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脫원전 아닌 脫탄소’ 나라 안팎의 목소리 경청해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탈(脫)원전 공약을 사실상 철회했다. 그는 17일 “최우선 과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라며 “탈원전 선언 후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이 늘고 있는 독일의 예를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마크롱 정부는 사회당 정부 정책을 이어받아 원전 비중을 71%에서 2025년 50%로 낮추는 로드맵을 진행해왔다. 프랑스 에너지 정책의 급선회는 마크롱 대통령 표현대로 ‘탄소 배출을 가장 적게 하는 원전’과 ‘전력 생산이 불안정한 신재생에너지’ 사이에서 고민한 결과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원전 비중은 부담스럽지만, 독일처럼 원전을 배제하다 탄소 배출량을 늘리는 건 최악의 선택이라고 본 것이다.

국내에서도 동시에 똑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원자력학회는 18일 성명서를 내고 “제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안은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한 비현실적인 목표 제시에 불과한 것”이라며 “에너지 전환의 목표는 탈원전이 아니라 탈탄소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나라 안팎의 목소리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집착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문 대통령은 당초 ‘원전 제로 시대’를 위한 탈핵(脫核) 로드맵을 공약했다. 이것이 비현실적임이 드러나자 원전 비중 축소 쪽으로 후퇴했지만, 5년 단임 정부의 무리한 공약 때문에 에너지 백년대계를 망쳐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에너지 정책의 기준을 ‘탈탄소’에 두자는 주장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비전문가들이 주도한 탈원전 공약은 과학적 근거가 부실한데다 실제로 환경친화적이지도 않다. 지난 14일 발표된 8차 기본계획은 원전 비중을 30.3%에서 2030년까지 23.9%로 낮췄다.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6.2%에서 20.0%로 올리려면 소요 비용이 100조 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원전은 발전효율·비용·탄소배출 등에서 단연 앞서는 에너지원이고 성장 잠재력도 크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도 보유하고 있다. 쉬운 길을 두고 위태로운 길로 나라를 이끌려는가.