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피아니스트 선우예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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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위원

“내가 생각하는 슬픔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가슴으로 붙잡고 있는 것, 목 놓아 내지르는 게 아니라 꾹꾹 눌러 담고 있다가 ‘툭’ 하고 가볍게 흐르는 것인 듯하다.” 미국 최고 권위의 피아노 경연대회인 밴클라이번콩쿠르 55년 역사상 한국인 최초로 지난 6월 우승한 선우예권(28)이 한 말이다. 그는 “주저앉으려고 할 때마다 내게 위로를 주는 작곡가 슈베르트는 고달픈 삶을 살다 가서인지 밝은 음악에도 슬픔이 묻어 있는데, 내 연주도 밝음 속에 슬픔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주 기량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사색의 깊이도 ‘젊은 대가(大家)’ 반열이라고 할 만하다. 미국 신문 뉴욕타임스가 ‘그의 연주는 명료하고 에너지 넘치며 황홀하다’고 하고, 시카고트리뷴이 ‘그의 마음은 사려 깊은 음악적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직접적인 표현력으로 관객들에게 따뜻함을 전달한다’고 전한 취지도 다르지 않다.

한국인 유일의 ‘국제 콩쿠르 8관왕’이기도 한 그는 피아니스트 재능이 초등학교 2학년 때 학원 강사 눈에 띄어, 예원학교를 거쳐 진학한 서울예고 재학 중이던 2005년 미국 커티스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었다. 전액 장학생이었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집세를 비롯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콩쿠르 상금 획득이었다. 16세 때부터 계속 도전·우승해 별명 ‘콩킹’을 얻었어도 값비싼 연주용 피아노를 사지 못해 학교 연습실에서 자정까지 피아노를 쳤다. 무대에 설 때마다 같은 연주복이어서 ‘단벌 신사’로도 불렸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경우는 없게 하려고 한다”는 그는 이제 매달 세계 전역의 14∼15개 도시에서 연주회를 열 만큼 분주하다. “먼 거리 이동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시간이 가장 편한 자유 시간”이라고 한다.

2019년까지 빈틈없이 연주 일정이 잡혀 있는 그가 밴클라이번콩쿠르 우승 후 처음인 국내 독주회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난 15일 가졌다. 당초 예고했던 서울 공연인 오는 2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독주회 관람권이 일찌감치 매진되는 바람에 어렵게 마련한 추가 무대였다. “공연 전엔 예민해져 무조건 혼자 있으려고 하고, 남과 말을 섞는 것도 피한다”는 그가 들려주는 ‘밝음 속의 슬픔’이 20일에도 15일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들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