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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Her Story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13일(水)
혜은이 “사업 실패로 20년 공백… 초창기 히트곡들이 나를 다시 세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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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시작 전 리허설을 하며 꼼꼼하게 무대와 음향 등을 챙기던 가수 혜은이는 인터뷰 자리에 앉자 긴장이 풀린 듯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턱을 괴고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동훈 기자 dhk@
- 열정 무대로 ‘데뷔 45주년’ 보내는 가수 혜은이

여전히 공연의 마지막은‘열정’
2시간 동안 모든 걸 쏟아붓죠

젊은이들도 많이 아는 제 노래
감정 공유하는 순간 모두의 것

60살이 다 돼서 무대로 돌아와
다시 온 기회 놓치고 싶지않아

내 노래로 뮤지컬 만드는 게 꿈
이뤄진다면 더 바랄 게 없겠죠


[인터뷰 = 안진용 기자 (문화부)]

“이 정도야 코끼리 비스킷이죠!”

올해 데뷔 45주년을 맞아 서울과 지방, 대극장과 소극장을 오가며 팬들과 만나고 있는 가수 혜은이(61)에게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당차게 대답했다. 코끼리가 비스킷 한 조각 먹을 정도의 힘이 들 뿐이란 농담이다. 가수 인생은 노래 제목 따라간다 했던가. 혜은이와 그의 주변 이들이 꼽는 대표곡은 단연 ‘열정’이다. 지난달 말 혜은이의 콘서트가 열린 서울 대학로 SH아트홀 입구에 들어서자 ‘열정’의 가사를 적은 큰 조형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랑 때문에 목숨 거는 사랑 (중략)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멀고 마는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그런 사랑~.’

당대 최고의 작곡가·작사가 부부인 김희갑·양인자 씨가 혜은이에게 선물한 이 곡은 30년의 세월을 관통해 혜은이와 그를 좇는 팬들의 폐부를 관통한다. 그래서 이날 공연의 엔딩곡도 ‘열정’이었다.

“모두가 ‘열정’으로 마치길 바라니까요. 이 노래를 열창하고 나면 공연이 끝나도 끝난 것 같지 않죠. 다들 자리를 못 떠요. (웃으며) 그러니 다음에 또 제 공연을 보러 오는 거겠죠? 공연이라는 것은 끝낼 때쯤 되면 항상 아쉬워요. 1년 열두 달 내내 하고 싶죠. 전 항상 2시간 정도 공연해요. 그 안에 모든 것을 쏟아붓죠.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 때 끊어줘야 ‘혜은이 또 보러 와야지’ 싶지 않을까요?”

채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데뷔한 혜은이는 원조 ‘국민 여동생’이었다. 특유의 간드러진 목소리로 ‘당신은 모르실 거야’를 부를 때 대중의 애간장이 녹았다. 그리고 어느덧 4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목소리만큼은 여전하다. 공연장을 찾은 초로의 신사는 “눈 감고 들으면 40년 전 바로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비결을 묻자 혜은이는 “타고났다”며 빙그레 웃었다.

“전 보약도 안 먹는 사람이에요. 감기에 걸려도 정말 다행스러운 게, 목이 쉬지 않죠. 신체에서 가장 늦게 나이 드는 곳이 성대라고 해요. 그런 점에서 전 복을 타고난 사람이죠. 따지고 보면 세상에 노래 잘하는 사람은 참 많아요. 하지만 어떤 목소리를 갖고 노래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호응도가 달라지죠. 그런 점에서 전 정말 복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혜은이의 노래는 세월을 거스르는 힘이 있다. ‘열정’ 외에도 ‘당신은 모르실 거야’ ‘제3한강교’ ‘진짜 진짜 좋아해’ ‘감수광’ ‘뛰뛰빵빵’ ‘새벽비’ 등 젊은 세대도 아는 노래가 즐비하다. 후배 가수 코요태가 리메이크한 ‘열정’을 통해 이 곡을 안 후, 혜은이가 부른 원곡에 빠지게 됐다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제가 가진 가장 큰 행복은 제 노래를 공유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아는 노래가 나와야 콘서트가 재미있거든요. 무작정 듣는 게 아니라 함께 부르며 감정을 공유해야죠. 제 노래는 노래방에서도 많이 부른다고 해요. 후배들이 리메이크해준 덕분에 젊은 친구들도 많이 알고 있고요. 발표하는 순간에는 제 노래였지만, 이제는 이 노래를 사랑하는 모든 이의 노래가 된 것 같아요.”

데뷔 45년을 맞은 만큼 혜은이를 찾는 곳은 많다. 연초부터 걸음을 재촉했고 연말에도 각종 공연을 앞두고 있다. 팬들은 혜은이와 만날 날을 손꼽으며 2017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혜은이는 ‘45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부끄러워한다. 공백이 길었던 탓이다. 사업 실패 등으로 가수로서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아까워서, 그 시간 동안 혜은이를 잊지 않고 기다려준 팬들이 고마워서 혜은이는 더 굳은 마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오른다.

“많은 노래가 히트하고 대중과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이죠. 하지만 저는 가수 인생에 있어 ‘골든 타임’을 놓쳐버렸어요. 1990년에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한 사업이 실패한 후 20년 가까이 활동을 못 했죠. 돈을 따라다니던 그때는 가수로서 제 시대가 끊긴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런 짐을 털어버리고 다시 무대로 돌아왔을 때, 운 좋게도 초창기에 발표한 그 많은 노래가 긴 공백을 커버해줬어요. 그래서 60세가 다 돼 다시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티켓이 매진되고 만석이 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죠. 기회만 주어진다면 진짜 제 열정을 바쳐서 노래만 하고 싶어요.”

가수에게 무대는 포근한 침대와 같다. 이곳에 서서 공연을 마치면 마치 단꿈을 꾼 듯하다. 특히 소극장 무대에서는 관객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어 아주 좋다.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는 관객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따라 부르라고 눈짓으로 재촉하기도 한다. 무대에 서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몸에 소름이 돋아요. 그 공간 안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인 거잖아요. 무대에 서 있는 게,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느낌이에요. 노래가 끝난 후 관객들에게 말도 걸죠. 한 관객은 중·고등학교 때 저를 본 후 지금까지 팬이래요. ‘그때 보다가 지금 보니 어때요?’라고 물으니 ‘숨이 멎는 것 같아요’라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듣는 저야말로 숨이 멎을 만큼 가슴이 벅찼어요.”

혜은이는 곁에서 지켜주는 가족이 있기에 든든하다. 인터뷰가 진행된 날 공연장에는 남편인 배우 김동현이 와 있었다. 2층 맨 뒷자리에 앉아서 묵묵히 공연을 보며 응원하는 것이 그의 몫이다. 괜히 공연 중에 눈에 띄면 신경이라도 쓸세라 저만치 떨어져 앉아 있는다고 한다. 아들은 엄마의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가사를 올려주는 프롬프터를 다루는 것이 아들의 몫이다. 공연이 끝나면 아들이 말한다. “엄마, 오늘 진짜 멋있었어요.” 대한민국에 사는 60대 엄마가 아들에게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이다.

“남편은 공연할 때마다 지인들을 데리고 와요. 후배나 친구들에게 아내의 공연을 보여주며 은근히 자랑하는 거죠. (웃음) 지적은 별로 안 해요. 소감을 물어도 ‘지적할 게 없어서…’라고 말하죠. 큰애가 딸이고, 작은애가 아들인데 엄마의 공연을 본 후, 자기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해요. 그때보다 뿌듯한 순간은 없죠.”

‘국민 여동생’이라 불렸던 혜은이. 당시 최고급에 속했던 피어리스 화장품을 비롯해 굵직한 CF 10여 편을 섭렵했다. 이제 제법 세월의 무게가 얼굴에 드러나지만 그 화사하고 자연스러운 미소는 여전하다. “성형을 안 한 게 비결”이라고 그는 말한다. 마음은 여전히 소녀다. 혹여 좋지 않은 기사라도 있을세라 기사 검색 한번 하지 않는다. 댓글은 아예 안 보고 산다. 타인의 판단으로 자신의 삶이 재단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인기도 많고 찾는 곳도 많았죠. 그렇다 보니 스캔들도 적지 않았고요. 사실이 아닌 소문 때문에 상처를 입다 보니까 점점 더 기사를 안 보게 돼요. 저는 지금껏 그렇게 못되게 산 적이 없으니까요. 그냥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 성형도 안 하는 거냐고요? 사실… 겁나서 못해요. (웃음) 제가 아픈 것을 못 참거든요. 안 아팠다면 저도 하지 않았을까요?”

이순(耳順)을 넘긴 그에게는 아직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꿈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노래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드는 것이다. 그의 히트곡 면면을 들여다봤을 때, 절대 과한 목표가 아니다.

“아직은 계획만 갖고 있어요. 함께 음악을 하는 여러 분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죠. 쉬운 것 같으면서도 이게 쉽지 않더군요. 제 노래로 ‘맘마미아’ 같은 뮤지컬을 만든다면 가수로서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제 숙원 사업이죠. 그것이 이뤄질 때 다시 이렇게 인터뷰 한 번 해주셔야 해요.”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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