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보다 치료비 더 들고 유전질환이 80%… ‘가계파탄’ 내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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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지원 미비에 적기 치료 어려운 희귀질환

전액부담약제 탓에 치료 어려워
인지도 낮고 치료연구조차 더뎌

치료제에 대한 별도방안 없으면
보험급여목록 등재할 수도 없어
치료제 급여등재 2년6개월 걸려

20세 나이에 국내 최연소로 동맥경화우회술 시술을 받게 된 A 씨는 극희귀 질환 ‘동형접합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신체검사를 하던 중 몸에 이상을 발견하고 결국 수술을 받게 됐다. 심근경색과 동맥경화가 동시에 있고, 심장 기능이 절반으로 떨어진 뒤였다. A 씨는 수술 이후에도 약물치료와 혈액투석을 받으며 매달 100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부담하고 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기에 취업도 쉽지 않다. 동형접합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은 100만 명 중 1명에게 나타나는 극희귀 유전병이다. 나쁜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LDL-C’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며, 10대부터 급사의 위험을 안게 된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30대 이전에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일반인보다 100배 높아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김 씨처럼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지난해 2월 기준 누적 100만 명에 이른다. 정부는 희귀질환자를 위해 ‘희귀질환 관리법’을 지난 2015년 12월 제정했고, 지난해 말에는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갖췄다. 본격적으로 법이 시행됐지만 현장에 있는 의료진과 환자들은 ‘아직도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기 어렵다’고 말한다.

◇환자 치료 지원은 부족 = 희귀질환 관리법은 ‘희귀질환 환자들의 의료서비스 접근성 확대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현실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희귀질환자의 등록·통계 등 인프라 구축에 치중돼, 환자들에게 필요한 치료 접근성 강화나 제도 개선에 대한 부분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귀질환 관리법 제정 이후 환자들은 약제 신속 급여, 유전상담 급여화, 산정 특례 지원 대상 확대, 희귀질환 전문병원 및 전문의 확충 등 다양한 지원 필요사항을 요구해왔다. 얼마 전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도 희귀질환 약제의 접근성 확대 및 신속한 등재방안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장영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19일 “동형접합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과 같은 극희귀 질환은 인지도도 낮고 진단과 치료에 대한 연구도 더뎌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동형접합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들은 심각한 심혈관질환이 발생하기 전,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항암제보다 부담되는 희귀질환 약제비=‘조기 적절한 치료’는 희귀질환자에게는 큰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구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 및 학계 전문가 80%가 희귀질환 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높이는 가장 큰 원인으로 ‘비급여 및 전액부담 약제’라고 답했다. 특히 희귀질환 약제 부담이 가계 소득에 비해 부담이 크다는 데 동의한 비율은 85.7%로, 항암제 80%보다 높게 나타났다. 현재 희귀질환 치료제 중 40%는 비급여로 남아 있어 환자 본인 부담을 높이고 있다.

희귀질환 환자들의 치료비 부담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유전성 질환이 많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의 약 80%가 유전성 질환인데, 한 가정에 환자가 여러 명이고 대부분 평생에 걸쳐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치료비 부담이 가계 파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희귀질환 환자의 의료서비스 접근성 확대방안을 고려할 때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반드시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종혁 호서대 제약공학과 교수는 “희귀질환 환자들은 암 환자에 비해 규모가 작아 급여 적용 후 순위에 놓일 경우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며 “정부는 항암제뿐 아니라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서도 경제성 평가 면제 기준 확대, 별도의 약가제도 신설 등 다양한 보장성 확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딘 정부 지원 =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를 통해 비급여를 모두 급여화한다고는 해도 초기에는 예비급여로 편입돼 사실상 급여 혜택을 받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 과거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추진 때도 급여등재까지 평균 2년 6개월이 소요됐다. 이는 임상연구에 참여할 환자 수가 부족한 희귀질환의 특성상, 약제의 효능을 입증하거나 비용 효과성을 입증할 근거생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환자단체에서는 “별도의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희귀질환 치료제는 사실상 보험급여 목록에 등재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어 다른 질환에 비해 치료제 개발도 쉽지 않다. 전체 희귀질환 중 치료제가 개발돼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약 5%에 불과하다. 이런 질환의 특성을 고려해 희귀질환 치료제 급여 등재 시 다른 치료제와 다른 관점에서 제도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장영 교수는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사는, 즉 치료 시급성이 높은 희귀질환에 대해 임상적 유용성이 확인된 치료제는 의료현장에서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