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푸드 X파일>西洋人도 반한 김장김치 ‘탄산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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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뱀 등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대개 11월부터 동면(冬眠)을 준비한다. 이맘땐 나무도 무성하던 잎을 떨어뜨려 거리엔 낙엽이 수북하다. 둘 다 영양분의 소모를 최소화해 긴 겨울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법이다.

우리 조상의 겨울나기는 김장에서 출발한다. 1800년대 학자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시월령’엔 “시월은 초겨울이라 입동·소설 절기로다. … 무·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란 가사가 나온다. 여기서 입동(立冬·11월 7일)은 겨울의 문턱이다. “입동 지나면 김장도 해야 한다”는 속담처럼, 과거엔 입동이 김장의 기준일이었다.

김장 시기와 관련된 옛말이 또 있다. “풍년이면 김장을 늦게, 흉년이면 일찍 담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는 배추·무 등 김장 재료의 작황이 좋은 해는 김장을 천천히, 나쁜 해는 서둘러 담갔다. 배추·무를 싸게 살 수 있는 시기로 택일한 셈이다. 요즘 기상청은 하루 최저 기온이 0도 이하, 하루 평균 기온이 4도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할 때가 김장 적기라고 안내한다. 최근엔 지구 온난화로 김장철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남부 지방에선 내년 1월 1일이 김장하기 딱 좋은 날이란 예측까지 나왔다.

과거에 김장은 민가의 최대 월동(越冬) 행사였다. 홍석모는 ‘동국세시기’(1849년)에서 “‘무와 배추, 마늘·고추·소금으로 겨울에 김장하는 것이 집안 일 년 계획 중 가장 중요하다”고 기술했다. 엄밀히 말해 우리 조상은 연중 김장을 준비했다. 봄엔 새우·멸치 등 해산물을 소금에 절여 젓갈을 만들고, 여름엔 천일염을 구해 쓴맛을 빼뒀다. 늦여름엔 고추를 길러 햇볕에 잘 말렸다가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었다. 고추를 심고 난 밭엔 김장의 ‘주역’인 배추를 심어 정성스레 길렀다.

요즘은 김장 풍경이 줄어들긴 했지만 겨울엔 집 마당, 아파트 거실·베란다 등에 모여 김장하는 가정이 여전히 많다. 김장은 대개 혼자 하지 않고 여럿이 협업한다. 유네스코가 2013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김치가 아니라 김장문화다.

“김장은 겨울철의 반 양식”이란 말은 과거 겨울 밥상에서 김장김치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를 보여준다. 겨울에 마땅히 먹을 만한 채소·과일이 없었던 과거엔 김장김치는 이듬해 햇채소가 나오기 전까지 서민의 거의 유일한 비타민·미네랄 보충 식품이었다. 김치는 요즘도 국민 전체 채소·과일 섭취량의 약 33%를 차지한다.

김장은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가 양념·젓갈에 버무린 뒤 항아리에 넣어 발효시키는 일부터 시작된다. 양념이 발효되면서 유해균은 제거되고 장(腸) 건강에 유익한 유산균이 생성된다. 김치엔 다른 나라 침채류보다 유산균이 훨씬 많이 들어 있다. 김치를 흉내 낸 일본의 기무치는 발효를 거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채소로 김장김치를 담글 수도 있다. 어떤 채소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열량·영양소가 조금씩 달라진다. 매끼 먹어도 질리지 않으며, 특히 김치가 잘 익으면 감칠맛과 코끝을 톡 쏘는 탄산미(味)가 최고조에 달한다. 탄산미는 김치가 익는 과정에서 생긴 탄산의 맛이다. 이는 서양인이 김치에 빠지게 되는 이유다. 감칠맛의 비밀은 젓갈이다. 우리 선조는 이 맛을 보전하기 위해 숨을 쉬는 옹기에 김치를 보관했다. 여름엔 석정(石井)에, 겨울엔 땅속에 묻어 김장김치의 맛을 오래 유지했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