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트럭섬’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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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학용 논설위원

남양군도(南洋群島). 1차 세계대전 후 태평양전쟁 때까지 일본의 위임통치를 받던 미크로네시아 섬들을 일컫는다. 현재는 미국 자치령인 북마리아나 제도와 독립국인 팔라우, 마셜 제도, 미크로네시아연방으로 이뤄져 있다. 한데, 미크로네시아연방 4개 주(州) 중 ‘축(Chukk)’이라는 데가 있다. 우리에겐 ‘트럭(Truk)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추크’로 호칭된 지명이 독일군 점령 뒤 ‘트루크’로, 이후 일본군이 ‘트럭’으로 발음하면서 붙여졌다. 수려한 경관에 감동한 소설가 김훈이 ‘나는 헛살았다!’고 외쳐 화제가 된 섬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4650여㎞ 떨어진 이 고도(孤島)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한국인 위안부가 여기까지 끌려왔다는 사실은 일본인 위안부 고(故) 시로타 스즈코 할머니의 증언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그의 고백은 1991년 첫 한국인 위안부 증언자인 고 김학순 할머니보다 7년이나 앞서 나왔다. ‘사이판에서 배로 3일 걸리는 트럭섬 미하루정에 정착했다. 세상 끝머리에 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도쿄 사람은 나 한 사람으로, 나머지는 규슈, 오키나와, 조선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주 1회 성병 검사도 받았다’. ‘일본군 위안소 지도’에 기록돼 있는 그의 기억 일부다.

서울시·서울대인권센터가 최근 시로타 할머니의 증언을 공식 확인했다. 미군 작성 전투일지, 위안부들이 귀환 때 탑승했던 호위함 승선명부, 뉴욕타임스 기사(1946년 3월 2일자) 등 당시 자료를 발굴·분석한 결과다. 기사엔 ‘트럭섬 사령관 로버트 블레이크에 의해 조선인과 27명의 조선인 위안부(Comfort Girls)가 보내졌다’고 쓰여 있다. 이들은 이키노호를 타고 일본을 거쳐 조선으로 귀환했다. 정부 공식등록 피해자 239명 중 이 섬으로 끌려갔다고 밝힌 유일한 증언자 고 이복순 할머니로 추정되는 인물도 발견했다. 정부에 등록되기도 전에 숨진 하복향 할머니도 피해자임을 증명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위안부 할머니를 위로·응원하기 위해서라도 그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기록하고, 온전하게 남겨야 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처럼 피해 사실을 꼭꼭 숨긴 채 살아가는 ‘도깨비 할머니’들의 용기 있는 증언도 이어져야 한다. ‘위안부’는 명명백백한 사실이지만 아직도 그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