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어도 죽은 나’와 ‘죽은 듯 살아 있는 그녀’의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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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 편지소설 ‘너는 너로…’

식물인간 여성 돌보는 주인공
상대방을 통해 ‘나’ 찾아가기

“바늘 한 땀과 한 땀 사이, 그 고르지만 영원히 포개질 수 없는 차이에 작가가 인간과 세계를 말하는 방식이 있다”로 평가받는 김숨 작가가 편지 소설 ‘너는 너로 살고 있니?’(마음산책·사진)를 내놨다.

소설의 주인공은 11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한 여자를 돌보기 위해 8개월 전에 고대의 능이 삶의 고락을 가로지르는 도시 경주로 내려온 경력 15년 차 무명 배우. 무대에서 한 번도 주인공이 돼 본 적 없는 그는 실제 삶에서도 주변인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자기 인생이 다 흘러가 버릴 것 같은 허무감에 시달렸다.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절망감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앞으로의 나날은 지금보다 더 불행하고 외로울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결국 첫 번째 발작을 일으켜 쓰러진 뒤 그는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경주로 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경희라는 이름의 식물인간 상태인 여자를 돌보면서 그녀에게 깊은 교감을 느끼게 된다. 경희는 친자매보다 더 그녀와 닮아 보였고, 살아 있어도 죽은 삶이라는 공통점이 그녀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소설은 그런 주인공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써내려가는 편지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살아 있어도 죽은 듯 삶을 영위했던 ‘나’와 죽어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그녀’. 주인공은 그녀를 보살피며 잃어버렸던 혹은 죽어버렸던 ‘나’라는 존재를 찾아간다. 주인공이 식물인간인 그녀를 향해 끊임없이 “내가 보이나요?”라고 묻는 것은 살아 있는 그녀를 확인하고, 상대를 통해 자기 자신도 확인받고 싶은 욕망을 말한다. 따라서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육체와 정신, 여성성의 문제들이 9개의 장으로 이어지는 촘촘하고 나지막한 편지글은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관한 은유이기도 하다.

‘나’가 ‘그녀’ 곁에서 반응을 살피며 나를 확인받고자 하는 가운데 병원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진지하게 전해진다. 소설에 수록된, 작품과 같은 톤의 신예 화가 임수진의 목판화는 소설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