는 ‘심미적 판단력’의 대변자가 된다.



# 숭고의 비극성과 위엄

숭고는 미처럼 단순히 ‘마음에 드는’ ‘조화로운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고 기존의 기준과 관습을 전복시킨다. 그러면서 어떤 다른 지평 - 감성과 사고와 세상의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도록 한다. 주체가 기존과는 다른 충격 속에서 새로운 자아, 새로운 세상과 자연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그런 맥락 속에서다. 그리하여 주체의 주체성은 숭고 체험에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깊이와 폭을 얻는다. 이런 점에서 숭고의 체험은 파악 불가능한 것의 한계체험이다. 그것은 부정적 전율 속에서 초감성적·초인간적 위대함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초감성적 위대함의 세계란 아마도 최고선의 윤리적 세계일 것이다. 우리가 슈마드리바흐 폭포의 숭고미에서 느끼는 것은, 그 모습이 그림 속의 풍경이든, 자연의 실제 풍경이든, 결국 이 선의 이념적 세계다.

그러므로 숭고의 체험은 단순히 엄청난 크기나 그 압도적 장엄함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부정적 회로를 통해 이념의 형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래서 어떤 시작 - 사회정치적 개선을 위한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실존적 전환을 위한 출발점이어야 한다. 숭고미는 그 압도적 크기로 우리를 뒤흔들지만, 그래서 그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왜소함을 느끼지만, 그러나 왜소함에도 불구, 아니 바로 이 왜소함 때문에 우리는 더 높고 소중하며 고귀한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숭고 체험에서 중요한 것은 숭고한 자연의 사물 자체가 아니라 이렇게 자연을 숭고하다고 느끼는 우리 심성의 부정적·상쟁적 고양이고, 이 고양된 마음속의 이념이며, 나아가 이렇게 고양된 이념에의 심미적 지향이다. 인간이 숭고한 것은 지금 여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부정적 지향 때문이다. 이 부정적 유토피아적 지향 덕분에 그는 온갖 실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존재론적으로 고양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숭고의 비극성과 위엄이다. 우리는 숭고의 감정 속에서 ‘좀 더 앞으로 나아간다’. 숭고에 힘입어 자연에서 자유로 성숙해가는 것이다. 이 ‘더 나아감’, 이 계속적 형성을 북돋는 것이 예술이고 문화다. 지속적 형성과 개선의 이념은 인간의 근대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성취였다. (문화일보 11월 7일자 25면 9 회 참조)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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