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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17년 12월 15일(金)
2017 문화일보 선정 ‘올해의 책 10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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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김정훈 기자 kimjh@

공동체·여성·利他心… ‘새 화두’를 펼치다

‘챕터 1을 열다.’ 2017년 문화일보 올해의 책 키워드입니다. ‘새로운 화두, 새로운 시도, 새로운 필자가 연 제1장’입니다.

문화일보 북리뷰는 올해의 책을 선정하기 위해 출판·편집자 25명에게 올해 출간 혹은 화제가 된 국내 저작 중 5권까지 추천받았습니다.

국내 저작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뛰어난 국내 필자, 좋은 국내 저작이야말로 우리 책의 토대이자 힘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올해의 책은 사회역학 분야 첫 교양 저작으로 질병에 대한 공동체적 책임을 묻는 김승섭 고려대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입니다. 17명이 추천했습니다.

라틴어를 우리 교양의 영역으로 끌어온 한동일 신부의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라틴어 수업’은12명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이어 여성을 다시 보게 한 소설 ‘82년생 김지영’(8명), 김애란 작가의 소설 ‘바깥은 여름’(6명), 이대열 예일대 석좌 교수의 첫 책 ‘지능의 탄생’(5명) 등이 추천됐습니다. 선정된 10권을 살펴보면 새로운 목소리가 많습니다. 사회역학, 여성, 인간의 이타심, 우리 정치 뿌리에 대한 탐구, 용서라는 절실한 화두를 새롭게 던집니다. 라틴어와 삶을 연결하는 새로운 시도, 역사 현장을 헤매는 새로운 접근법, 그리고 새로운 전문가 필자군의 대거 등장도 눈에 들어옵니다. 무엇보다 이들 책들은 광범위하게 공동체를 향한 열망, 타인에 대한 이해, 약자에 대한 관심, 인간과 이타심에 대한 새로운 시선, 보다 성숙한 삶의 자세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정치·사회적 격변과 격동을 겪은 뒤 맞은 올해 우리 사회가 그래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새로운 제1장을 열고 있음을 올해의 책이 말하고 있습니다.


■ 사회적 질병에 맞서는 사회적 처방
- 아픔이 길이 되려면 /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저자 김승섭(38)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국내에서 아직은 생소한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 연구자 중에 손에 꼽을 만한 젊은 학자다.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이 분야 박사학위를 주기 시작한 게 10여 년밖에 안 될 만큼 최근에야 독립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연세대 의대를 나와 의사의 길을 접고,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을 거치며 개척 분야 ‘사회역학’을 택한 김 교수는 그동안 사회역학자로서 피하기 어려웠던 현장과 고민, 연구의 발자취를 이 책에 담아냈다. 저자는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돼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다”며 “사회적 원인을 가진 질병은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사회역학에 관련한 이론과 국내외 사례가 녹아있는 국내 학자의 보기 드문 저서다. 저자는 각종 데이터를 통해 차별이나 폭력을 겪고도 말조차 하지 못할 때 우리 몸이 더 아프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준다.


■ ‘서양 인문학의 뿌리’ 라틴어 교양서
-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지음 / 흐름


올해 인문분야 최고 화제작.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인 한동일(47) 신부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한 서강대 강의를 옮겼다. 서양 인문학의 뿌리지만 우리에게 어렵고 상대적으로 낯선 라틴어를 통해 문화, 사회, 제도, 법과 종교를 이야기하고 삶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전하며 독자들의 열띤 반응까지 끌어냈다. 라틴어 책을 누가 보겠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10만6000부가 팔려나갔다. 한국 인문 교양 영역의 확장인 동시에 깊이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고 있는 인문서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한 책이다. 한 대목. “타인의 객관적 평가가 나를 ‘숨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최우등)’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숨마 쿰 라우데’라는 존재감으로 공부해야 한다.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나를 존중해 주겠는가?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게, 또 무언가에 ‘숨마 쿰 라우데’이다.”


■ 한국사회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지음 / 민음사


조남주(39)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2017년 한국 사회의 현상이었다. 2016년 10월 출간됐지만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이유다. 작품은 페미니즘이라는 중심 흐름을 타면서 50만 부 돌파를 눈앞에 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정보기술(IT) 중견 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딸 하나를 둔, 서울 변두리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 중인 34세 주부 김지영 씨. 작은 홍보대행사를 다니다 출산과 함께 퇴사한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시작되는 소설은 김지영 씨의 고백을 중심으로 그녀의 삶 마디마디에 존재하는 여성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은 1980년대 세대를 넘어 모든 여성에게 공감을 안겼다. 올 한 해 주요 흐름 중 하나인 페미니즘 책의 대표선수인 동시에 페미니즘과 여성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약자, 은폐된 고통에 관심을 돌리는 작품으로도 자리매김할 수 있다.


■ 상실에 관하여… 담백한 문체의 힘
- 바깥은 여름 / 김애란 / 문학동네


지난해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가 몰고 온 한국 문학 열풍의 기세가 다소 꺾인 올해 한국 소설의 힘을 증명한 작품이다. 소설가 김애란(37)이 5년 만에 펴내는 신작 소설집으로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 젊은 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상실을 겪은 사람과 타인의 불행을 대하는 주변인들의 온도 차. 사고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부서진 일상,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편견에 둘러싸인 아이에게서 뜻밖의 얼굴을 발견하는 아버지의 당혹감 등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세상 또는 타인으로부터 느끼는 온도 차 그리고 그 차이 때문에 가슴에 결로와 얼룩이 생기는 이야기들이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풀려 나온다. 한 추천인의 코멘트. “그의 문장은 더 깊고 섬세해져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 AI 시대 ‘지능’의 본질을 탐구하다
- 지능의 탄생 / 이대열 지음 / 바다


올 한 해 과학 교양서 출간 붐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띈 분야는 인공지능(AI)과 미래 전망, 그리고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책이었다. 인공지능 시대에 지능의 본질과 근본을 묻는 이대열(51) 예일대 신경과학과 석좌 교수의 책은 이 같은 올해 과학 교양서 흐름의 대표 주자다. RNA에서 시작해 진화, 근육과 신경계, 지능, 마음이론, 사회적 지능까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평범한 언어로 설명하며 생명의 관점에서 지능의 본질이 무엇인지, 지능은 왜 등장했는지, 뇌와 같은 신경계는 어떻게 진화했는지, 그리고 인간과 인공지능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를 살핀다. 책은 출판사가 저자 강연을 듣고 출간을 제안해, 2년여 동안 미국과 한국 사이에 원고가 오간 결과 나온 그의 첫 저작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 분야의 탄탄한 국내 필자의 등장이라는 점에서도 반가운 책이다.


■ ‘우리에게 용서란 무엇인가’ 철학적 성찰
- 용서에 대하여 / 강남순 지음 / 동녘


도대체 용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강남순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 교수의 교양서로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아팠고 또 아픈 한국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종교·신학 전문서가 아닌 대중교양서 필자로의 새로운 등장이 고맙다. 이제까지 국내에 나온 용서 관련 책들이 주로 종교적 접근이었던 반면 철학적 다층적 접근이라는 점도 새롭다. 강 교수는 용서란 ‘용서는 처벌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는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의 ‘조건적 용서’와 ‘용서는 용서할 수 없을 것을 용서하는 것’이라는 자크 데리다의 ‘무조건적 용서’ 사이의 절충이라고 한다. 용서는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행동이자 사건이라며 여정으로서의 용서를 제안한다. 끊임없이 더욱 완전하고, 더욱 무조건성에 가까운 용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친일과 반공 사이 ‘양심적 우익’ 조명
- 대한민국의 설계자들 / 김건우 지음 / 느티나무 책방


지난 20여 년 동안 친일에 물들지 않으면서도 북한 공산 정권과도 거리가 있는 ‘양심적’ 우익의 실체를 추적하고 이들이 대한민국 발전과정에 기여한 업적을 연구한 김건우(49) 대전대 교수의 저작. 출간 당시 새로운 분야, 새로운 역사 관점이라는 점에서 집중 조명받았다. 저자는 대한민국 설계자를 자부하려면 일제에 부역한 사실이 없거나 그 사실을 철저히 참회해야 하고 북한과도 일정 정도 이상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책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 현대사의 근대적 전환기를 이룬 1960~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헌과 연구를 참조하며 이 시기에 정부 정책을 주도한 이들과 민주화 진영에서 저항했던 사람들이 모두 이념적으로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이라며, 학병 세대를 중심으로 친일하지 않은 우익이 바로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라고 해석한다. 이 분야를 다룬 교양 역사서가 없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 인간적 관점서 본 춘추전국 550년史
- 춘추전국이야기(전11권) /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국내에서 춘추전국 시대를 정면으로, 본격적으로 다룬 첫 대형 역사 교양서 기획물이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중국 푸단(復旦)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공원국(43) 씨가 기획 구상부터 최근 완간까지 10년에 걸쳐 완성했다. 지난 100년 동안 축적된 중국학의 성과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연대 중심의 통사를 지양하고 강, 산맥, 지형 등 지리적 위치를 바탕으로 각국의 치열한 영토 전쟁을 상세히 묘사하며 이 과정에서 활약한 다양한 인물의 삶과 이야기를 ‘인간적 관점’에서 풀어냈다는 점이 특징이다. 수년간 중국과 주변국을 여행하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기원을 찾으려 한 ‘여행하는 인문학자’로서 직접 겪은 현장의 사진 등을 빼곡하게 수록함으로써, 대중역사서 집필의 새로운 수준을 보여 주었다는 점도 높게 평가받았다. 40대 공부하는 전문 필자군 주자이기도 하다.


■ 인류의 진화 이끈 키워드는 ‘이타심’
- 인간의 위대한 여정 /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유발 하라리의 빅히스토리 ‘사피엔스’에 열광했던 한국 독자들 앞에 나온 우리 인문학자의 첫 본격 빅히스토리. 고전문헌학자 배철현(55)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137억 년 전 우주 탄생부터 1만 년 전 농업혁명 이전 현생 인류까지의 인류의 역사를 탄탄한 인문학적 기초 위에 진화생물학, 뇌과학, 고고학, 인류학 등을 가로지르고 철학, 고전, 예술 등 인문학적 통찰과 결합해 써내려간다. 과학자들의 활동 무대이던 빅히스토리를 우리 인문학자가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데다 이타심이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해석해 낸 점도 흥미롭다. 저자는 인간의 궁극적인 조건이자 인류 진화의 열쇠는 ‘이타적 유전자’, 이타심이라고 한다. 급속한 기술 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자유의지마저 의심받는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성찰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라며 과학적 발견에 근거한 기계적 해석에 대한 균형감도 제공한다.


■ ‘유머와 패러디’ 만화로 설명하는 과학
- 야밤의 공대생 만화 / 맹기완 지음 / 뿌리와 이파리


과학과 개그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과학 만화. 무게보다는 재미가 자연스러운, 그러면서도 내용도 탄탄한,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작업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되는 책이다. 지금은 카네기멜론대학에서 컴퓨터 구조를 연구하고 있는 스물일곱 공학도가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복학하기 전, 아이패드를 산 기념으로 재미로 끄적여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린 것이 출발점이다. 인기를 얻자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로 옮겼고 만화를 본 편집자의 눈에 띄어 책을 내게 됐다. 당시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이 쏟아졌다고 한다. 유명 과학자부터 조금은 낯선 과학자까지, 미적분부터 알파고까지 과학사의 중요한 인물과 사건을 인터넷 유머와 센스 넘치는 패러디로 전달한다. 힘 빼고, 재미있게, 가볍게 시도하는 재주 많은 젊은 세대의 등장. SNS 스타 필자, 재미로 시작했다가 프로의 세계로 들어오는 ‘프로추어(proteur)’의 멋진 예이기도 하다.

최현미·엄주엽 선임기자 chm@munhwa.com

‘올해의 책 10選’ 선정에 도움 주신 분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고세규 김영사 대표, 곽종구 동녘 주간, 김기중 더 숲 대표, 김보경 인플루엔셜 본부장, 김소영 문학동네 부국장, 김수진 푸른 숲 부사장, 김수한 돌베개 주간, 김인호 바다 대표,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 김태희 사계절 총괄 팀장, 박상준 민음사 대표, 박윤우 부키 대표, 염종선 창비 편집이사, 이광호 문학과지성 대표, 이진숙 해냄 편집장, 유정연 흐름 대표, 윤희영 현대문학팀장,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조성웅 유유 대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성봉 동아시아대표, 황서현 휴머니스트 편집주간.
e-mail 최현미 기자 / 문화부 / 부장 최현미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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