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 선임기자의 정치 카페>연방제 분권·양자대결·다당제 유지… 좁혀지지 않는 文·洪·安 ‘개헌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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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
與野 합의불발땐 독자추진

- 홍준표 한국당 대표
지방선거 망칠까 우려에
지방선거일 개헌투표불가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선거구제 개편없인 무의미
‘개헌=다당제의 도구’분명

시기·선거구제 놓고 ‘공방’
정치요인탓‘동력’잃을수도

개헌이 어려운 건 헌법 조문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요인 때문이다. 개헌 추진 시기나 내용·방법을 둘러싸고 플레이어들의 생각이 너무 다르고 이해 당사자들의 셈법이 극명하게 엇갈린다는 것, 특히 이번 개헌이 해방 후 한국 정치의 최대 난제라는 선거구제 개편과 연계돼 있다는 점이 개헌을 어렵게 한다.

개헌 발의권은 ‘국회 과반’과 ‘대통령 1인’에게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1일 국회에서 행한 ‘2018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강한 개헌 추진 의지를 밝히면서도 권력구조 문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의 실현을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앙집권형 구조가 정착돼 있고 지방 재정자립도가 극히 낮은 남한에서 연방제는 어울리지 않는 제도라고 입을 모은다. 노무현 정권에서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문 대통령이 말하는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은 곧 북한과의 통일을 의식한 구상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치권이 개헌안 합의안을 내놓지 못할 경우 70% 안팎의 국정지지율을 업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개헌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원래 내년 지방선거일 개헌 국민투표 찬성론자였다. 정세균 국회의장 측은 최근 기자와 만나 “정 의장이 지난 4월 대선 정국 때 대선 후보들로부터 개헌 의견을 청취한 일이 있는데, 홍준표 당시 후보가 서면 제출한 입장에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함께할 것’이라고 돼 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그러나 제1야당 대표가 된 뒤로는 ‘지방선거일 개헌 투표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개헌이 지방선거 이슈(정권 중간평가)를 삼켜버린다는 명분이지만, 내심 개헌에 대한 관심으로 젊은층이 투표장으로 쏟아져 나오면 보수 정당의 지방선거를 망칠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한 것 같다. 이번 개헌이 선거구제 개편과 연계돼 있다는 점도 홍 대표를 머뭇거리게 하는 요소다.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비례연동제를 반영한 선거구제로 총선을 치를 경우 기존 의석 3분의 1가량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대선이 양자대결로 회귀할 것이라는 ‘믿음’도 그가 개헌에 소극적이게끔 하게 하는 요소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권력구조 개편을 동반한 개헌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선거구제 개편과 연계되지 않는 개헌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 안 대표가 선호하는 권력구조를 굳이 내세우지 않겠다는 것은 어느 하나를 고집할 경우 제3당으로서의 중재 역할을 못 하고 개헌 기회도 날릴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안 대표는 “선거구제 개편 없는 개헌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신념을 내비침으로써 ‘다당제 정착의 도구’로써의 개헌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회는 지난해 말 29년 만에 개헌특위와 전문가 자문위를 만들어 1년 동안 개헌을 논의해왔다. 원래는 11월 기초소위원회를 만들어 연말까지 개헌안 초안을 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안 됐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말 개헌안 마련은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이 찬성해줄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당은 개헌 저지선(100석)을 넘는 116석 의석을 보유한 거대 정당이다.

만약 연말 개헌안 마련이 좌초될 경우 개헌 추진은 두 가지 흐름 중 하나를 따를 것이다. 첫째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개헌안 마련 마지노선(내년 3월 초)까지 정치권을 압박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 열렬 지지자들이 ‘개헌의 촛불’을 들면 지방선거를 의식하는 정치권을 흔들 수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잇단 강조에도 불구, 그가 진짜 개헌을 원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미 집권한 문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은 개헌 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한 반면 야권은 개헌의 시대적 요구에 저항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게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둘째는 정략적인 정치권의 개헌 공방이 개헌에 대한 사회적 열망까지 약화시키면서 자조(自嘲)감 속에 추진 동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