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태아 생명·여성 자기결정권 존중 절충점 찾을때”

헌법학자들 제언

“완전히 폐지할수는 없지만
허용범위는 넓힐 필요 있어”

낙태죄 폐지 청원 참가자가 23만 명을 넘어서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임신중절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헌법학자들은 태아 생명권 존중 측면에서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지는 않더라도 이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절충점을 만들어내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8일 “물론 생명보다 우선하는 법이 있을 수는 없지만, 임신부의 자기결정권도 크게 보아 인간 존엄성과 연결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모자보건법에서 임신중절의 가능성을 열어놓기는 했어도 예외조항이 너무 한정적이라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낙태죄를 완전히 비범죄화하면 태아의 생명권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논란이 있지만, 처벌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국가적 이익도 별로 뚜렷하지 않다”며 “이미 낙태죄는 사문화됐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비공식적 통계로는 낙태가 연간 수십만 건 이루어진다는데, 실태조사와 동시에 낙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낙태죄 폐지와 관련해 여성단체와 종교계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만큼 사회적 합의 도출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권형둔 공주대 법대 교수는 “해외 사례에서 보듯 특히 천주교와 개신교 측에서 많은 비판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합의 도출이 전제 조건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낙태와 관련해 이해관계가 없는 시민을 무작위 선발해서 정보를 설명한 후 자유로운 토론과 심의를 통해 결정하게 하는 방식도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며 “국회도 표를 의식해 눈치만 보지 말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되 법·제도를 일부 고쳐 낙태를 좀 더 폭넓게 허용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외국에서도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되 위법성 조각 사유를 명시해 허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며 “독일의 경우 임신부가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 초기에 전문 의사의 상담을 거쳐야만 낙태를 허용하는데, 이런 방법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명진·이희권 기자 jinie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