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428조 예산’과 3가지 중대한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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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428조8339억 원)이 진통 끝에 6일 새벽 국회를 통과했다. 새해 예산안의 최대 쟁점은 일자리와 복지 예산이었는데, 여야 협상의 세부 과정을 살펴보면 참으로 우려스럽다.

첫째, 예산 내용이 세계적인 추세와 맞지 않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큰 정부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향후 5년간 약 17만 명의 공무원 증원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 정부 원안(1만2000명)보다는 축소됐으나 9475명을 늘리기로 했다. 향후 30년간 약 18조 원의 세금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로 이어지고, 결국 국가 부채가 늘어나게 된다.

세계 각국은 자국으로 기업을 끌어오기 위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상원은 최근 법인세 최고 세율을 35%에서 20%로 낮추는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영국은 19%에서 17%, 프랑스는 33.3%에서 25%로 세율을 내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거꾸로 법인세 최고 세율을 22%에 25%로 올렸다. 국내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에 한국을 떠나라고 떠미는 형국이다. 국민 세금으로 최저임금 인상 대상인 민간 영세기업에 약 3조 원을 보조해주는 것도 세계에 전례가 없다. ‘큰 정부론’에 바탕을 둔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성과를 내길 기대하지만, 정책들이 글로벌 추세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걱정이 앞선다.

둘째, 예산과는 전혀 관련 없는 정치 사안을 가지고 밀실에서 협상하는 것은 후진 정치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정부 원안대로 예산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민의당과 개헌안 마련과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이면 합의를 했다면 꼼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바른정당과 정책연대를 거쳐 선거연대, 궁극적으론 통합까지 간다는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예산 정국에서 바른정당을 철저하게 패싱한 것을 보면 얼마나 허구인지 잘 드러난다. 오죽하면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그동안 공무원 증원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한 국민의당이 잘못된 합의안에 서명했다”고 맹비난했겠는가.

셋째, 깜깜이 논의와 짬짜미 심사의 폐단이다. 의회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동등한 자격을 가진 의원들이 모여 사회의 구속력 있는 법을 만드는 회의체다. 그런데 과거나 지금이나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할 때 일반 의원들은 배제한 채 원내대표들만 모여 결정한다. 이런 깜깜이 논의는 결국 의원들의 역량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주범이다. 소수 독재를 정당화하고 있는 국회 선진화법은 짬짜미 예산 심사와 여당의 벼랑 끝 버티기 전략이라는 나쁜 관행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예산안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 원안이 자동 부의된다는 점만을 믿고 여당은 야당과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지 않았다.

아무튼 정부·여당은 야심 차게 추진하려는 정책들이 일자리 창출과 같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내년 예산안 편성과 심사에서 이를 반영해야 한다. 자신의 지지층으로부터 미움을 받더라도 국익 우선의 자세로 이를 시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국민의 혈세로 소득과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감동은 없다. 반대로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을 하면 박수를 받는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원칙이 사라지고 기교만 판을 치거나, 신뢰가 무너지고 야합만 지배한다면 그것은 죽은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