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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13일(水)
G2, 自國 이익 위해 무역장벽 조절… 中주도 세계화 기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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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⑪ 美 보호무역주의와 ‘팍스시니카’

지난달 APEC 정상 선언문에
경제 관련 ‘불공정’ 표현 많아
‘자유’ ‘공정무역’ 양립 어려워

TPP불발·NAFTA재협상으로
美제외 11國이 CPTPP 합의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까지 허용

美 2003년이후 亞서 힘의 공백
초고속성장 中이 우월지위 행사
아세안서도 더 많은 지지 확보

트럼프 ‘美우선주의’ 선회하며
中 자유무역수호자 자처하지만
이익우선 大國主義 못벗어날듯



#1. 지난달 베트남에서 개최된 제25차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21개국 정상이 발표한 다낭 선언문은 예년과 사뭇 다른 표현이 포함되었다. ‘공정한’(fair)이라는 단어가 ‘불공정한’(unfair)까지 합하면 모두 4회 등장한다. 선언문 안에 ‘자유로운’(free)과 같은 횟수다.

일 년 전 페루 리마에서 개최되었던 정상선언문에서 ‘공정’은 한 번도 없었다. 대신 ‘자유’는 7회 등장하였다. 외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언뜻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은 상투적인 언어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자유와 공정은 양립하기 어려운 단어다. 공정은 주관적 가치판단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A국의 노동자가 받는 시간당 임금이 B국보다 낮다면 B국의 입장에서는 불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에 노동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한 임금의 차이는 문제가 될 것이 없으며 사실 자유로운 국제무역이 일어나는 논리적 이유를 제공한다.

한편 다음 날 11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CPTPP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후신으로 비준을 거부하고 탈퇴한 미국을 제외한 11개국 아태지역 국가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말하며 새로운 이름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들어간 캐나다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CPTPP는 5억 인구, 10조 달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에 해당하며 당초 미국이 포함된 TPP의 37.5%보다 크게 축소된 규모다.


▲  강대국의 자국 중심 무역 정책은 공정무역을 어렵게 한다. 김현종(오른쪽 세 번째)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0월 미국 워싱턴 미국무역대표부에서 열린 ‘제2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 참석, FTA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2. 11개국은 TPP 협약내용을 전면 재검토하는 대신 미국 단독으로 추진되었으나 다른 나라들이 반대한 세부항목과 문장을 다듬는 것에 집중했다. 수정이 가해진 것들도 대부분 항구적인 조치가 아니라 TPP를 잠정적으로 유보하는 선에서 그쳤다.

CPTPP는 TPP 협정에서 20개 항목을 유예했다. 보류된 20개 항목 가운데 11개는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것으로서 신 생물학적 의약품에 대한 특별 보호조치, 사후저작권 보호 유보, 회원국 제조업체의 셋톱박스 디코딩 금지조항을 폐지한 것 등이다.

논란이 있었던 투자자 국가 분쟁해결(ISDS) 조항은 그 범위를 축소하고 DHL 또는 Federal Express와 같은 특송 서비스를 위해 특별 세관을 설치하는 요구 사항도 유보했다.

그러나 당초 TPP의 핵심조항은 건드리지 않았다. CPTPP 발효 시 마찬가지로 역내 교역 제품의 95%는 무관세 적용을 받는다. 가장 혁신적인 조항이었던 디지털 경제에 관련된 수정도 없다. CPTPP는 회원국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자유로운 데이터의 흐름을 허용하는 세계 최초의 무역협정이며 회원국 기업들이 데이터를 다른 회원국에 저장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내년 1분기 비준을 목표로 협상이 진행 중인 CPTPP는 TPP에 포함된 국영기업에 대한 규정을 모두 이관받았다. 다만 말레이시아, 브루나이는 국유자원회사에 영향을 미치는 조항에 대한 유예조치를 희망하고 있다. 이 밖에도 캐나다는 불어를 사용하는 퀘벡주와 관련된 문화산업, 베트남은 노동위반에 대한 무역제재를 유예해 줄 것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3. TPP 협정문은 모두 29장으로 무수히 많은 부속서를 포함, 5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당초 지적재산권과 디지털경제 등 준수해야 할 엄격한 규정을 미국이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11개국이 TPP에 합의했던 것은 공동시장에 대한 접근성 때문이었다. CPTPP는 TPP를 최소한으로 수정함으로써 공동시장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11개국이 그토록 공동시장을 원하는 근본은 2003년 A 알레시나가 공저한 ‘국가의 크기’(The Size of Nations)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의 가설에 따르면 국가의 크기는 규모의 경제에서 오는 편익과 인구의 이질성에서 비롯한 비용의 상충관계에서 결정된다. 규모의 경제는 국방, 안전과 같은 공공재의 생산과 시장의 크기에 의존한다. 나라가 클수록 공공재를 창출하는 데 따르는 납세자의 부담이 줄어들고 시장의 규모도 커 원활한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문화, 종교, 언어, 지역 간 격차와 같은 비경제적 요인과 경제적 요인은 국가구성원 간 공공정책에 대한 선호관계의 차이를 가져온다. 소수민족은 자신들을 배려하는 정책을 요구하고, 소득이 높은 지역은 납부한 세금이 다른 지역에 쓰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편익과 비용의 균형에서 국가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1945년 유엔 창립 당시 회원국의 수가 51개국에서 2011년 193개국으로 4배 가까이로 늘어난 사실을 이해하는 데 충분하다. 비록 지역적 분쟁은 끊이지 않았으나 오랜 기간 평화가 지속되고 민주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편익이 줄고 비용은 늘어나 국가의 크기가 줄어드는 대신 그 수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상충관계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체제로의 변화는 국가의 수가 늘어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다. 자유무역의 확대는 해외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게 됨으로써 인구구성원 간 이질성은 새삼 부각되었다. 1994년 NAFTA가 체결된 이듬해 불어를 사용하는 캐나다 퀘벡주의 분리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시행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코틀랜드,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운동도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이라는 공동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국가의 크기가 변할 수 없다면 국제관계에서 국가는 자신에 유리한 선택을 하려할 것이다. 예상과 달리 조기에 11개국이 CPTPP에 합의한 것은 공동시장을 창출함으로써 높아지는 보호무역주의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4.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 F 후쿠야마는 미국이 중동에 몰입할 때 아시아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기는 것이 불가피하며 결국 중국이 이를 메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많은 아시아 국가가 초고속 경제성장을 구가했던 중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보았으며 이 지역에서 중국이 우월적 지위를 행사하게 한 중요한 무기였다.

이것은 유엔에서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엇갈리는 안건에 대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이 투표를 행사한 패턴에서 잘 드러난다. 일본과 한국의 순으로 미국을 더 많이 지지했으나 아세안 국가들 대부분 중국의 손을 더 많이 들어주었다.

이후 미국은 아시아지역에서 중국과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됐다. 13개국 지역협력체인 아세안+3 이후 호주, 뉴질랜드와 인도가 참여, 아세안+6으로 확대되었고 다시 호주, 뉴질랜드가 2009년 아세안과 FTA를 체결하였다. 마침내 2015년 미국은 TPP를 이끌어냈다.

TPP가 중요한 것은 1948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대체하고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가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록 12국으로 구성된 소규모이긴 하나 다자간 무역체제이기 때문이다.

TPP는 누적 원산지규정에서 중소기업, 국영기업, 디지털경제에 이르기까지 21세기 국제규범의 성격을 가진다. 당초 미국은 TPP와 유사하게 대서양 건너 EU를 상대로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도 병행 추진하였다.

왜 트럼프 대통령은 팍스아메리카나를 버렸을까? 자신의 선거공약인 ‘미국 우선주의’가 그토록 중요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2년 전 노벨상을 받은 A 디턴이 동료이자 자신의 아내와 공저한 연구논문 ‘21세기 미국 백인 중년의 증가하는 질병률과 사망률’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미국 인구의 62%를 차지하는 비히스패닉계 백인 인구의 사망률이 증가하는 추세는 고소득국가에서는 전례가 없는 현상이다. 그 가운데서도 25세 이상 중등교육 이하를 받은 백인 인구의 사망률이 흑인보다 높고 특히 50∼54세 연령대에서는 30%가 높다는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

높은 사망률에는 알코올, 마약과 연관된 약물중독, 자살 등 단지 소득수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의 연구는 미국 민주주의 정치가 왜 엘리티즘에서 포퓰리즘으로 이동했는지를 설명한다.


#5. 그렇다면 팍스아메리카나 대신 팍스시니카(Pax Sinica)가 가능할까? 지난 10년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미국이 아시아개발은행(ADB)에 흥미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전 세계 56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출범은 하나의 예다. 중앙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지역의 철도, 항구 등 인프라를 건설, 위안화권을 구축하고 자유로운 무역과 투자를 영위하고자 하는 일대일로(B&R)는 또 다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현시점에서 팍스시니카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CPTPP는 국제사회가 중국의 리더십에 의문을 가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중국 주도로 추진했던 아세안+6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개방도가 낮은 인도의 등장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한편 알레시나는 무역장벽이 높아질 때 대국의 이득을 강조한다. 국내언론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을 대국의 자세가 아니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대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주도의 세계화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우리나라는 높아진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과 세계 보호무역주의 대두로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큰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한·미 동맹과 자유무역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사드 사태와 한·미 FTA 재협상은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 이 두 가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협상력이다. 그리고 이 협상력은 궁극적으로 사회구성원 간 관심과 충분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써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성숙한 민주주의에서 나온다. (문화일보 11월 15일자 28면 10회 참조)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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