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4차 산업혁명委와 BTS(방탄소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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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 경제산업부 부장

정부가 약 보름 전에 ‘혁신성장을 위한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을 발표했다. 그 이틀 전인 11월 28일 대통령이 직접 혁신성장 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혁신의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질타한 데 대한 첫 화답인 셈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더불어 혁신성장의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민간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며, 장관들은 빼고 민간인 위주로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꾸려 이날 첫 작품을 공개했다.

정부 21개 부처가 공동 작성한 계획안을 민간위원회에서 의결 통과시키는 모양새는 일견 정책 기획의 형식이나 타이밍상으로는 매끄러워 보였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많다.

우선, 졸속의 냄새가 짙다. 4차 산업혁명위는 출범이 늦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고 긴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26일 제1기 위원 발표와 현판식부터 해치웠다. 이어 10월 10일 청와대에서 위원장 임명장 수여식, 11일 발족식을 겸한 첫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2차 회의 날이 바로 ‘큰 그림 1.0’이란 내부 별칭으로 불리는 계획 발표일이다. 최소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이끌어야 할 혁신성장의 청사진이 불과 50여 일 만에 확정된 것이다. 담당 공무원들은 “위원회 출범 일정과 무관하게 전부터 쭉 준비해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새로 임명된 20명의 민간위원이 두 달도 안 되는 사이에 큰 그림은커녕 작은 그림이라도 그릴 만한 틈이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4차 산업혁명위원장은 “큰 그림 2.0, 3.0으로 발전시킬 것”이라며 지속적 보완을 다짐했지만, 그 스스로 자리에 계속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간위원 임기는 1년이다. 부디 2기 위원회는 공무원 보고서를 그대로 통과시키는 ‘들러리’ 논란에서 벗어나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고양이를 호랑이 그림으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은 비전 부재다. 위원회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봐도 “한국의 4차 산업혁명은 ○○○”라는 키워드가 보이지 않는다. 보도자료 3건, 안건자료 3건 말고는 위원 프로필 소개가 전부다. ‘사람 중심’은 인본주의 정치철학일 순 있어도 경제정책의 목표는 아니다.

선진국의 4차 산업혁명 지향점은 뚜렷하다. 세계 최강의 자동차 제조대국인 독일의 큰 그림 ‘인더스트리 4.0’은 아날로그 기계산업을 디지털 기반으로 바꾸겠다는 주제가 선명하다. 디지털 종주국 미국의 큰 그림은 이른바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 같은 첨단 기업의 앞선 시장 점유를 과학기술 중심의 혁신으로 계속 유지하겠다는 바탕을 깔고 있다. 그런데 우리 계획에서는 어디선가 들어본 단어만 반복될 뿐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여전히 우등생을 따라가는 추격형이다. 재탕, 삼탕 비판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라리 대중문화계 연예산업에서 보여준 방탄소년단(BTS)의 세계시장 진출이 더 혁신에 가깝다. 대형 음반사와 매스미디어에 신곡을 선보이는 전통 방식 대신 팬들과 SNS로 직접 소통해 새로운 스타 탄생의 길을 열었다. 깜짝 놀란 미국의 메이저업체들이 뒤늦게 초청장을 보내고, 심지어 한국이 개척한 새 길을 분석해 따라오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BTS는 언제쯤 나올까.

nos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