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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후여담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28일(火)
‘싸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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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언어는 생명체다. 태어나고 자라고 사라지기도 한다. 더러는 다른 뜻으로 바뀌기도 한다. 장본인(張本人)이 대표적이다. 어근 ‘장본’은 본디 평범한 뜻으로 쓰였다. 중국 고전 ‘춘추좌씨전’에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역사를 서술할 때 따로 기록을 남겨 두는 것을 가리켰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중·일 3국은 장본인을 나쁜 의미로 쓴다. 특히, 사건의 주모자나 배후를 가리킬 때이다. ‘주인공’의 반의어인 셈이다. 뜻이 바뀐 용어 하나 더. 네모지고 반듯한 모양을 가리키는 ‘방정(方正)’. 이 말에 접미사 ‘-하다’가 붙으면 말이나 행동이 바르고 점잖다는 뜻이다. 그러나 방정이 맞다나 스럽다 같은 접사와 만나면, 말이나 행동이 찬찬하지 못하고 몹시 까불어서 가볍고 점잖지 못하다는, 정반대의 뜻이 된다.

최근 국민의당 내에서 ‘싸가지’ 발언을 둘러싼 파문이 일면서, 강원·전남 방언 ‘싸가지’가 표준어 ‘싹수’를 제치고 ‘전국구 언어’ 지위를 획득할 판이다. 싸가지란 초목의 ‘싹(芽)’이란 명사에, 어린 것을 가리키는 접미사 ‘-아지’가 결합돼 연음으로 표기된 말이다. 그에 비해 싹수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를 가리킨다. 그런데 싹수와 싸가지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싹수라는 말은 희망을 품고 있지만, 싸가지는 미래 비전은커녕 절망을 품고 있어 싹이 아주 노랗다. 꼬라지·모가지 같이 비하의 의미가 덧씌워진 탓이다. 싸가지는 주로 ‘없다’와 같은 부정적인 말과 어울린다. 심한 경우 ‘왕’이나 ‘핵’처럼 최악의 접두어를 앞세우기도 한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싸가지’를 일부러 ‘4가지’로 바꿔 쓰기도 한다.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온다는 4단, 곧 인·의·예·지가 없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예의 없다, 버릇없다, 의리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번에 파문을 일으킨 표현 “왜 싸가지 없이 말하는데”도 같은 용법이다. 그럴듯한 풀이이나, 본뜻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언중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정도로 그 의미가 ‘무례’라는 쪽으로 외연이 확장된 건 틀림없다. 그렇지만 교양 있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특히 아무한테나 두루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방언 이전에 비속어이므로.

정치인의 말(言)은 말(馬)과 같다. 잘하면 천하의 권력을 쥐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한순간에 평지낙마시키는 게 정치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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