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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사회]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08일(金)
“北 인권 눈 감아주면 협상테이블 나온단 생각은 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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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이 지난달 16일 한국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북한 인권을 개선하려면 지속적으로 여론몰이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송 회장 뒤쪽으로 보이는 조각상에 대해 송 회장은 “5대양 6대주 얼굴색이 다른 아이들이 모두 어깨동무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하나의 세계(One World)를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송상현 前 국제형사재판소장

ICC에 김정은 회부 어렵지만
北인권규탄결의에 이름 명시땐
北지도층 사이 회의감 유발 가능

서구사회, 시리아 해결만 집중
수년 걸려도 北 여론몰이 해야
국제기구도 책임 추궁 나설 것

통일 뒤 北 수괴 강력 처벌해야
‘法지켜야 산다’개념 심어준 뒤
경제원조하면 부흥 효과 더 커


송상현(76)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이자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을 만나러 간다고 하자 한 법조인이 기자에게 “그분은 천재”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내 스승의 스승인 셈”이라며 “어지간한 법조인 중 송 회장의 영향을 받지 않은 이가 드물다”고 평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과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예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승이자 은인으로 송 회장을 꼽았다. 직접 만난 송 회장은 어떤 질문에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북한 인권, 사법개혁 등 예민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할 말은 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내공’은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의 수장(국제형사재판소장)을 지낸 화려한 경력보다 더 빛나 보였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며 왜 그를 ‘천재’라 칭하는지 알게 됐다. 죽은 뒤 ‘He made difference’(그는 변화를 이끌어냈다)라는 평을 듣고 싶다는 송 회장의 진심에서 제자들이 그를 스승 이상으로 예우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송 회장의 인터뷰는 지난달 16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이후 이메일을 통해 추가로 이야기를 들었다.

―한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독일의 나치, 소련의 스탈린 때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하려고 집단수용소를 만든 게 불과 몇 년이고, 패전한 뒤 자동으로 없어졌다. 스탈린의 굴라크(강제수용소) 그것도 30년 갔나? 결국 없어졌지. 그런데 북한 동포들을 얽매는 잔악무도한 집단학대는 사실상 70년 넘게 존재하고 있다.”

―ICC 법정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세우기 어렵지 않나.

“제일 좋은 건 김정은을 ICC 법정에 세워 죄를 밝히고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ICC가 없었다. ICC가 생기고 난 다음에는 ICC 설립에 관한 로마조약을 보면 ICC 재판권은 조약을 비준한 회원국에만 미쳐서 회원국이 아닌 북한은 대상이 안 된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해 ICC에 회부하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지만 북한을 편 드는 중국과 러시아, 두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 되잖아. 그래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송 회장은 최근 자신의 북한 인권에 대한 발언 중 ICC에 김정은을 세워야 한다는 부분만 부각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어진 얘기에서는 북한 인권에 대한 그의 절박함과 안타까움이 계속 묻어났다.

―다른 방법은 없나.

“그래서 지금 로마조약하에서 회원국이 아닌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어느 나라 지도자를 ICC에 회부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할지 대안적 방법을 많이 논의하고 검토한다. 유감스럽게도 서구 학자들이 주로 논의하는 대상은 북한이 아니라 시리아 사태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자기 반대파 동족을 마구 죽이고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고 있는데 러시아 때문에 유엔 결의안도 처리가 안 되니 소위 ‘시리아 어카운터빌리티 패널(Syria Accountability Panel)’, 즉 시리아의 책임 추궁을 위한 전문가 집단이랄까, 이런 이름으로 임시기구를 만들 수 없을까 논의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그런 움직임이 없나.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이런 논의를 하는 곳이 아무 데도 없다. 우선 시리아가 서양에 지리적으로 더 근접한 것도 있고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수백만 명씩 유럽으로 가니 이해관계가 코앞에 닥친 것도 있다. 또 하나는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글로벌 이슈를 키우려면 그 나라가 외교 역량을 한껏 발휘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한국은 그런 게 없다.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서는 나한테도 견해를 물어오기도 한다. 그럼 나는 항상 시리아와 상황이 비슷한 게 북한이니 ‘노스코리아 어카운터빌리티 패널(North Korea Accountability Panel)’도 해보자고 이야기한다. 시리아와 관련해서는 현 집권층을 법적으로 처단하자는 논의에 머물지 않고 언젠가 시리아가 새로운 희망을 갖고 새 나라를 건설하는 시점이 올 때를 대비해 준비하자는 논의까지 있다. 대표적인 게 ‘시리아 사법 쇄신 프로젝트(Syria Justice Innovation Project)’다. 알아사드 이후 새 나라가 됐을 때 법원, 검찰, 경찰 기능을 어떻게 빨리 회복하고 운영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훈련도 시키자는 것이다. 시리아는 여기까지 논의가 돼 있다. 반면 북한은 나만 목이 아프게 떠들고 있다. 북한도 상황은 똑같다. 제대로 교육받은 판사, 바른말 하는 판·검사는 이미 김정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다 죽여서 김정은은 손댈 것도 없다. 나중에 김정은이 쫓겨나 북한이 독재자 손에서 풀려나면 수괴는 ICC가 처벌한다 해도 조무래기들은 자체 역량으로 처벌해야 하는데 지금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여기까지 일사천리로 이야기를 풀어낸 송 회장은 한번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다시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밝혔다. 자연스레 우리 정부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북한 인권을 어쨌든 개선하려면 그런 식으로 계속 압박하고, 국제적으로 몇 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으로 여론몰이를 해야 한다. 그래야 각종 국제기구에서 심각하게 다루고 폐쇄적인 북한 사회를 뚫고 들어갈 수 있다. 이슈를 글로벌하게 해 놓으면 가만히 둬도 시리아처럼 ‘노스 코리아’에 대한 논의도 열린다.”

―한국도 당사자인데.

“당연하다. 우리가 다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것 아닌가. 북한이 어느 날 망하면 우리가 주도적으로 도와주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 작업을 하자고 통일부도 만들고 법무부에 통일 담당과도 만들고 대법원에도 비슷한 게 있는데, 북한 땅문서를 갖고 피란 와 남한에 정착한 사람 땅은 나중에 어떻게 찾아주느냐, 주로 이런 논의만 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데 그보다 먼저 북한의 사법부, 검찰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 것인지는 별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남한에서 가서 다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가 좀 나서 주면 좋을 텐데.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선 굉장히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무슨 조치를 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지금이야 하도 이런 일 저런 일이 많이 터져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가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제대로 관심을 표명하고 조치를 취하기를 희망한다.”

―정부가 유독 북한 인권 문제에는 목소리가 작아진다는 비판도 있다.

“그런 걸 나도 느꼈다. 북한 인권 문제가 나오면 입을 꾹 닫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이 봤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목격했다. 아마 남북 간 소통을 위해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는 데 자꾸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게 장애가 되지 않느냐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북한 인권 침해에 눈을 감고 있어도 국제사회의 다른 사람들이 다 보고 있다. 우리 혼자 입 다물고 눈 가린다고 해서 정부가 원하는 대로 처리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못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도 북한 인권에 대해 있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대범하게 대처하고 국제사회와 같이 소통하면서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송 회장은 북한 인권 관련 활동을 해온 국제인사들로 구성된 ‘북한 인권 현인 그룹’의 멤버다.

―북한 인권 현인 그룹은 지금도 활동하나.

“위원이 8명인데, 나만 한국 사람이다. 호주 대법관 출신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위원장, 영국 상원의원인 알톤 경 등 8명이 멤버다. 북한의 인권 위반 사태를 묵인하고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해서 만들어졌다. 이정훈 전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가 사실상 사무총장 역할을 했는데, 정권이 바뀌고 난 다음에는 현인 그룹의 운명 자체가 어찌 될지 모르겠다.”

―유엔의 북한 인권 규탄 결의안에 김정은의 이름을 꼭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내 판단은 그렇다. 어차피 2500만 북한 동포는 엄격한 검열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다. 단 김정은을 보좌하는 핵심들은 외국 소식을 다 접한다. 최고 존엄을 하느님같이 생각했는데 국제사회에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그런 이야기를 자꾸 들으면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통일 이후 사법(justice)의 재건을 가장 강조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내가 2010년부터 꾸준히 국제사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이론이 있다. 정의가 경제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연관돼 있다, 단 정의가 먼저 칼을 휘두르고 난 뒤 경제 원조가 들어가야 효과가 더 크고 경제 부흥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이론이다. 얼핏 생각하면 경제 원조가 먼저인 듯하지만 반대가 돼야 한다. 우선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지도층, 수괴 몇 놈을 강하게 처벌해 ‘죄짓고 못 사네. 몇십 년이 지나도 결국 감옥에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 그게 바로 ‘법의 지배(Rule of Law)’다. ‘이 세상에 정의가 있긴 있네’라는 의식을 먼저 심어준 뒤에 경제 원조로 돈이 들어가야 정부가 떼먹어도 덜 떼먹고 정부에 붙어 기생하던 이들도 덜 까불고, 배분도 좀 더 잘된다. 이런 것 없이 바로 돈이 들어가면 그간 썩은 정부 안에서 부정 축재한 이들은 좋은 곳에 드러누워 살고, 일반 국민은 굶어 죽고, 다리 하나 지으라고 3000만 달러 보내면 1주일 만에 돈이 싹 없어진다.”

▲  송상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장이 한국위원회 사무실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적폐 청산 수사와 사법 개혁 등 법조계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한국의 내로라하는 법조인의 법적 사고(Legal mind)에 오랜 기간 국제형사재판을 주재하면서 익힌 글로벌 감각이 더해져 나온 북한 인권에 대한 통찰이다. 송 회장의 거침없는 쓴소리는 북한과 김정은만을 향하지는 않았다. 제자들이 수두룩한 법조계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법조계’ 운을 떼자마자 마치 준비한 듯 답이 이어졌다.

“참 걱정스러운 게 많다. 사법권 독립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천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최근 역사에 비춰 권력이 센 행정부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하는 게 사법부의 독립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사법부의 독립은 행정부로부터의 독립뿐 아니라 무책임한 언론·여론·비정부기구(NGO)로부터의 독립도 있다. 하나하나가 몸가짐이나 마음가짐이 바르면 두려울 게 없고,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난 외국에만 나가면 한국 법조 인력의 우수성을 많이 선전하고 다니는데 최근 보면 가슴 쓰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ICC 소장으로 있을 때 어쩌다 시간이 나서 주말에 골프 칠 때도 꼭 혼자 쳤다. 둘만 나가도 뒷말이 나온다. 누가 식사 초대하는 것도 응한 적이 없다. 사적 초대에는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말이 한번 퍼지면 해명해도 막을 수 없다.”

―지금은 아예 법원과 검찰이 개혁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변호사가 돈을 많이 번다. 판·검사 밥 사주고 용돈 쥐여주는 일이 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것부터 없어져야 한다. 검사들 스스로 먼저 그런 거 발동 거는 모습을 많이 봤다. 세상은 점점 맑아지니까 그런 부분은 차차 나아질 것이다. 법관은 중립적으로 무엇이 국민을 위한 판단인지, 무엇이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하는 순리인지, 그런 걸 생각해 합리적으로 판단했으면 좋겠다. 지금 디지털 세상이 되니까 선진 각국에서 거의 이념적 대립이란 건 없어졌다. 있을 수도 없고, 필요도 없다. 하지도 않는다. 근데 우리나라만 이념으로 많이 분열돼 있는 게 늦둥이가 한술 더 뜨는 격이다.”

물어보려 했던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뭉뚱그려 미리 해버린 듯해 하나만 더 물었다.

―검찰이 하고 있는 이른바 적폐수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적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과거에 잘못한 걸 적폐라고 하겠지. 기준과 정도를 미리 국민이 납득할 만큼 알리고 그 범위 내에서 짧고 굵게 해서 딱 수사하고 처벌하고 잊어버리는 그런 게 필요한데, 이걸 혹시라도 정치적 목적으로 자꾸 끌어간다거나 하면 결국 부메랑이 된다. 지금 적폐수사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그 대상이 되고, 그러는 동안에 나라가 골병든다. 그게 걱정이다.”

―대학 재학 중에 요즘으로 치면 행정고시, 사법시험을 모두 합격했다. 갈 수 있는 길이 행정부 공무원, 법조인도 있는데 계속 학교에 남은 이유가 있나.

“학교에 40년 있었고 교수로는 35년 있었다. 우리 때는 고시 합격자가 극히 적어서 어느 한쪽만 합격해도 그런대로 순풍에 돛 단 듯 갈 수 있었다.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내려온 패턴이다. 시험 패스하면 스무 살 대학생이 군수로, 판·검사로 가는 것.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난 미국 유학을 하고 와서 국제사회를 보다 보니 판·검사하는 것보다 교수를 하는 게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월급이 좀 적은 거 하나 말고는 내가 노력해서 머리를 잘 쓰면 훨씬 성과를 올리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랬다. 그리고 법을 공부할수록 법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도 아주 잘하고 강의도 아주 잘하셨다고 들었다.

“내가 한국에서 교수가 돼서 학계를 가 보니 다른 분야는 몰라도 법학에 있어서는 일제강점기보다 퇴보했으면 퇴보했지 앞선 게 하나도 없다고 판단했다. 교수들 논문 쓰는데 참고자료가 없어. 도서관도 책을 안 사고, 어학이 안 되니 외국 논문도 못 봐. 그러니 학술논문 각주에 ‘고시계’ 같은 수험잡지를 인용해. 논문도 아닌 글을 학술논문에 인용하고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는 풍토야. 또 교수를 채용하는데 연구 업적을 갖고 오랬더니 자기가 쓴 민법총칙 같은 교과서를 한 보따리 싸 가지고 와. 내가 다 갖다버리고 싸워서 바꿨어. 교과서는 학생들 필기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나열식으로 정리한 건데 이것이 어떻게 학문 업적이냐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교수랑 거의 육탄전으로 소리 지르고 싸워서 서울대부터 완전히 바꿨어. 그리고 웃긴 게 법학 교수면 다 같은 법학 교수지, 민법은 같은 민법 선생끼리 자기 분야에 철옹성을 쌓고 다른 놈은 끼지도 못하게 하고, 절대 협력이나 소통도 없고, 자기 분야에서만 봉건영주가 돼 있어. 그걸 깨부수느라고 맞아 죽을 뻔했어. 근데 내가 떠나고 나니 지금은 다시 다 영지를 가진 봉건영주가 돼 있어. 법경제학도 내가 처음 한국에 도입한 분야야. 법이나 제도를 도입할 때 경제학적 효율을 따지는 것인데, 사실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 기조에 딱 맞는 분석틀이지. 그리고 내가 한국에 도입한 것 중 소송에 갈음하는 대안적 분쟁 해결 제도가 있어. 내가 새로 가져와 가르쳤어. 국제상사 중재로 돈 잘 버는 변호사들 다 내가 손때 묻혀가며 가르친 애들이야.”

―그분들이 가끔 밥은 사시나.

“어떤 놈이 밥을 사? 또 과목은 있는데 가르칠 사람이 없어서 해방 이후 한 번도 강의를 개설하지 못한 과목이 있어. 첫째가 지적재산권, 당시에는 무체재산권법이라고 불렀어. 당시 외국 제품을 그대로 베껴 다시 수출하니까 미국, 호주, 유럽에서 항의하고 난리야.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잖아. 그래서 내가 한국지적소유권학회를 만들어 강의도 했지. 내가 처음 교수 하면서 한국 법학계가 일본 법학계에 완전히 중독돼 있는 것을 보고 일본 법학 의존성을 내 세대가 끊어야겠다고, 이게 내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붙어 보니 잘 안되더라고. 서양에서 새로운 게 나오면 선배들은 일본식으로 용어만 좀 바꾼 걸 바로 베끼고 번역해 논문이라고 내고. 우리는 원전을 직접 보고 우리 법과 비교해서 이래저래 논문을 만들어내면 읽는 데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지. 우리 노력이 인정을 제대로 못 받길래, ‘아, 내 능력의 한계는 일본 법학에 대한 중독을 끊는 것까지구나. 그 위에 한국적 법학을 세우는 건 다음 세대의 임무구나’라고 생각했어.”

―후세대는 잘하고 있나.

“잘 몰라. 세상이 이런데 학문이 잘되겠나.”

북한 인권이나 사법개혁에 대해 얘기할 때는 진중한 자세와 목소리였는데, 교수 시절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는 입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을 보고 다양한 경력의 송 회장이 가장 아끼는 ‘경력’은 교수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사법부의 해외 진출이 점점 늘고 있다.

“더 늘어야지. 법원·검찰 다 국제적으로 참여하거나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알고 있다. 단 언어적 소통과 국제적 감각이 부족해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은 종종 본다. 돈 다 대주면서 1년 이상 외국에서 공부하고 오라는 식인데 이게 참 효율이 없다. 과거에는 골프 치러 다녔고, 요즘엔 그건 줄었는데 이젠 자기 애 영어 가르친다고 자기는 공부 안 하고 애 뒷바라지만 한다. 또 ‘여기선 내가 밥할 테니 하고 싶은 공부하라’고 부인을 학교에 보낸다. 이런 걸 한국에서 보낸 사람들이 소상히 파악해 개선해야 하는데, 출장보고서는 기가 막히게 잘 쓴다. 그게 한국 교포들한테 물어서 대충 보고한 것인데. 법원·검찰이 외국 사례가 어떻고 하는 게 다 거기에 가 있는 애들이 그런 식으로 조사해서 올린 수준이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편한 질문을 던졌다가 혼만 크게 났다.

―외국에 오래 계셨는데 가족은 싫어하지 않나.

“내가 무녀독남이라 안사람은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돌봐드리고 나 혼자 외국에서 밥 먹고 살았다. 소장이 뭐 별건가. 혼자 밥 해먹고 살면 되지.”

―일하시는 분이라도….

“ICC 소장을 했던 12년 동안 한국 기자들이 나한테 했던 질문이 똑같다. 첫째 질문이 소감이 어떠십니까. 두 번째가 월급이 얼마입니까, 관사가 좋겠군요 등등. 근데 국제기구 수장 중 관사가 있는 사람은 둘밖에 없다. 유엔 사무총장과 유네스코 사무총장. 국제기구 수장들 판공비는 1원도 없다. 사람이 오면 내 돈으로 커피 한 잔 사주고, 아니면 그냥 물을 마신다. 우리나라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한국에 오기 싫다는 외국 학자나 국제기구 인사들을 1등석 항공권 줘서 강제로 불러다 대학교 명예박사 학위 주고 선물 보따리 들려 보내는데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게 다 국민 세금이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이다. 안 오려면 관 두라 그래. 다 한국은 오고 싶어 한다. 오면 적당히 대접하면 된다. 좋은 식당 데려가고, 비싼 선물 사준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 인터뷰가 진행되는 방의 테이블 위에도 500㎖ 생수 두 통만 있었다.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With Law, We can change the world.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내가 했던 말이다. 나는 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죽은 다음에 나에 대해 뭐라 뭐라 하는 건 듣기 싫고, 그냥 He made difference라는 말만 듣고 싶다.”

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한 학자이자 법조인은 이미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었다.

인터뷰 = 민병기 기자 (사회부)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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