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不法시위 구상권 포기와 ‘정부 背任’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배병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책의제를 설정하고 정책분석을 통한 최선의 정책 결정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 결정이 일부 국민이나 집단의 이익과 배치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 국가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침해된 국민의 재산권이나 권리 등을 보상하고 생활권 등을 보장하려고 하고 있다. 제주 해군기지시설과 같은 국책사업은 국가의 안전에 직결되므로 그 결정은 장기간 검토하고 법적 절차에 따라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그 결과 피해가 발생하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한다. 자기 지역만의 이익을 주장하면 국가이익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국민은 법에 따른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결정된 국책사업의 시행이 불법시위로 엄청난 경제적 피해와 함께 지연된다면 헌법 침해다. 국가의 공권력이 침해되고 권위가 훼손되면, 헌법 전문의 ‘우리와 우리들의 자손의 안정과 자유와 행복’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1993년 12월 제주 해군기지 신규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래 한 차례 유보되었다가 2006년 7월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있었다. 2007년 4월 26일 강정마을회의 유치 결정에 따라 2007년 6월 국방부는 강정마을로 최종 결정했다. 2011년 공사를 시작하려 하자 이른바 강정마을 대책위 소속 주민과 시민단체들의 불법 저지투쟁으로 건설 공사가 14개월 지연되어 해군은 추가비용 275억 원을 시공사에 물어주었다. 재정적 타격을 받은 국가(해군)는 2016년 3월 원인행위자(개인 116명과 단체 5개)를 상대로 34억5000만 원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하는 구상권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30일 법원에서 ‘정부가 구상권 소송을 취하하고 서로 일체의 민·형사상 청구를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으로 강제조정안을 냈다. 그 배경에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정부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제주 민군복합항 손해배상소송사건의 법원 강제조정 결정에 대한 소송수행(해군)의 이의신청 포기’ 승인안을 특별 안건으로 상정하여 심의·의결했다. 갈등치유와 국민통합의 대승적 차원의 결정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폭력과 불법시위에 면죄부를 준 것으로 법치주의에 반할 뿐 아니라 국가재정에 엄청난 피해를 준 것을 임의로 포기한 배임 행위라는 비판을 했다.

강제조정안에 피고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과도 없고 앞으로 진행될 공사에 대한 재발 방지에 대한 언급도 없이 강제조정안에 대한 이의신청을 포기한다면 국가는 왜 소송을 제기하였는가? 국민의 혈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적지 않은 소송비용과 인력을 들여 소송을 제기했다가 지난 대선에서의 공약을 이유로 법원의 강제조정수용 형식으로 사실상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엄정한 법 집행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위 결정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유사 사건의 선례가 되어 국가가 자기 모순적인 다른 결정을 하는 것을 어렵게 할 것이다. 또한 불법적인 방해 행위에 비판적인 국민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침해된 국가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소송 제기를 갈등 치유 등을 이유로 사실상 취하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후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공권력의 실추는 국가공동체의 붕괴를 가져온다.

현대 국가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제도화한 것이 법이다. 대형 국책사업을 방해하고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는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의 관용은 신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