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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11월 29일(水)
우남회관 → 시민회관 → 세종문화회관…현대史 곡절 담긴 ‘문화의 神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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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문화회관 정면에 늘어선 배흘림기둥들은 우리 전통건축의 현대화라기보다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보이는 서양식 기둥을 모델로 한 현대적 해석에 가깝다. 안창모 제공
▲  서양 건축물의 모델이자 원형이 됐다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정면.

■ 안창모의 도시 건축으로 보는 서울 - ⑩ 세종문화회관

이승만 정부 때 착공 시민회관
72년 화재 소실… 새로 지어져

배흘림 기둥 - 서까래모습 장식
전통 건축 현대적 재해석 시도
파르테논 신전 모델로 삼은 듯
정면 양쪽 벽 ‘飛天像’ 파격적

급박했던‘시대적 상황’맞물려
통일 대비한 다목적 회관 필요
면적대비 넓은 공간 부여 고민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가 설립한 기관이지만, 조선의 역사를 넘어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역사에서 온 국민이 인정하는 가장 위대한 왕, 세종의 이름을 딴 문화회관이기에 서울을 넘어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 문화회관은 한글 창제로 대표되는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빼어난 임금의 묘호로 이름 지어지고, ‘문화’를 내세운 시설이다. 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의 시작점인 우남회관에서 완공 직전에 시민회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시민회관이 화재로 소실된 후 다시 지어지면서 준공 직전에 세종문화회관을 이름으로 갖게 되기까지 세종문화회관은 문화를 앞세운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시설이다.

먼저 세종문화회관의 뿌리가 된 우남회관을 살펴보자. ‘우남’은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호다. 당시 우남회관의 용도는 시민회관이었다. 대통령이 자신의 집권기에 호를 시민회관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우남회관 건립은 1955년 6월 2일 김태선 시장 시절 건립위원회가 발족되며 시작됐다. 공사의 명분은 수도 서울에 다른 나라에 손색없는 공회당을 지어 시민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는 대통령 이승만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함이었다. 1956년 실시된 설계 공모에서 당선작 없이 ‘송종석과 안영배 안’ ‘이명휘와 엄덕문 안’ 그리고 ‘진익상과 안병의 안’이 가작에 선정됐으나 설계는 이천승이 맡았다.

공사는 1956년 6월에 시작됐다. 전재 복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전후 주택난과 학교 시설의 부족이 심각하던 시절에 시민회관 건설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지만 정부는 수도 서울의 체면상 문화시설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961년에 완공됐다.

1960년 4월 3일 자 동아일보에는 우남회관이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 취임식에 맞춰 준공될 예정이라고 보도됐으나 불과 보름 후 4·19혁명으로 이 대통령이 쫓겨났고, 공사가 중단되면서 우남회관은 대통령 취임에 사용될 수 없었다. 결국 우남회관은 장면 정부하에서 준공됐고, 준공 직전에 시민회관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그러나 건물은 1972년 겨울 화재로 소실됐다. 당시 36명이 사망하고 62명이 다쳤다. 화재는 MBC의 10대 가수 청백전 행사 직후에 발생했다.

새 문화시설을 짓는 계획이 곧바로 이어졌고 1973년 시행된 설계 공모에서 엄덕문의 안이 당선됐다. 엄덕문의 설계로 지어진 세종문화회관은 전통건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전통 속에 현대적인 기능을 담은 문화시설로 평가받는 건물이다. 당시 윤일주 교수는 “세종문화회관은 고건축의 형태를 모방하지 않고 추상화함으로써 대중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적 기능을 전통적 분위기 속에서 담아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엄덕문의 세종문화회관은 한옥 배치의 응용과 전통건축의 기둥과 포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냈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 위치에 대강당, 사랑채 위치에 소강당을 두고 두 건물을 연결했으며 마당 아래에는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연회장을 설치했다.

배흘림 양식의 6개 기둥이 현대적으로 해석된 지붕을 이고 있고, 처마 밑에는 서까래의 모습을 갖춘 장식이 있지만 전통건축의 미학을 담고 있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 전통건축을 재해석한 건축가의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재해석이 성공적이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  1960년 건립된 우남회관 투시도. 대한민국 건국 10주년 행정화보

사실 세종문화회관은 건축만으로 이해될 수 있는 문화시설이 아니다. 세종문화회관이 지어진 시기에 남북 간에 최고조에 달하던 긴장이 일시에 풀어지면서, 서울에서는 곧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 적이 있었다. 1972년 7월 4일 발표된 7·4공동성명이 계기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이 북에 특사로 파견됐고, 이후락이 김일성을 만나 도출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원칙에 합의한다’는 내용이 공동성명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남북공동성명은 뜻밖의 고민을 남측에 안겨주었다. 남북공동성명으로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되고, 남과 북이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 오가면서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서울에는 북에서 온 대표들과 회담을 하거나 모임을 할 수 있는 변변한 문화시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평양의 문화시설을 대표하는 평양대극장과 인민문화궁전이 전통건축의 형식을 갖춘 대규모 문화시설이었지만 서울에는 그런 문화시설이 없었다.

당시 전통건축 형식 문화시설의 부재는 민족문화의 정통성에서 북에 밀린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는 화재로 소실된 세종로의 시민회관(구 우남회관)이 세종문화회관으로 재탄생하는 명분으로도 작용했다.

설계 공모 당시 세종문화회관은 객석 5000석의 대강당을 갖춰 통일주체국민회의장과 대집회장, 극장 및 영화관 등 다목적 회관으로 사용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78년 준공 직후인 1979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세종문화회관에서 박정희 대통령 생전에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개최되지 않았으며, 박정희의 뒤를 이은 대통령이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됨으로써 다행히 세종문화회관이 통일주체국민회의장으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이제 세종문화회관의 건물 모습에 대해 살펴보자. 2004년 필자가 건축가 엄덕문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엄덕문은 설계 공모에서 당선된 후 청와대에서 북한 문화시설의 자료를 보여주며 평양의 문화시설처럼 전통건축 형식으로 지으라고 요구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덕문은 북의 문화시설과 같은 형식으로 지으라면 지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북한 따라 하기’밖에 안 되니 그들과는 다른 방식의 ‘짓기’가 필요하다고 청와대를 설득했다고 한다. 엄덕문은 전통건축의 현대화를 대안으로 제시했고, 건축가의 제안을 청와대에서 수용했다.

엄덕문은 세종문화회관을 짓기 전에 이미 선화예술고등학교 예술회관을 지으면서 전통건축을 현대화하는 실험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은 단순히 건축양식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5000석이라는 규모에 대한 요구는 피해갈 수 없었고, 대지 면적 대비 과도한 규모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지붕 속에 지원시설을 위치시켜야 했고, 대강당과 소강당 사이의 마당이 들어 올려진 것도 저층부에 연회장을 마련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전통 기와지붕 대신 알루미늄으로 만든 경사 지붕은 전통적인 경사 지붕의 현대적 해석임과 동시에 지붕 속에 지원시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한편 얼핏 보기에는 배흘림 양식에 상부에 간략화된 전통건축의 포(전통건축에서 지붕의 하중을 기둥에 전달하기 위해 설치한 구조체)를 지닌 기둥이 줄지어 서 있는 정면은 전통건축을 현대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러한 정면의 모습은 전통건축을 우리의 감각으로 현대화했다기보다는 서양건축의 감각으로 현대화한 것이다. 우리 전통건축의 중요한 의장적·구조적 특징은 목조가구식인데, 세종문화회관의 정면에는 목조가구식 구조의 의장적 특징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입면에서 보이는 서양식 기둥을 모델로 한 현대적 해석에 가깝다.

여기에 대강당 정면의 양쪽 벽에 조각된 비천상(김영중 작)은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의 전통건축에서 조각을 전면에 사용한 예가 없다는 점에서 이 역시 서양건축의 관점에서 세종문화회관의 정면이 재해석됐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세종문화회관의 이름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지어졌던 ‘우남회관’이라는 이름이 이승만 대통령의 우상화를 꾀한 작명이었던 탓에 이승만 대통령이 4·19혁명으로 쫓겨나자 최현배 선생이 ‘우남회관’을 ‘세종회관’으로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최현배 선생의 제안 대신 ‘시민회관’으로 변경됐고, 1972년 화재 후 다시 짓는 계획을 발표할 때도 새 건물의 이름은 ‘시민회관’이었다. ‘시민회관’이 ‘세종문화회관’으로 바뀐 것은 예술원 회장 박종화를 비롯한 각계 인사의 건의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공식 이름이 ‘서울시립문화회관’에서 ‘서울시립세종문화회관’으로 바뀌었는데, 세종문화회관이 서울시에서 지은 것이기는 하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시설임을 감안해 ‘세종’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이후 지방에 건설될 문화회관의 명칭에 ‘세종’을 모두 넣기로 했다고 한다.

이는 1972년 10월에 발포된 ‘10월 유신’ 체제하에서 이루어진 관 주도 문화행정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실제 세종문화회관은 문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1970년대에 남북 대화를 의식하며 경제발전 성과를 드러내야 한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아시아에서 가장 큰 문화시설을 지향했고, 4000석 규모의 대강당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최대 규모의 대강당은 세종로라는 최고의 입지에 있으면서도 세종문화회관이 공연예술에 최적화되지 않은 탓에 공연보다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정부 행사장으로 주로 사용됐다. 이후 지어지는 지방 문화회관에 ‘세종’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세종문화회관의 디자인은 1980년대 이후 지방 도시에 지어지는 문화회관의 모델이 되었다. 다행히 문민정부 이후 세종문화회관이 탈정치화되면서 조선 시대 이후 정치의 중심이었던 세종로를 문화와 역사의 중심으로 바꾸는 중심에 세종문화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일보 11월 8일자 28면 9 회 참조)

안창모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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