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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이현종 논설위원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06일(水)
진보無罪 보수有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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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중립성·독립성 의심 받는 법관
의뢰인, 판사 정치 성향 따져
국민의 사법不信 점차 높아져

판사가 동료 판사 결정 비난
대법원장엔 ‘침묵하라’ 강요
사법부 내 이념 사조직 없애야


지난 2009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법원에 한 사건이 올라왔다. 중소 탄광업자였던 원고는 피고의 방해로 주된 거래처를 잃어버리고 파산에 이르게 됐다. 그래서 피고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5000만 달러(약 543억 원)의 배상을 받아내게 됐다. 피고는 곧바로 주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는 자신의 사건을 맡은 현직 맥그로 대법관의 재선을 막기 위해 경쟁자인 벤저민 대법관 후보에게 300만 달러(약 32억 원)라는 거금을 선거자금으로 지원했고, 대법관 선거에서 벤저민이 당선됐다. 결국 이 사건은 주 대법원에서 피고가 지원한 벤저민 대법관의 캐스팅보트로 원심이 뒤집혔다. 이 사건은 당시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판사를 선거로 뽑는 미국 사법제도의 대표적 폐해, 즉 사법이 정치에 휘둘린 나쁜 사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재판은 곧 정치’라고 했던 인천지법 오창석 판사의 ‘솔직한’ 주장처럼 현실에서 판사라고 해서 이념과 사상, 권력·경제적 이유와 무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판결은 이런 개인적 신념에서 분리돼야 한다. 법관들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선서처럼 공정성을 지키려 노력한다는 것을 국민은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이 깨지고 정치에 오염되기 시작하면 사법 불신은 위험 수위에 다다른다.

불행히도 사법 신뢰에 금이 가는 조짐이 사법부 내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초동에서 20년째 개업하고 있는 A 변호사는 “의뢰인들이 찾아올 때는 판사의 학맥·인맥을 따지는데 요즘은 여기에 더해 법원 내 진보적 그룹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인지를 묻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15년 차의 B 변호사도 “일반 사건보다 노동이나 정치 관련 사건의 경우에 판사의 정치 성향을 중요시하는 의뢰인이 많아졌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할 사법부가 정치 바람을 타다 보니 이제 판사의 정치 성향까지도 챙겨봐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미국처럼 아예 선거로 선출하면 모르겠지만 판사들이 가입한 사조직이 어딘지에 따라 호불호를 가른다면 사법의 신뢰는 붕괴되고 만다.

이런 의뢰인들의 움직임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법원 내 진보적 연구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전국 판사 3000여 명의 16%인 480여 명이 회원이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초대 회장이었다. 현재 법원의 주요 직책들은 상당수가 이 모임 소속원이다. 최근 서울형사지법 신광렬 수석부장판사가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으로 구속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임관빈 전 정책실장을 구속적부심에서 풀어주자 법원 내부에서 이 모임 소속 판사들이 대 놓고 비난하는 모습이 그렇다. 인천지법 김동진 부장판사는 지난 2일 “법조인들조차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특정 고위법관이 반복하고 있다”면서 “벌거숭이 임금님을 향해 마치 고상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일종의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런 비난을 ‘반(反)법치주의’라고 비판하고 나서자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장님이 침묵했어야 했다”며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준 격”이라고 비판했다. 뒤늦게 ‘내가 무슨 일을 했는가’라며 자책했지만 국민은 법원의 ‘하극상’에 충격을 받았다. 판사가 검사처럼 동일체(同一體)는 아니지만 사건 기록도 보지 않은 판사가 다른 판사의 결정에 더해 대법원장까지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은 드문 일이다. 만약 김 부장판사가 이 사건을 맡았더라면 사건 기록도 보지 않고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단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서초동 법조계에선 일부 판사가 먼저 주문(主文)부터 결정해 놓고 그다음에 이유를 쓴다는 얘기도 공공연하다.

그동안 여론은 사법부를 향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비판해 왔는데 이제는 ‘진보 무죄, 보수 유죄’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외부의 권력이 사법을 유린했다면, 지금은 일부 이념·정치 판사의 행태가 사법부 신뢰의 탑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차제에 이미 순수한 연구 모임이 아니라 ‘완장’처럼 되어버린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같은 조직을 해체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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